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2008년 세계 9위 우주강국 도약”
우리나라 우주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백홍열(白鴻悅·53) 원장을 만나기 위해 7일 대전 유성구 대덕연구단지에 위치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을 찾았다. 항우연은 한국 우주개발의 핵심 인프라인 발사체와 인공위성, 발사장, 항공기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백 원장은 소탈한 웃음으로 기자 일행을 맞았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당찬 음성과 자신감, 달변이 인상적이었다.
백 원장은 ‘우주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인터뷰의 서문을 장식했다.
그는 “이 시대에 있어서 우주개발기술은 국가의 생존기술이자 전략기술”이라며 “미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선 우주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우주기술은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공공기술이자 고부가 가치의 미래 산업기술”이라고 덧붙였다.
백 원장은 “우주개발 기술은 다른 나라의 압력을 많이 받는다”며 후발국으로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다른 나라들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늘 주시하고 있다”며 “국제 통제체제 하에서 그런 압력을 극복해야 하는 게 가장 어렵다”고 했다. 이어 국제사회가 압력을 행사는 이유에 대해 “우주발사체와 미사일은 목적상으로는 구분되지만 기술상으로는 거의 구분이 안 되기 때문”이라며 “언제든지 군사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니 평화적인 위성이라고 해도 국제 사회에서는 늘 통제와 관심의 대상”이라고 밝혔다.
백 원장은 이어 “우리나라가 우주강국 대열에 오를 날도 멀지 않았다”며 우주개발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는 “늦어도 2008년까지는 국내 최초의 위성발사체인 KSLV-1(한국우주발사체)으로 우리 땅에서 우리 위성을 쏘아 올릴 예정”이라며 “그때가 되면 우리는 세계 9위의 우주기술력을 갖게 된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개인적인 고충과 부담을 내비치기도 했다.
“위성의 우주발사 성공 확률은 세계적으로 평균 80% 정도다. 역으로 실패 확률이 20%나 된다.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더구나 우주개발에 뛰어든 지 불과 10년도 안 된 우리나라가 우리의 발사체로 처음 위성을 쏘아 올리는 것은 그만큼 실패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만약 실패한다면 정서상 우리는 바로 역적이 될 것이다. 용서도 없고, 다음 기회도 안 준다. 부담이 크다.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됐으면 좋겠다.”
백 원장은 인터뷰 내내 또렷한 목소리로 우주개발 전반에 대한 소신을 피력했다. 다음은 백 원장과의 일문일답.
-21세기 왜 우주개발에 나서야 하나
“우주개발 기술은 국가 생존기술이자 전략기술이다.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주개발에 나서야 한다. 우주기술은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공공기술이기도 하다. 통신위성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통화하게 하고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게 한다. 정확한 기상예측은 기상위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또한 우주기술은 고부가가치의 미래 산업기술이다. 우리나라를 먹여 살려온 자동차, 조선, IT기술을 이어받아 다음 세대를 준비할 수 있는 성장 동력이다. 자동차를 해외에 팔 경우 톤당 3만불, 컴퓨터는 톤당 1백만불 받지만 위성은 톤당 1천만불 이상을 받는다. 우주 관련 기술을 발전시켜야 선진국과 경쟁해서 먹고 살 수 있다.”
-세계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점유율은 어느 정도인가.
“전 세계의 항공우주 시장은 연 4천억불 정도 된다. 우리는 0.5퍼센트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 점차 늘려나가 나라를 먹여 살릴 수 있는 기술이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은.
“통상 우주개발 기술은 네 그룹으로 나눈다. D그룹은 우주개발기술을 조금 하려고 하는 나라, C그룹은 위성 기술을 조금 갖고 있는 나라, B그룹은 위성을 만들 수 있는 나라, A그룹은 자체로켓 발사능력과 위성개발 능력을 보유한 나라다. 현재 우리는 B그룹으로 세계 12~13위정도 된다. 하지만 늦어도 2008년까지는 국내 최초의 위성발사체인 KSLV-1으로 우리 땅에서 우리 위성을 쏘아 올릴 예정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세계 9위의 우주기술력을 갖게 된다. 10위권 진입이 멀지 않았다.”
