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이 교수가 아내 몰래 ‘비밀통장’ 갖게된 사연

  • 입력 2006년 10월 6일 11시 55분


우체통에 담긴 아이들의 소박한 소원을 읽고 있는 박홍이 교수.
우체통에 담긴 아이들의 소박한 소원을 읽고 있는 박홍이 교수.
“일주일에 단 1시간만이라도 아이들이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절대 나쁜 길로 빠지지 않아요. 누군가 따뜻한 마음을 전해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면 아이들은 빗나가지 않습니다.”

‘희망 전도사’ 박홍이(62,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를 만나기 위해 추석 연휴가 시작된 지난 2일 서울시 강서구 가양4종합사회복지관을 찾았다. 박 교수는 아담한 우체통을 앞에 두고 있었다. 호기심을 보이는 기자에게 그는 “소원 우체통”이라고 짧게 말한 후 우체통을 열었다. 안에서 각양각색의 편지가 쏟아졌다. 박 교수는 하나하나 정성들여 읽었다. 때론 웃음을 지으며, 때론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 사연 읽으며 운적도 많아요”

“소년소녀가장들이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이 있어도 말을 못해요. 그런 아이들에겐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박 교수가 오랜 세월 자원봉사로 소년소녀가장을 가르치며 알게 된 아이들의 마음이다. 그런 마음고생이 안타까워 고안한 게 ‘소원 우체통’. 차마 말로 못하면 글이라도 써주기를 바라는 박 교수는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다.

박 교수의 진실한 마음이 통한 것일까. 아이들은 매주 마음속에만 간직했던 사연들을 우체통에 넣었고, 박 교수는 아이들의 소원에 답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다.

한 초등학생은 ‘작가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우선 글씨부터 잘 쓰고 싶다’는 소원을 적었다. 박 교수는 자신이 직접 글씨 지도를 했고 아동 작가를 섭외해 체계적으로 글 쓰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한 어린이는 ‘아빠가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시력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사연을 썼다. 박 교수는 즉시 세브란스 병원에 의뢰해 아빠의 시력을 되찾는 데 나섰지만 병원에서 “시력회복은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괜찮아요”라며 밝게 웃는 아이의 모습이 박 교수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대신 그는 자비를 털어 그동안 미납된 아이의 방과후 교육비를 내줬다.

최근에는 한 남매의 사연이 그의 눈시울을 적셨다. 누나가 동생의 생일을 맞아 엄마와 함께 가족여행을 가고 싶다는 바람을 적은 것이었다. 엄마 혼자서 아이들을 키워야 하기 때문에 가족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박 교수는 여행사에 사연을 말하고 동생의 생일에 맞춰 가족여행을 갈 수 있도록 주선했다. 물론 여행 경비의 일부는 박 교수가 지불했다.

“아이들의 글을 읽을 때면 참으로 안타까워요. 정말 몇 만 원만 있으면 간단히 할 수 있는 것도 못하거든요. 아이들 사연 읽으며 운 일도 많습니다.”

“외로움이 죽음보다 무섭다”는 한 할아버지의 말 충격

박 교수는 매주 금요일은 시간을 꼭 비워둔다. 그날은 우체통 개봉도 하지만 복지관에서 소년소녀가장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거나 학습지도를 하기 때문이다.

“어른들하고 약속 잡힌 건 취소해도 상처가 안 되지만 아이들은 아니거든요. 저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서운하게 해서는 안 되죠.”

격주로 토요일에는 독거노인들을 찾아 목욕도 시켜주고, 방청소나 잔심부름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이들의 ‘말벗’이 돼주는 것.

“한 할아버지께서 ‘외로움이 죽음보다 무섭다’고 하더군요. 정말 충격이었죠. 그 할아버진 일주일 동안 말 한마디 못하고 지내셨어요. 말벗이 없으니까요. 매일 죽는 생각만 하셨는데 요즘은 밖에 나가 친구도 사귀며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박 교수는 여러 단체를 조직해 소년소녀가장이나 독거노인 등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전하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단체가 소년소녀가장·독거노인·비인가시설을 돕는 ‘나눔동네’다.

15년 전 일본인 선교사 나카사카 구미코 씨가 강화도에서 운영하는 농아인교회가 어렵다는 소식을 접하고 후원하기 위해 만들었다. 처음에는 참여한 인원이 적었지만 지금은 200여명의 대학교수 등이 동참해 흔쾌히 후원금을 내주고 있다. 또 한 사람이 한 주에 한 시간씩 봉사하는 ‘즐거운 톰’, 소아암 어린이들의 쉼터인 ‘한빛사랑나눔터’ 등 다양한 후원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박 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개인이나 집안에도 소요되는 비용이 있을 텐데, 어떻게 매번 자비를 털어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걸까. 박 교수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살짝 귀띔했다.

“아내가 모르는 비밀통장이 있어요. 다행히 제가 미국에서 학위를 받아서 영어를 잘해요. 영어로 작문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A4 한 장당 4만 원씩 받아요.”

‘사람이 귀하다’는 아버지 말씀 늘 가슴속에 새겨

박 교수의 삶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는 대학교 3학년 때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다. 아버지가 하던 공장이 부도나 대학을 다닐 수 없었던 것이다. 9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책임감도 컸다. 그는 와이셔츠 기우는 일, 막노동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며 동생들을 챙겼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힘들다고 공부를 포기하면 영영 패배자의 삶을 살 것 같았다. 그는 단단히 각오를 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돈이 없었기에 낮에는 일하고 밤에 공부했다. 하루 2~3시간 정도 잤다. 이를 악물고 공부한 끝에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1981년 귀국해 부산대 교수로 부임했다. 1986년 연세대로 옮긴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도시 빈민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나섰다.

박 교수의 봉사정신은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다. 그는 자신의 봉사활동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늘 ‘사람이 귀하다’고 말씀하셨어요.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도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는 삶을 사셨어요. 밖에 나가시면 입은 옷을 벗어주고, 가진 돈 주고…. 줄 수 있는 것이면 뭐든 다 주셨어요. 그런 아버지의 말씀과 행동을 가슴에 새기고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음악 통해 아이들에게 좋은 역할 모델 돼주고 싶어요”

박 교수는 요즘 새로운 모임을 만들기 위해 분주하다.

“일대 일로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음악학교’를 만들려고 해요. 음악을 통해 ‘멘토-멘티’ 관계를 맺어 아이들에게 좋은 역할 모델이 돼주려고요.”

박 교수가 만들려는 음악학교 명칭은 ‘이지스(aegis)’다. ‘이지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말로 ‘제우스의 방패’를 의미한다. 즉, 아이들이 꿈을 갖고 밝게 자랄 수 있도록 든든한 방패가 돼주고 싶다는 박 교수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긴 시간 인터뷰를 끝내고 복지관을 나섰다. 어둠이 깔린 거리를 걸으며 박 교수가 말한 ‘단 1시간’에 대해서 생각했다.

“일주일에 ‘단 1시간’만이라도 아이들이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절대 나쁜 길로 빠지지 않습니다.”

동아닷컴 김승훈 기자 hun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