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당 사상 최장수 대변인 기록을 가진 한나라당 박희태(사진) 국회부의장이 회고록을 출간했다. 제목도 ‘대변인(代辯人)’.
그는 오늘날까지도 정치·사회 각 분야에서 널리 회자되는 정치 조어(造語)를 만들어내 ‘촌철살인의 귀재’라고 평가받는다.
검사 출신의 5선 국회의원인 박 부의장은 지난 88년 13대 때 민정당 소속으로 처음 당선된 뒤, 문민정부의 법무부장관으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4년3개월 동안 민정·민자당 대변인을 지냈다.
그는 대변인 시설 겪었던 정치 비화와 함께 정치조어의 배경을 책 속에 풀어놨다.
●촌철살인의 정치조어와 논평 = 박 부의장은 89년 12월 5공 청산 문제를 풀기 위해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야당 3총재의 청와대 회동에 대해 “대통령과 세 분 총재는 모두 ‘정치 9단’의 입신(入神)의 경지에 있다”고 표현, 그 유명한 ‘정치 9단’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90년 봄의 혼란하고 불안한 사회상을 일컬어 당시 이승윤 부총리가 ‘Total Crisis’라고 표현한 것을 저자는 ‘총체적 난국’으로 번역했고, 이 말은 오늘날까지 정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회자되고 있다.
또 96년 총선 이후 첫 국회에서 야당의 공세에 맞서 야당을 ‘리모콘 국회’라 칭하며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이냐’고 했던 저자의 말은 유행어가 됐다.
91년 세칭 ‘수서택지 특혜 분양사건’을 공격하는 야당의 장외집회에 대해 ‘보라매공원 집회는 보람이 없었다’, ‘여의도 집회는 여의치 않았다’, ‘부산 집회는 부산만 떨었지 실속은 없었다’고 했던 저자의 재치 있는 논평에 대한 일화도 실려 있다.
●‘정치 9단’들과 뒷이야기 = 90년 3월 박철언 정무장관과 YS의 소련 방문 당시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만날 공식일정을 잡지 못한 상황에서 두 사람이 서로 먼저 만나려고 경쟁하던 일과, YS가 전격적으로 고르바초프와 면담한 후 만남의 증거를 묻는 기자들에게 ‘고르바초프는 참 잘 생겼다. 안 만나본 사람은 모른다’고 말했던 일화도 있다.
YS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대선에서 맞섰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 대해 ‘기업은 용서해도 사람은 용서할 수 없다’고 한 말과 그에 따라 현실 정치에서 벌어졌던 일화도 기록돼 있다.
87년 6·29의 정신을 이어서 국민의 뜻을 잘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물대통령이라 불리는 게 좋다’고 자처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과 93년 금융실명제 실시에 대해 JP가 ‘홍곡(鴻鵠)의 대지(大志)를 연작(燕雀)이지만 어찌 촌탁(忖度)하지 못하겠느냐’며 새로운 표현법으로 지지의 뜻을 밝혔던 일도 있다.
박 부의장은 “살벌한 정치판을 재미있는 정치판으로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했다”며 “국민이 사랑하는 정치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도 재미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대변인 시절의 다양한 일화들을 책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출판기념회는 내달 6일 국회에서 열릴 예정이다.
김수연 동아닷컴 기자 s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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