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대장정을 시작한 지 94일째인 이달 1일 대전에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를 만났습니다. 그는 다음 민심대장정 예정지인 대구로 이동하려는 중이었습니다. 텁수룩한 수염, 수수한 옷차림…. 세계를 누비던 지사 시절의 면모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까만 때가 낀 손톱과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에서 시골 장돌뱅이의 면모까지 느껴졌습니다. <편집자주>》
손 전 지사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고달픈 민심’ 얘기부터 쏟아냈다.
그는 “요즘 국민들은 살기가 힘들고 희망을 못 가진다. 오늘 고생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언제 고생 안 하고 살았나. 그러나 내일 희망이 안 보인다는 것, 이게 힘들다는 말이다”며 한탄했다.
이어 “고달픈 민심은 대부분 그릇된 정치에서 비롯됐다”며 “정치인들이 국민 생활은 돌보지 않고 자기들끼리 싸우고 자기들끼리만 해쳐먹어서 그렇다”고 격하게 지적했다.
손 전 지사는 ‘전시작전권’ ‘한미 FTA’ ‘정계개편’ 등 정치현안에 대한 소신도 피력했다.
그는 ‘전시작전권 환수’와 관련해 “지금 우리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전시작전권 환수로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그것도 무슨 독립운동이나 하는 것처럼 자주를 주장하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국제관계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려는 얄팍한 술수를 부려서는 안 된다”고 비난했다.
또 ‘한미 FTA’에 대해서는 “농민들이 듣기 좋도록 이야기하면 ‘나도 반대다’하면 되겠지만 그건 내가 할 얘기가 아니다”며 “자유무역은 세계적인 추세이기 때문에 거스를 수는 없지만 FTA가 타결되더라도 농촌, 농업을 보존하고 지킬 수 있는 바탕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정계개편’에 대해 손 전 지사는 “우리 농민들, 국민들은 정계개편이나 정치구도가 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며 “국민 생활을 어떻게 하면 좋게 해주고, 잘 살게 해주고,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느냐, 이것이 정치개혁과 정치의 중심과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전 지사는 민심대장정 이후의 계획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그는 “민심대장정 이후에는 ‘국민과의 대화’를 구상중”이라며 “그동안 갔던 곳을 다시 방문하거나 업종별로 여러 사람들을 만나려 한다. 지금까지는 보고 듣고 체험했다면 다음에는 궁금한 걸 묻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손 전 지사는 민심을 어루만질 때는 온화했지만 현 정권의 실정을 비판할 때는 매섭고 날카로웠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민심대장정이 시작된 지 94일째다. 손 전 지사가 현장에서 접한 ‘민심’은 한마디로 무엇인가?
“살기 힘들고 희망을 못 가진다는 것이다. 오늘 고생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가 언제 고생 안 하고 살았나. 그러나 내일 희망이 안 보인다는 것, 이게 힘들다는 말이다. 그 원인 제공은 대부분 정치에 있다. 정치인들이 국민 생활은 돌보지 않고 자기들끼리 싸우고 자기들끼리만 해쳐먹어서 그렇다.”
-바라는 정치란 어떤 것인가.
“우리 정치가 국민 생활과 가까워져야 한다. 근로자나 시민들의 어려움을 직접 겪어야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있다. 현재의 모습과 문제점을 직접 체험하면서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현장 생활정치’가 차츰차츰 자리잡아가야 한다.”
-파악한 ‘민심’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역할을 하려고 하는가.
“지금은 무슨 역할을 하겠다고 결론을 내리고 싶지 않다.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탐색하고 있다. 뭐가 문제인지, 뭐가 문제라고 이야기하는지 듣고 보고 체험하고 있다.”
-민심대장정 이후 지지도도 상승하고 국민들이 진정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분위기다. 본인 스스로 생각할 때 민심대장정 이전과 이후, 달라진 점이 있나.