-우주강국들은 우리의 기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10년 전만 해도 위성을 만들어서 쏜다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도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동안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아리랑 2호 위성을 우리 힘으로 만들어 쏘아 올렸다. 그때 다른 나라에서는 ‘한국이 개발할 수 있을까’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올 7월 쏘아 올렸다. 아리랑 2호의 성능은 세계 6, 7위 정도다. 그런 위성을 만들어 발사했다는 데 다른 나라들이 깜짝 놀랐다. 그 이후 여러 나라에서 위성 수출이나 공동 개발 제의를 많이 해오고 있다. 우주 기술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높아진 거다.”
△중국, 제2의 우주전쟁 불붙여△
-강국들의 우주개발 상황은.
“우주개발 경쟁은 1950년대 미ㆍ소 경쟁에서 시작됐다. 두 나라의 경쟁이 어느 정도 끝난 뒤에는 약 20년간 주춤했다. 투자도 많이 안 했다. 스페이스 셔틀만 해도 30년 전에 만든 걸 그대로 쓰고 있다. 이 같은 우주경쟁의 정체 상태에 파문을 일으킨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은 2003년에 유인우주선을 보내며 강국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신(新)우주개발계획을 발표했다. 우주개발을 국가전략으로 삼겠다는 거다. 2001년에는 럼스펠드 美국방장관이 우주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보고서에는 역사 발전을 봤을 때 18세기까지는 땅을 지배하는 자가, 18~20세기 말까지는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했지만 21세기에는 우주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미국은 2001년에 우주를 선점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거다. 이번에 나온 신우주개발계획도 그와 같은 맥락에 있다. 러시아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우주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고, 일본은 중국에 질 수 없다는 자존심 때문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인도는 말할 것도 없다. 바야흐로 제2의 우주경쟁 시대가 열린 거다. 불을 붙인 건 중국이다.”
-동북아도 우주전쟁이 치열할 듯하다.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과 비교해서 어떤가.
“중국, 일본과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 일본은 지난 30~40년 동안 우주개발에 우리나라보다 10배 이상의 예산을 써왔다. 1970년대에 독자적으로 위성을 쐈고, 로켓도 개발했다. 유인우주선 발사에 성공한 중국은 세계 3위의 우주기술력을 자랑한다. 우리나라는 우주개발을 시작한 지 불과 10년밖에 안 됐다.”
-향후 우리나라의 우주 정책은 어떻게 추진되나.
“1996년 과학기술부 주도로 ‘국가우주개발 20년 계획’을 세웠다. 2008년에는 KSLV-1으로 100kg급 과학위성을 쏘아 올릴 거다. 우리 땅에서 우리 위성을 우리 로켓으로 쏘겠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저궤도위성인 아리랑 3, 5호와 정지궤도 위성인 통신해양기상위성 등 세 개의 위성을 개발하려고 한다. 장기적으로는 2015년까지 2.5톤급 위성을 쏠 수 있는 로켓을 개발할 뿐 아니라 13개의 위성을 개발해서 쏘아 올릴 예정이다. 이외에도 유럽의 GPS(인공위성자동위치측정시스템) 사업에도 참여해 국가 위성항법 체계를 구축할 것이고, 2008년에는 한국 최초로 우주인을 보낼 계획이다.”
-정부는 우주개발에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나.
“정부의 우주개발 계획은 전략적이고 실용적이다. 우리나라는 다른 분야에서도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우주개발에만 많은 돈을 쓸 수 없다. 때문에 정부의 기본 전략은 우주개발을 하되 실용적인 영역을 하자는 거다. 실제로 국민들이 이용할 수 있고 산업화할 수 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략적으로는 최소한의 능력만 확보하자는 거다. 2.5톤급 저궤도 위성을 가진다면 최소한 우주에 자주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 외국은 우리가 우주개발 계획을 전략적으로 했다는 것, 그리고 적은 예산으로 효율적으로 실용적으로 추진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우주개발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무엇인가.
