지난 24일 서울지하철에서 짐(설 선물)을 선반에 놓고 내린 박 모 씨는 다급하게 가까운 역무실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역장은 승객이 기억하지 못하는 열차번호와 승차 칸, 선반위치, 유실물 형태 등을 물으며 확인을 요구했다.
박 씨는 “우선 전화연락부터 하라”며 늑장 대응을 강하게 항의했지만, 역장으로부터 “달랑 900원을 내면서”라는 대답만 들은 것.
이에 박 씨는 서울메트로 홈페이지에 역장의 실명과 소속을 낱낱이 공개한 뒤 “해명이 충분치 않을 경우 청와대 민원실이나 인터넷 유머게시판에까지 올릴 생각이다. 또 만화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공개하겠다”며 사과를 요구했다.
또한 그는 대형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같은 글을 올리고 서명운동을 벌여 누리꾼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처럼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자 역장은 지난달 31일 사과문을 게시했다.
그는 “유실물 처리와 관련하여 사려 깊지 못한 언사와 행동으로 고객님 마음을 불쾌하게 해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달랑 900원 내면서…’라는 무의식적인 언행은 저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로서 깊이 반성하고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과에도 현재 서울메트로 홈페이지와 대형 포털사이트마다 역장의 징계를 요구하는 누리꾼들의 비난 글이 끊이지 않고 있다.
‘lordks’은 “지하철 역장은 승객이 낸 900원뿐만 아니라 국민의 세금으로 살아가는 직업”이라며 “대화 중에 승객이 사소한 잘못을 했고 설령 화가 난다 하여도 ‘달랑 900원’이란 표현은 매우 부적절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youngdeg’도 “정작 그런 소리를 한 역장이야 말로 900원짜리 상식을 가지고 공직에 몸담고 있는 것인가”라며 “서울메트로는 역장을 중징계하라”고 요구했다.
비난여론이 들끓자 지하철 역무원과 공익근무요원들은 “승객들도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야 한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스스로를 지하철 공익근무요원이라고 소개한 김 모 씨는 “유실물을 찾아주는 업무를 하는 우리도 모든 물건을 찾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며 “물건을 잃어버린 손님 입장에서는 마음이 다급하기에 직원이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시간을 끄는 게 답답하고 짜증이 나겠지만 최소한의 절차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손님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직원을 몰아붙이는 것도 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으로 약간은 억울하고 속이 상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철도의 한 역에서 일하고 있다는 역무원도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역장의 발언은 대단히 신중치 못했다. 하지만 그 말이 나오기까지의 상황도 나름대로 짐작이 간다”며 “고성에 짜증을 내는 등 오는 소리가 곱지 않은데 가는 소리가 고울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역장에 대한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를 중단하라” 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박종희’는 “역장의 진심어린 사과가 필요하지만 박 씨도 감정적으로 자신의 주관적인 글을 유포시키며 한 사람을 매도하지 말라”면서 “누리꾼들도 감정만 격해질 것이 아니라,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고 자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서울메트로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서울지하철 1∼4호선에서 접수된 유실물은 모두 2만6846건이고 이 가운데 70.2%인 1만8850건은 본인에게 인계됐다.
김수연 동아닷컴 기자 s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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