“민심대장정에 나서서 일 좀 했다고 변하겠나. 사람이 바뀌면 얼마나 바뀌겠어. 다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고 다양한 삶과 생활 현장을 직접 보고 하니까 그런 것들이 앞으로 국가적인 과제를 세워나가는데 바탕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당내 소장파들은 민심대장정 이후 확실한 대권플랜을 제시해야 한다고 한다. 민심대장정 이후 구상은.
“지금 대권 프로젝트를 이야기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민심대장정을 시작한 본래의 취지를 더욱더 깊이 있게 살려나가는 게 중요하다. 민심대장정 이후에는 ‘국민과의 대화’를 구상중이다. 그동안 갔던 곳을 다시 방문하거나 업종별로 여러 사람들을 만나려 한다. 지금까지는 보고 듣고 체험했다면 다음에는 궁금한 걸 묻는 형태가 될 것이다.”
-소장파들은 손 전 지사가 3강 구도를 이룰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나섰다. 내년 대선을 위해 3강구도가 좋다고 보나.
“2강이다 3강이다 하는 정치구도나 정계개편이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 국민들은 정계개편이나 정치구도가 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국민 생활을 어떻게 하면 좋게 해주고, 잘 살게 해주고,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느냐, 이것이 정치개혁과 정치의 중심과제가 돼야 한다.”
-내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국민들이 잘 살게 해달라며 나라를 맡길 수 있는 당이 되느냐에 달렸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나라당이 국민에게 진실 되게 신뢰를 받는 게 중요하다.”
-‘전시작전권’ 관련 한미동맹 균열을 걱정하는 여론이 높다.
“전시작전권 문제가 이렇게까지 전개된 건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전시작전권 환수다 뭐다해서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그것도 무슨 독립운동이나 하는 것처럼 자주를 주장하는데…. 이렇게 얄팍한 술수를 부려서는 안 된다. 국제 관계에서는 철저하게 국익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서 국익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 국제관계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잘못이 생긴 거다.”
-한미동맹 위기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한미동맹은 상당히 위기다. 국제관계는 새로 만들려고 하면 힘들지만 깨려고 하면 아주 쉽게 깨진다. 한미동맹은 우리나라의 커다란 자산이다. 그 자산을 바탕으로 대일외교도 하고 대중외교도 하고 대북관계도 해야 한다. 그래야 질서와 체계를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다. 한미관계가 깨진 상태에서 한국은 북한에 별거 아니다. 지금은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외교적인 자산을 잃어버린 상황이라서 앞으로 회복하려면 많은 시간이 소요될 거다.”
-정치권에서 연말 정계개편설이 나오고 있다. 열린우리당에서 손 전 지사를 대권후보로 영입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내가 좋으면 한나라당으로 들어오면 될 거 아냐. 그리고 지금은 현실 정치나 정계개편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한미 FTA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농민들은 한미 FTA 절대 반대다. 예전에는 여의도 앞에서 농민대회가 있을 때 농민단체나 한총련 소속 사람들이 나와서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민심대장정을 시작하며 농촌에서 시위에 한 번도 안 간 사람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농민들이 반대하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자유무역은 세계적인 추세이기 때문에 거스를 수는 없다. FTA가 타결되더라도 농촌, 농업을 보존하고 지킬 수 있는 바탕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전부 아니면 전무는 나중에 얻을 것도 얻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농민들이 듣기 좋게 이야기하려면 ‘나도 반대다’하면 되겠지만 그건 내가 할 얘기가 아니다.”
-경제가 너무 어렵다. 외국에서는 우리나라의 미래가 어둡다고까지 하는데….
“뭐니 뭐니 해도 기업을 중시해야 한다. 기업이 의욕을 갖고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기업을 존중해야 한다. 기업이 일자리를 만든다는 생각을 확고하게 가져야 한다. 또 시장을 중시하고 시장을 어렵게 여겨야 한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해 달라.
“지금 대북정책이나 있나. 자기들 마음대로 했지. (대북정책) 없다.”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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