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철 전 美대사 “한미FTA-전시작전권 차기 정권으로 넘겨야…”

  • 입력 2006년 9월 14일 10시 41분


“미국은 해방 이후부터 한국의 유일무이한 동맹국이다. 특정 정권의 이념 성향 때문에 한미관계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

양성철(67) 전 주미대사는 13일 동아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미FTA, 전시작전권 등 한미관계 전반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그는 한미FTA와 관련해 “지난 5월 미국에 갔을 때 한미FTA 협의는 연장이 가능하다고 들었다”며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노무현 정부가 한건주의에 눈이 멀어 졸속으로 처리해 국익에 반하는 일을 자행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또 전시작전권 논란에 대해서는 “53년간 지속돼 온 한미동맹 관련 문제를 특정 정권이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된다”며 “분단 상황에서 남북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만큼 이양 시기나 내용에 대한 협의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미국의 강경한 대북제재 방침에 대해서는 “부시 정부가 남북의 협력과 대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이라며 “남북관계를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지, 강경노선은 옳지 않다”고 성토했다.

양 전 대사는 특히 ‘굳건한 한미동맹’을 강조했다.

그는 “노 정부뿐 아니라 역대정부도 미국과 이견은 있었다”고 운을 뗀 뒤 “부시 정부와 노 정부가 일시적으로 갈등을 빚는다고 해서 한미동맹의 틀이 깨지거나 근본 방향이 흔들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한미간의 이견을 잘 조정하고 조율해서 갈등 관계를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 전 주미대사는 2000년 8월부터 2003년 4월까지 주미대사를 지냈으며, 현재는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석좌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14일 한미정상회담이 개최된다.

“이번 회담에서 노무현 정부는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한미FTA, 전시작전통제권,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에 대한 가닥을 잘 잡아야 한다.”

-한미FTA와 관련해서는 집권여당 내에서도 반대 여론이 나오는데.

“FTA는 미국 일정대로라면 내년 6월말에 끝나게 돼 있다. 그런 만큼 적어도 100일 전에는 양국간 협상이 타결돼야 한다. 노 정부는 미국의 일방적인 스케줄에 밀려서는 안 된다. 지난 5월에 미국에 갔을 때 한미FTA는 연장 가능하다고 들었다. 현 정부는 연장이 안 되는 것처럼 국민들에게 호도해서 우리가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노 정부가 한건주의에 눈이 멀어 졸속으로 처리해 국익에 반하는 일을 자행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전시작전권 논란은 어떻게 보나.

“53년간 지속돼 온 한미동맹 관련 문제를 특정 정권이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된다. 부시정부는 임기가 2년 남짓 남았고 노 정부는 1년 정도 남았을 뿐이다. 또 나토(NATO)나 미일동맹을 잘 참고해야 하지만 그들과 우리는 처한 상황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다. 남북간 대치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함부로 흥정해서는 안 된다. 궁극적으로는 언젠가는 가져와야겠지만 이양 시기나 내용에 대한 협의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미FTA와 전시작전권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한미FTA와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를 역사적으로 어떤 가치나 업적을 남기기 위해 하는 작업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남북간의 대화나 협상, 협력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대결구도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최근 미국이 대화를 통한 북한의 6자회담 복귀 노력을 포기하고 강경한 대북 제재조치 방침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정부가 남북의 협력과 대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우리가 할 이야기는 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활성화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지, 강경노선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보수, 진보를 떠나 우리나라의 국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남북간에 긴장, 갈등이 고조되면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그럼, DJ정부나 노 정부처럼 북한에 조건 없이 지원해야 하나.

“북한에 퍼줬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과거처럼 (남북간에) 갈등이 깊었다면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 중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겠나. 평화와 안정된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외교축이 과거의 ‘한미일’에서 ‘남북중’으로 옮겨졌다는 시각이 있다.

“객관적인 상황과 특정 정책이 그런 상황을 부추긴 것으로 봐야 한다. 객관적인 상황은 중국의 부상이다. 중국은 지금 우리나라의 통상 제1국이 됐다. 특정 정책이란 부시 정부의 ‘북한 몰아붙이기’ 정책을 말한다. 그 두 가지가 ‘남북중’ 중심의 외교라인을 형성케 했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미동맹이 위기를 맞았다고 한다.

“위기가 아니다. 한미동맹은 굳건하다. 부시 정부가 8년 동안, 노 정부가 5년 동안 일시적으로 갈등을 빚는다고 해서 한미동맹의 틀이 깨지거나 근본 방향이 흔들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부시 정부의 정책과 한미동맹은 다른 것이다. 한미동맹은 53년이나 지속돼 온 끈끈한 힘이 있다.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등 역대 정부도 미국과 이견이 있었다. 노 정부만 이견이 있는 게 아니다. 훌륭한 리더십은 이견을 잘 조정하고 조율해서 갈등 관계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현 정부의 대미정책 어떻게 보나.

“미국은 해방 이후부터 한국의 유일무이한 동맹국이다. 특정 정권의 이념 성향 때문에 한미관계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 한미관계의 역사와 지혜, 전통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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