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號 12월 정계개편 소용돌이 속으로…

  • 입력 2006년 11월 15일 11시 01분


2003년 11월 ‘100년 정당’을 표방하며 출범했던 열린우리당(사진 左). 2006년 11월 11일 ‘창당 3주년 기념식’(사진 右)은 당내 의원들의 관심에서도 벗어난 채 쓸쓸하게 진행됐다. 연합
2003년 11월 ‘100년 정당’을 표방하며 출범했던 열린우리당(사진 左). 2006년 11월 11일 ‘창당 3주년 기념식’(사진 右)은 당내 의원들의 관심에서도 벗어난 채 쓸쓸하게 진행됐다. 연합
100년간 해보겠다던 열린우리당이 창당 3년 만에 존재의 이유를 상실했다. 헤쳐 나오기 힘든 정계개편의 소용돌이가 당을 급하게 침몰시키고 있다. 당 내외에서는 ‘통합신당’과 ‘리모델링’, ‘영호남신당’ 등 갖가지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다. 우리당을 창당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얼마 전까지 ‘당을 사수하면서 리모델링을 해보자’는 입장이었지만, 측근들은 최근 “노 대통령도 정계개편에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바뀐 의중을 전하며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창당 동지인 정동영(DY), 김근태(GT), 천정배 등은 노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정계개편의 급물살 속에서 각자의 살길을 찾고 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의 비극은 분당에서 시작됐다”며 활활 타오르는 우리당發 정계개편에 기름을 끼얹고 부채질을 하고 있다.

우리당의 한 중진의원은 14일 국회에서 기자와 만나 “이번 정기국회 회기가 9월1일부터 12월9일까지인데, 회기 중이라도 내년도 예산안 심의만 끝나면 당은 사라질 것”이라며 “해체는 시간문제”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은 수면 위와 아래에서 크게 요동치고 있다. 정치인들은 서로의 이익을 계산하며 주판알 두드리기에 여념이 없다.

먼저 노 대통령과 DJ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DJ는 최근 목포를 방문해 ‘무호남무국가(無湖南無國家 :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를 외치고 서울, 부산, 공주 등을 오가며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런 DJ에 기대듯 지난 4일 서울 동교동 자택을 전격 방문해 DJ와 오찬을 함께했다. 청와대는 “정치적인 얘기는 없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정치권에서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 하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만나서 부동산 대책을 논의했다고 하는데 웃기는 일이다. 건교부 장관을 만나야지 동교동에 가서 무슨 부동산 얘기를 하느냐, 삼척동자도 웃겠다. 지역감정을 고취시켜 새로운 정치판을 짜기 위한 서곡을 울린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DJ와 노 대통령의 움직임은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키며 정계개편의 큰 틀을 흔들었다. 두 사람을 배재한 채 추진되던 ‘우리당+민주당+국민중심당+고건’의 통합신당 밑그림은 붓질을 멈췄다. 고건 전 총리와 한화갑 민주당 대표는 정치권의 움직임을 주시한 채 다음 수를 두기 위한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각 정당은 이해득실 따지기 바쁘다. 자신들의 작은 계파로는 독자적으로 살아남기 힘들다고 판단한 GT와 DY는 친노세력을 배제한 채 연합전선을 구축하겠다는 복안이다. 민주당과 국민중심당은 우리당에서 이탈하는 세력을 모아 세를 불리겠다는 나름의 생존전략을 세우고 있다.

정치권이 요동치며 민생은 뒷전으로 밀렸다. 시급한 현안이 산적했지만 13~1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리를 지킨 의원은 50명을 넘지 못했다. 내년 대선을 생각한다면 사실상 17대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262회 정기국회는 이렇듯 정계개편과 맞물려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다.

‘12월 빅뱅’을 앞두고 숨 가쁘게 돌아가기 시작한 정치의 수레바퀴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멈춰설까. 언뜻 그림이 손에 잡힐 듯하다가도 아스라이 멀어진다. 과연 정치는 생물(生物)이다.

△열린우리당=“당 해체 후 신당 창당 지배적”

‘12월 빅뱅’의 진원지인 열린우리당에서는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백가쟁명(百家爭鳴)식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구상들의 큰 줄기를 잡아보면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통합신당론’이다. ‘통합신당’은 당내 계파 및 의원들에 따라 합종연횡의 양상이 다르다. 현재 당내에서 가장 큰 지지를 받고 있는 시나리오는 민주당, 국민중심당, 고건 전 총리, 박원순ㆍ정운찬 등 예비 대선후보군 등을 포괄적으로 아우르는 ‘범여권 통합신당 창당’이다. 김한길 원내대표는 “열린우리당 창당이란 정치실험을 마감해야 한다. ‘다시 시작하는 아침’이 필요하다”며 당의 발전적 해체와 통합신당에 힘을 실었다.

