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은 스승의 날인 지난 15일 홈페이지를 통해 촌지를 준 학부모와 받은 교사를 모두 처벌하는 가칭 ‘학교촌지근절법’ 제정안을 이달 중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진 의원은 “촌지관행을 없앨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결과적으로 선생님과 학부모 사이에 믿음이 회복될 것”이라며 “학부모님을 비롯해 교육현장의 주도자인 선생님들께서 열정을 갖고 법안제정에 동참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지지의사를 밝혔다.
진 의원의 홈페이지에도 “지긋지긋한 촌지를 없애 달라”는 찬성 글이 잇달아 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모두 다 촌지나 챙기는 교사로 비춰질까 두렵다”는 글도 만만치 않다. 스스로를 교사로 밝힌 이들은 교권 추락을 언급하며 법안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자신을 고등학교 교사이며 두 아이의 아버지라고 밝힌 아이디 ‘현직 교사’는 “교사로서 아이들 앞에 어떻게 서나 자괴감이 든다”며 “촌지를 요구하거나 받는 선생님들도, 촌지를 내미는 학부모들도 드물다”라고 말했다.
그는 “주변에 교사 친구들 중 촌지를 그것을 요구하거나 받아 챙기는 사람은 없다”며 “지금까지 대부분의 학생들이 촌지를 주지 않아도 마음 편하게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빈대를 잡으려고 초가삼간에 불을 지르고 있다”며 “이 땅의 모든 교사들이 촌지를 관행적으로 받고 있음을 세상에 공지하는 처사이고, 학부모들이 국민 세금으로 하는 공교육을 믿지 못하고 사교육을 신뢰하게 만드는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아이디 ‘교감’도 “전체 교원을 그렇게 매도하시면 됩니까”라며 “촌지를 받아 본적도 없는 선생님들을 싸잡아 매도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법안을 철회해 달라”고 요구했다.
아이디 ‘교사’는 스승의 날에 발표된 것을 두고 “힘이 빠진다. 스승의 날은 왜 있는 거냐”며 섭섭함을 토로한 뒤 “교사들의 사기를 올려 신바람 나는 교육을 펼칠 수 있는 방안은 없는지 연구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부는 ‘낙선운동을 하겠다’ ‘후원금을 끊겠다’ ‘국회의원들의 대가성 정치자금부터 없애라’ 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15일 MBC라디오에 출연해 “아주 극소수에 해당하는 것을 제도화해서 선생님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지 않을까 하는 점도 고려해봐야 된다”며 “제도나 처벌로 해결하기에 앞서 선생님을 존경하는 문화와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 교원 단체들 속으로 ‘부글부글’ ▽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등 교원단체는 법안에 대해 내부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대응은 자제하고 있다. 교원들이 촌지 수수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
이들 단체는 진 의원의 ‘촌지수수근절법’ 제정 안이 공개된 후 많은 논의를 거쳤지만 “자칫 잘못하면 오해를 살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공식 입장을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교총 한재갑 대변인은 동아닷컴과의 전화통화에서 “촌지를 근절하자는 기본적인 취지와 목적은 충분히 이해하고 당위성도 근본적으로 인정한다”면서도 “하지만 법안을 만드는 것에 있어서 몇 가지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대변인은 “일부의 비리 때문에 전체 집단을 문제 삼아 법을 만드는 것 자체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며 “학교에선 학생-학부모-선생님 간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를 법으로 재단한다면 사실상 교육적 신뢰 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생님들의 명예나 자긍심은 고려하지 않은 채 정치인이 인기에 영합해서 스승의 날에 법안을 발표해 상당히 안타깝다”며 “교총도 촌지근절을 위해 나름대로 실천적 의지를 갖고 노력하는 중이다. 촌지 근절은 다른 대안을 모색하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교조 이민숙 대변인도 “촌지근절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지 법만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현행법으로도 촌지수수는 처벌할 수 있고, 조합원들도 촌지 안받기 운동을 전개해 현재 상당부분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촌지가 근절돼지 않는 것은 학부모들이 학교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없기 때문”이라며 “학부모들이 학교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공식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런 법안이 스승의 날에 얘기돼 마치 촌지가 교육계의 가장 문제인 것처럼 비춰졌다”며 “오히려 학교를 불신하는 적절하지 않는 법이다. 스승의 날을 맞아 선정적으로 발표됐다”고 비판했다.
김수연 동아닷컴 기자 s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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