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 입력 2006년 9월 9일 08시 32분


영기는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는 동안 엄마가 마음 아파할까봐 아픈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영기는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는 동안 엄마가 마음 아파할까봐 아픈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영기는 ‘골수이식’만이 유일한 희망이에요. 지금은 수혈로 연명하고 있는데, 수혈 횟수가 100회를 넘으면 골수이식이 힘들다고 하네요. 지난 5개월간 40회를 넘게 했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어머니 이미란(37) 씨는 하루하루 가슴을 졸이며 산다. 더 늦기 전에 아들을 수술시켜야 하는데 수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져 가기 때문이다.

‘골수이식’만이 유일한 살길

홍영기(14) 군은 혈액암의 일종인 ‘중증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희귀병에 걸렸다. ‘골수이식’만이 살길이다. 가족 모두가 유전자 검사를 받았지만 영기와 일치하지 않았다. 국내 공여자도 수소문했지만 일치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미란 씨는 “골수이식은 가족의 경우에는 유전자 12개 중 8개만 맞으면 그래도 수술할 수 있는데 타인의 경우에는 100% 일치해야 이상이 없다. 그만큼 골수 공여자를 찾기가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그녀는 결국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미국, 독일 등 서양의 골수은행에 공여자를 찾아줄 것을 의뢰했다. 하지만 서양 사람은 동양인과 신체 구조나 체질이 달라서 유전자가 일치해도 수술이 힘들다는 말만 되돌아왔다. 미란 씨는 곧바로 대만과 일본의 골수은행에 의뢰했다. 대만에는 맞는 사람이 없고, 일본은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현재 영기는 유전자가 일치하는 골수 공여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병원에서는 수혈 외에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한다. 1주일 또는 열흘에 한번 꼴로 수혈을 받는다.

어느 날 갑자기 닥친 불행

영기는 올 3월, 신학기가 시작되면서부터 머리가 아프고, 숨이 차다고 호소했다. 그럴 때마다 미란 씨는 “방학 동안 살이 쪄서 그런 거라며 운동을 하라고 했다. 10년 가까이 병원 한 번 안 갔기 때문에 큰 병에 걸렸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나날이 영기의 두통과 호흡 곤란이 심해지자 그녀는 지난 3월 18일 동네병원에 아들을 데리고 갔다. 혈액 검사 결과 적혈구 수치가 3.5로 나왔다.

“적혈구 수치가 13이 나와야 정상인데 엄청 낮게 나왔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왜 이제야 데려 왔느냐’고 호통을 치시며 ‘당장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라’고 하더군요.”

이튿날 미란 씨는 아들을 데리고 강남 성심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혈액 검사 결과 백혈병과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중증이라서 여기서는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다”며 “좀 더 큰 병원으로 가서 골수검사를 해보라”고 했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백혈병을 떠나 어떠한 조치도 할 수 없다는 말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어요.”

정신을 차린 미란 씨는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옮겨 아들의 골수 검사를 했다. 담당 의사는 혈액암의 일종인 ‘중증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희귀난치병에 걸렸다고 했다.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수치가 많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수혈부터 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적혈구 수치가 7 이하면 머리가 아프고 제대로 활동을 못한다고 하더군요. 영기는 3.5였어요. 많이 힘들었을 텐데 엄마, 아빠 걱정할까봐 내색하지 않고 참은 걸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아파요.”

현재 영기는 면역체계가 모두 허물어진 상태다. 피를 한번 흘리면 지혈이 안 된다. 매사에 조심해서 행동하지만 언제 응급상황이 닥칠지 모른다.

가족, 영기의 마지막 힘

아버지 홍성호(45) 씨는 건설현장에서 보수·보강 일을 했다. 일이 고됐는지 몇 년 전 탈장(脫腸)이 생겼다. 수술을 했어야 했지만 가정 형편이 허락지 않아 참고 살았다. 그러다 아들의 희귀병 소식을 접하고 충격이 너무 컸던지 병이 악화됐다. 그는 올해 6월 수술을 받았다. 그 후 심한 일을 할 수 없어 건설 관계 일을 그만뒀다. 지금은 일용직으로 일거리가 있다고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미란 씨는 기업체에서 TM 영업 업무를 담당하다가 영기의 발병 이후 그만뒀다. 지금은 오로지 아들의 간호와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인 은비는 오빠의 고통을 함께 나누려 한다. 오빠가 피자나 치킨, 아이스크림, 밀가루 음식, 고기, 유제품 등을 먹지 못하기 때문에 은비도 안 먹는다. 또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은 거의 먹지 못하는데도 은비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빠가 못 먹는데 어떻게 먹을 수 있어요. 오빠가 빨리 나으면 같이 먹을래요”라며 부모를 위로한다.

돈 없는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 냉정한 현실

3월말부터 지금까지, 약 5개월여 동안 영기의 검사 비용으로만 1500만원 들었다. 그동안에는 전세금을 빼고, 주위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병원비를 충당했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골수이식의 경우 가족간 이식은 그나마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타인이 이식할 경우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다. 골수 공여자의 검사 비용이 전혀 지원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한국인과 외국인의 검사 비용 차이도 크다.

보통 검사에서 골수 채취까지 3일 정도 걸리는데 한국인일 경우 한 사람당 1000만원, 외국인일 경우 3000만원이 든다. 다만 검사를 해서 서로 유전자가 일치해야 이식을 할 수 있다. 만일 유전자가 일치하지 않으면 비용을 고스란히 날려버리고 만다. 수술비용도 만만찮다. 의료보험 적용을 받는다 해도 5000만원 이상 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하소연할 곳도 없는 어머니의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살리고 싶어요. 살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거예요. 하지만 형편상 그렇게 해줄 수 없는 게 너무 마음 아파요. 돈 없는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미란 씨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골수 공여자를 찾지도 못했지만 찾아도 너무나 비싼 비용의 벽에 부딪혀 아들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을 모정(母情)이 애달다.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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