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성 전 장관 “외환위기, 치밀한 계획·전략에 따라 극복”

  • 입력 2006년 11월 7일 14시 55분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
“외환위기는 치밀한 계획과 전략을 바탕으로 극복해낸 겁니다. 임기응변식 처방에 의한 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환위기를 맞았던 나라들 중 우리나라가 가장 빨리 성공적으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이 점을 제대로 알아줬으면 합니다.”

‘외환위기 해결사’로 투입됐던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67ㆍ현 코람코자산신탁 회장)을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3월부터 1999년 5월까지 국민의정부 초대 재경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 전 장관은 최근 외환위기 전후 상황을 집대성한 ‘한국의 외환위기-발생, 극복, 그 이후(박영사)’를 출간했다. 외환위기 해결을 위한 정책 수립과 집행을 총괄했던 ‘경제 수장’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록했다는 점에서 세간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외환위기와 관련한 연구서나 회고록 형태의 책들은 많이 나왔다. 그러나 행정부 각료 출신의 인물이 임기 중 경험과 자료를 바탕으로 1080쪽에 이르는 방대한 실록 형태의 책을 발간한 적은 없었다. 특히 이 책에는 당시의 긴박했던 국내 경제 상황과 정부의 대응 전략, IMF(국제통화기금)의 초기대응 실패 등 외환위기 전반이 자세하게 다뤄져 있어 경제 사료로서의 가치도 매우 큰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투쟁·대립의 노사관계, 분식회계 우려”

“태국은 중앙은행에서 외환위기 관련 보고서를 만들었어요. 그러나 우리는 한국 경제사에 남을 큰 충격이었던 외환위기 실상을 집대성한 기록이 없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으로 남기는 게 외환위기에 재경부 장관을 지낸 제게 주어진 책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전 장관은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지난 5년간 구슬땀을 흘렸다. 전체 11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그의 집념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외환위기에 대해 “6·25사변 이래 최대의 국난이었다. 기업은 대량으로 도산하고 실업자는 크게 늘어나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탄을 맞은 것”이라면서도 “한국경제 운영의 기본 틀을 정실주의, 보호주의 및 정부규제에 기초한 시스템에서 시장, 민주주의 및 법치주의에 기초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시스템으로 혁신하는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외환위기의 가장 큰 이유를 ‘신뢰의 상실’에서 찾았다.

“외환거래의 대상이 되는 모든 나라, 즉 ‘글로벌 마켓’에서 신뢰를 상실한 겁니다. 당시 정실주의나 높은 부채비율, 투명성 부족 등으로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났죠. 압축성장에 따른 성장 신화에 취해 있다 보니 그런 구조적인 문제는 더욱 깊어졌죠.”

그는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었으면서도 아직 완전한 시장경제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며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경제의 신뢰를 회복하고 세계 속에 당당히 경쟁하는 것을 IMF 졸업 기준으로 삼는다면 한국은 아직 멀었습니다. 우리의 노동시장은 여전히 유연하지 않아요. 노사관계는 아직도 대립과 투쟁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국제기준에 맞는 투명성을 강조했지만 분식회계는 여전히 근절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개방·구조조정 적극적으로 해야”

이 전 장관은 ‘외환위기’라는 과거의 문제만을 규명하는 데 천착하지 않았다. 그는 “외환위기를 우리 경제가 재도약하는 반면교사로 삼을 것”을 강조한 후 한국 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는 방향도 제시했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위한 공적자금이 많이 투입됐습니다. 재정지출이 늘면서 발생한 재정수지 적자가 방만한 재정지출로 연결돼서는 안 됩니다. 바야흐로 전 세계는 경제 환경의 대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글로벌 환경에 처해 있다는 말이죠. 개방을 적극적으로 하고 구조조정도 지속적으로 하면서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 나가야 합니다. 동시에 사회안전망도 확충, 강화해야 합니다.”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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