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수학’ 사라지나…“학교에서 안 가르쳐요”

  • 입력 2006년 9월 21일 11시 44분


지난 15일 서울 강북에 위치한 K고의 3학년 교실. 4교시 수학 시간인데 교사는 보이지 않고 학생들은 자습을 하거나 끼리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학생에게 “왜 수업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학교에서 수학을 포기한 아이들이 많아서 수업을 아예 안 한다. 선생님들도 학원에 가거나 과외를 통해 수학을 공부하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이 학교 박명진 교사는 “수리영역을 반영하지 않는 대학교가 많아지면서 어려운 수학공부는 시간 낭비라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팽배해 있다. 솔직히 수학을 가르치는 게 어렵다. 학생들은 일찌감치 수학을 포기하고 그 시간에 다른 외국어나 언어 쪽에 투자하려 한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18일 경기도 안양시 A고. 이 학교는 사탐반(사회탐구영역)과 수학반으로 나눠 ‘분반수업’을 하고 있었다. ‘사탐반’ 학생들은 아예 수학을 배우지 않았다.

강명석 군은 “정부에서 수학을 하지 않아도 대학에 갈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놓으니까 선생님들이 수학을 애써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학을 포기하고 다른 과목에 투자하라고까지 한다”고 말했다.

이정길 교사는 “현 정부 들어 도입된 ‘7차 교육과정’은 ‘선택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듣고 싶은 과목은 듣고, 듣기 싫은 과목은 듣지 않아도 된다. 그 같은 교육과정에 따라 입시에 수학을 반영하지 않는 대학교가 15~20% 정도 되기 때문에 수학에 자신 없는 학생들은 스스로 포기한다”고 말했다.

19일 찾은 서울의 S고는 쉬는 시간을 맞아 학생들이 대거 이동을 하고 있었다. 한 학생에게 “어딜 가느냐”고 물었더니, “수학 수업을 들으러 간다. 반 아이들 중 수학을 배우려는 아이들은 이렇게 다른 반으로 이동해서 수업을 듣고 듣기 싫은 아이들은 교실에 남아 자습을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학교를 졸업한 박희진(재수생) 양은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지 않으니까 공부를 안 해도 되는 줄 알았는데, 결국 수학 때문에 이렇게 재수하게 됐다. 선생님들은 왜 수학을 포기해도 된다고 말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성토했다.

강길수 교사는 “‘2분의3×2=3’이라는 것을 모르는 학생들도 있다. 이런 학생들이 어떻게 미적분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차라리 일찍 수학을 포기하고 수학이 반영되지 않는 대학을 추천해주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반박했다.

20일 인천의 I여고. 교사는 한 학생에게 뭔가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나머지 학생들은 다른 책을 펴놓고 공부를 하거나 일부는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잤다.

이희진 양은 “수학을 배우려는 학생들만 선생님이 1대 1로 가르치고 나머지는 다른 공부를 한다”고 말했다.

손희석 교사는 “수능의 국어, 영어, 수학, 사회 중 두 과목만 잘 보면 되기 때문에 굳이 학생들이 어려운 수학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수학을 포기한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르쳐봤자 입만 아프다”고 말했다.

이번 취재 결과 일선 고등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학 수업의 파행 유형은 ‘자습, 분반수업, 선택수업, 1대1 수업’ 등 크게 네 가지였다.

“현 교육정책 유지되는 한 수학 설 자리 잃어…”

입시 전문가들은 학생들이 수학을 포기하는 이유를 ‘평준화 정책’과 ‘7차 교육정책’ 때문이라고 했다.

노량진 J학원 수학강사 이상태 씨는 “평준화 정책이 실시된 이후 수학을 포기하는 연령대가 낮아졌다”며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 10%, 중학생 때는 30%, 고1 때는 40%, 고3때는 70% 이상이 수학을 포기한다”고 밝혔다.

그는 “하향평준화를 가속화시키는 평준화 정책이 고수되는 한 수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은 나날이 늘어날 것”이라며 “잘못된 대입 정책이 수학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이러다 고교 교과 과정에서 수학이 자리를 아예 잃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교육인적자원부 대입정책 담당자는 “‘7차 교육과정’에 따른 대입제도 때문에 학생들이 수학을 포기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며 “학생들이 어려워서 포기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주 : 인터뷰에 응한 학생과 교사는 모두 익명으로 처리했습니다.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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