“중국이 최초로 우주인을 보냈을 때 중국 국민들은 엄청나게 열광했다. 또한 세계 3위의 우주개발국으로 국가 신용도가 굉장히 높아졌다. 우주개발은 전 국민을 단합케 하고 국가 브랜드를 상승시켜 준다.”
-어려운 점은 없나.
“우주개발기술은 다른 나라의 압력을 많이 받는다.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늘 주시하고 있다. 국제 통제체제 하에서 그런 압력을 극복해야 하는 게 가장 어렵다.”
-다른 나라에서 왜 압력을 행사하나.
“우주발사체와 미사일은 목적상으로는 구분되지만 기술상으로는 구분이 안 된다. 우리는 우주기술 개발을 투명하게 하고 있다. 우리가 올린 위성은 평화적인 목적 아래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평화적인 목적으로 사용한다고 해도 국제 사회에서는 통제의 대상이다. 언제든지 군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시각으로 보기 때문이다. 아리랑 2호 위성은 절대 첩보위성이 아니다. 상업 목적으로 쓰고 있다. 그러나 국가가 위기 상황에 처하면 안보 목적으로 쓸 수밖에 없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신동아 11월호에 ‘미국이 러시아의 로켓 기술 이전을 막아 우리나라의 우주기술 개발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책적인 내용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사실이다 아니다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상황에서 보면 뉘앙스 측면에서 사실과 다른 면은 있다. 미국이 압력을 가해서 러시아가 우리나라에 기술이전을 안했다고 하는데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은 ‘발사체 기술을 확산하지 말자’는 NTCR(미사일기술통제체제) 내에서 통상적인 활동을 했을 뿐이다. 우리나라를 방해한 게 아니다. 러시아도 미국이 그렇게 해달라고 해서 그렇게 할 나라가 아니다. 규정상 TSA(우주기술보호협정)를 맺어야 NTCR 내에서 기술 이전을 할 수 있다. 지난주에 러시아와 TSA를 맺은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1년여 동안 우리 정부는 러시아와 TSA를 체결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왔고, 이번 TSA 체결은 통상적으로 볼 때 굉장히 빨리한 거다.”
-그렇다면 2007년 우리 땅에서 우리 위성을 쏘아 올리려는 계획에 차질이 빚어진 건 없다는 말인가.
“우리가 자체적으로 개발해야 하는 것들은 계획대로 진행돼 왔다. 다만 러시아에서 정보를 줘야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1년 전에 기술 이전을 받았어야 추진할 수 있는 일은 못하고 있다. 불가피하게 발사계획이 1년 정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2007년은 사실상 어렵다.”
-우리의 발사체로 우리의 위성을 쏘아 올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우리나라가 자주적으로 우주에 접근할 수 있다는 거다. 우주발사 능력이 없으면 아무리 우주개발에 나서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다른 나라에서 쏘아 올려 주지 않겠다고 하면 위성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무용지물일 뿐이다. 자주국가로서 우주를 자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한다는데 가장 큰 의미를 지닌다. 또 장기적으로는 발사체 상용화다.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의 위성을 쏘아주는 국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우주개발에 있어 아쉬운 점은 없나.
“외국은 우주탐사나 우주과학이 우주 계획의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는 국제우주협력과 우주탐사는 못하고 있다. 실용적인 위성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도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우주탐사, 우주과학, 우주활용 분야로 영역을 넓혀야 한다. 이 분야들은 단독으로 하기보다는 국제 협력을 통해서 해나가야 한다.”
-개인적인 고충은 없나.
“항공우주개발은 리스크가 크다. 위성을 개발해서 로켓을 쏘아 올리면 열 개 중 두 개는 실패한다. 우주개발에 뛰어든 지 불과 10년도 안 된 우리나라가 2008년 처음으로 우리 발사체로 위성을 쏘아 올린다.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서상 실패하면 역적이 된다. 용서도 없고, 다음 기회도 안 준다.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됐으면 한다.”
·대담 조창현 동아닷컴 기획취재팀장
·정리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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