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사람통일’을 이루는 데 가교 역할하고 싶어요”

  • 입력 2006년 10월 14일 12시 27분


“북한과 새터민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남북한의 괴리감을 좁히고 진정한 ‘사람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고 싶어요.”

국내 북한학 관련 ‘여성박사 1호’ 박정란(34·사진) 서울대 통일연구소 선임연구원을 만나기 위해 13일 오후 연구소를 찾았다. 환하게 웃으며 기자를 맞는 그를 본 순간 ‘딱딱한 분야를 전공했으니 딱딱한 사람일 것’이라는 선입견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는 인터뷰 내내 밝은 얼굴로 따뜻한 인간미를 풍겼다.

아버지 영향 받아 ‘북한학’ 전공

“어릴 때부터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어요. 아버지께서 국방부에서 대북방송을 담당하셨거든요. 평소 아버지와 북한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박 연구원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북한학을 전공하게 됐다”며 “아버지께서 북한 관련 책도 많이 집필하셨는데 컴퓨터를 다루지 못해 대신 타이핑을 하면서 북한의 정치, 행정 체제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 박완신(68) 씨는 국방부에서의 실무 경험을 살려 북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관동대 북한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박 연구원은 1997년 경희대 행정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북한의 정치, 행정 체제에 대한 연구에 매진했다. 2000년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하면서부터는 북한 사회와 탈북자에 관심을 가졌다.

“박사 과정에 들어간 후 2년간 새터민들을 위해 자원봉사활동을 했어요. 북한에 대해 나름대로 공부했다고 자부했는데 새터민들을 만나니까 잘못 알고 있거나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더군요. 그동안 북한의 정치, 행정, 군사에 대해서만 알았지 정작 북한 사람에 대해서는 몰랐던 거죠. 사람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어요.”

‘새터민’은 탈북자를 지칭한다. 지난해 초 통일부는 귀순주민, 탈북자, 북한이탈주민 등의 용어를 순우리말로 대체하기 위해 ‘새로운 터전에서 삶의 희망을 갖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 말을 공표했다. 지난 7월 통계상 국내에 거주하는 새터민 수는 8,700명에 달한다.

“남북한 ‘사람통일’ 이루는 가교 역할 하는 게 꿈”

박 연구원은 초창기 새터민을 접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남한 사람들은 보통 ‘탈북자’라고 하면 불쌍한 사람들이니 도와줘야 한다거나 아예 경계를 해버려요. 저도 그들을 만났을 때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또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죠. 그래서 서로 상처를 많이 주고받았어요.”

새터민과의 교류에서 이해부족으로 상심을 겪었던 만큼 그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았다.

“그들은 물질적인 가치를 지향하기보다는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려는 가치를 지향해요. 그런데 남한 사회는 그들이 경제적으로 극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편견을 갖고 있어요. 새터민들이 지향하는 가치와 남한의 시선에서 나타나는 괴리 때문에 그들은 갈등을 겪고 좌절하게 되고 심지어 남한 사회에 적개심을 갖게 돼요. 이젠 그들을 경제적 관점이 아니라 자아실현 측면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새터민을 통해 북한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고 있기 때문일까. 그의 꿈은 ‘남북한 사람통일’이다.

“앞으로 북한과 새터민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남북 주민들의 괴리감을 좁히고, 진정한 ‘사람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고 싶어요.”

원하는 공부하고 싶어 독학사 길 선택

박 연구원은 1992년부터 독학사 공부를 시작해 2년 만에 학사 학위를 따냈다.

“독학사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어서 취업이나 대학원 진학 때 어려움을 겪었어요. 정식 코스를 밟지 않았다는 거죠. 또 독학사로 대학을 졸업했다고 하면, 가정 형편이 아주 불우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솔직히 독학으로 공부해서 돈이 안 들어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긴 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시작한 건 아니에요.”

그는 대학에 두 번 떨어졌다. 도저히 삼수를 할 자신도 없고, 원하는 공부를 하지 못할 것 같아 독학사의 길을 택했다.

“1990년도에는 성적순으로 대학에 진학했어요. 원하는 학과에 소신 지원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죠. 하지만 저는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고 싶었고, 굳이 원하지 않는 학과에 가서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가야만 하는지에 대해 회의가 들었죠. 그래서 독학사를 선택했어요.”

그는 “고교-대학 코스로 이어지는 정해진 틀이 아닌 다른 길도 있고 한 분야를 열심히 하면 뭔가 이룰 수 있다는 사례가 됐다는 데 긍지를 가진다”고 말했다.

“북한핵실험은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것”

‘북한학’ 분야에서는 새내기에 해당하는 박 연구원은 이번 북한의 핵실험을 어떻게 볼까.

“김일성 시대와 김정일 시대는 근본적으로 달라요. 김일성 시대에는 북한 사람들이 김일성에게 두터운 신뢰를 보내 내부적으로 결속이 탄탄했어요. 하지만 김정일은 신뢰를 못 받아요. 그러니 내부적으로 결속도 안 되죠. 김정일은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김일성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위신이나 신뢰를 높여 내부적으로 결속을 탄탄하게 다지기 위해 핵실험을 한 겁니다.”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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