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중학교의 ‘가정환경조사서’ 원본이 인터넷 게시판에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누리꾼 ‘DaNIeL’은 지난 12일 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방에 자신이 학교에서 받은 ‘가정환경조사서’를 찍은 사진을 올리고 “사춘기인 나에게 이런 것은 정말 난감해요”라며 고민을 털어놨다.
그는 “부모님이 월수입은 저한테도 안 알려 주세요. ‘전세’든 ‘월세’든 간에 뭐가 그렇게 중요해요? 모든 학교가 다 이런가요?”라고 되물었다.
이 글은 누리꾼들의 폭발적인 관심 속에 이틀 만인 14일 현재 조회수 10만1200건을 기록했고 ‘우리 학교도 그렇다’는 내용의 댓글이 수백 건이나 달렸다.
“학기 초 마다 스트레스 받아요. 그냥 평범한 가정이면 몰라도 이혼하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우면 친구들이 볼까 부끄러울 것이고, 선생님들도 괜히 편견을 가질까봐 걱정돼요.” (ID QNP~)
“지금의 저랑 상황이 똑같네요. 부모님 학력이며 수입을 왜 그렇게 세세하게 물어본데요? 제발 안했으면 좋겠어요.” (ID 푸푸~)
3월, 학년 초가 되면 대부분 초중고는 학생실태조사를 실시한다. 그러나 학생들의 ‘가정환경조사서’는 부모님의 학력과 직업, 주거환경 등을 상세히 기록하게 돼 있어 그동안 인권침해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부작용을 우려한 교육부는 지난해 3월 가정환경조사서에서 부모의 학력, 구체적 직위, 재산 정도(부동산·동산·수입), 가옥 형태(자가·전세·월세) 등 인권침해가 우려되는 항목에 대해 삭제를 권고하는 공문을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에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일선 학교에서는 좀처럼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
이에 따라 새 학년이 시작된 이달 초부터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는 ‘가정환경조사서’를 고발하는 사진이 잇달아 오르고 있다. ‘다음’에서는 지난 4일부터 ‘가정환경조사서를 폐지하자’는 온라인 서명운동이 벌어져 이날 현재 3384명이 참여했다.
서명운동을 발의한 누리꾼은 “부모님의 이혼 여부 등 공개하기 싫은 항목은 빼주세요. 우리의 사생활도 존중해주세요”라며 “부모님이 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집 주소, 전화번호 정도만 알고 있으면 지장이 없지 않을까요?”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선생님들은 반대의사를 밝혔다.
스스로를 고등학교 교사라고 소개한 누리꾼 ‘August~’는 “학생들과 개별 상담을 하면 부끄러운지 가정 상황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는다”며 “그나마 설문지는 비공개로 작성하기 때문에 집이 어려운 학생은 나름의 고충을 털어 놓곤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정환경조사서는 저소득층과 생활보호대상자의 학비지원, 교내 장학생 선정, 급식비지원 등에도 참고하고 있다”며 “교사들은 아이들의 어려움을 따뜻하게 감싸주고 싶은 마음”이라고 주장해 누리꾼들의 호응을 받았다.
일부 누리꾼들은 가정환경조사서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학교 측에 당부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누리꾼 ‘곰처럼~’은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아무 설명 없이 다짜고짜 부모님 월수입에 대해 묻는 것은 불쾌할 수도 있다”며 “학교 측은 학생들에게 조사를 위한 취지를 잘 설명한 후에 회수 및 보관에도 각별히 주의해 달라”고 주문했다.
김수연 동아닷컴 기자 s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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