한편 386 학생운동권 출신의 송영길 의원은 ‘중도개혁세력’ 중심의 통합신당을 주창하고 있다. 송 의원은 “여야당 모두 해체 후 이념과 정책이 같은 의원들이 모여서 중도개혁을 지향하는 제3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둘째, ‘당사수론(재창당론)’이다. 이는 신기남 의원을 비롯한 ‘친노직계’ 의원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들은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당을 쇄신한 후 외부 세력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창당 초심으로 돌아가 당을 똑바로 세운 후 여당이 주축이 돼 개혁 세력을 규합해야 한다는 의미다.

셋째, ‘노무현-DJ’ 중심의 ‘영호남 신당창당론’이다. 이는 여당 내 영남권 대표주자인 김혁규 의원이 주도하고 있다. 김 의원은 “열린우리당 주도의 소규모 정계개편이 아니라 노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중심의 영호남 신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發 정계개편 논의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는 장본인은 GT와 DY이다. 이들은 최근 잇따라 ‘분당 책임론’을 거론하며 정계개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ㆍ현직 의장들이 손을 잡고 신당 창당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당 밖에서는 고건 전 총리가 여당發 정계개편에 가세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여당이 추진하는 통합신당에 관심이 있다”고 말한 뒤 ‘12월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그는 자신의 깃발 아래 열린우리당 내 통합신당파와 민주당ㆍ국민중심당 일부, 그를 지지하는 정치권 외곽의 전문가 그룹인 ‘희망연대’, ‘미래와 경제’ 등을 한데 아우르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민주당 “여당發 정계개편 좌시하지 않겠다”

10·25 해남ㆍ진도 재보궐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은 여당을 향해 “반성하고 돌아오면 받아주겠다”며 기염을 토했다. 이는 선거 승리 여세를 몰아 향후 정계개편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민주당의 이 같은 파죽지세에 쐐기를 박은 것은 고건 전 총리다. 고 전 총리가 ‘신당 창당’을 선언한 이후 민주당은 당에 미칠 파장을 계산하며 내부결속과 함께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DJ의 현장 복귀도 한창 타오르던 민주당 재건의 불길에 찬물을 끼얹었다.

민주당의 당면 목표는 호남에서 맹주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여당의 이탈세력과 국민중심당을 한데 묶어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고 전 총리의 신당과 경쟁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당내 일부 세력이 오래전부터 고 전 총리 측과 긴밀하게 접촉해오고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당의 존재를 위협받을 수도 있다. 이 같은 당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한화갑 대표는 최근 “고건 신당은 민주 2진 정당이 될 것”이라며 폄훼하고 나섰다. 당내 이탈 세력을 막겠다는 포석이다.

민주당은 여당 의원들의 설득과 포섭에도 심혈을 쏟고 있다. 우리당 내 호남 및 민주당 출신 의원들에게 구애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여당發 정계개편에서 이탈해 나오는 의원을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해 세를 불리겠다는 전략이다.

△고요 속 태풍 한나라당 “여당發 정계개편 비판 동시에 집안단속 부심”

한나라당은 겉으로 웃지만 속으로는 고름이 옮을까봐 두려워하고 있는 형국이다. 당 지도부는 여당發 정계개편을 강하게 비판하는 한편,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도록 집안 단속에 분주하다.

한나라당은 여당의 정계개편에 대해 “정치 투기꾼들의 도박정치이자 망국적인 지역구도를 되살리려는 구태정치다. 위장과 교란으로 국민을 속이는 새판 짜기를 당장 그만두라”고 비난하고 있다. 대책으로는 ‘한민공조’를 꿈꾸고 있다. 차기 대선을 위해서도 공조는 바람직하다. 강재섭 대표는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합쳐질 수 있다면 아주 바람직한 일”이라고 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합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이 호응하지 않아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한나라당은 당내에서 제기되는 ‘보수대연합론’을 경계하고 있다. 이는 김무성 의원이 “열린우리당이나 민노당과 맞는 의원들은 그쪽으로 가고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모여 제3당을 창당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촉발됐다. 이른바 ‘한나라당發 정계개편’인 셈이다. ‘보수대연합론’은 한라나당의 해체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여파가 상당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런 만큼 한나라당은 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국민중심당 “정계개편은 당이 재기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

국민중심당은 ‘여당發 정계개편’에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겉으로는 여당을 향해 “국민이 위임한 기간까지 최선을 다하고 겸허하게 심판 받는 의연한 정당으로 남으라(정진석 원내대표)”며 비판하고 있지만, 물밑에서는 뜻이 맞는 세력들의 결집을 도모하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신국환 대표는 “정계개편을 통해 당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며 “뜻이 맞는 분들을 규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계개편을 ‘국민중심당이 재기하는 절호의 기회’로 삼겠다는 생각이다.

△민주노동당=“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민노당은 여당發 정계개편에 대해 한마디로 무관심하고 부정적이다. 권영길 의원단 대표는 여당의 정계개편에 대해 “재집권을 위한 ‘반(反)한나라당 지역연합’에 불과하다”며 “열린우리당은 정계개편을 고민하기에 앞서 집권세력으로서 무능과 경제·민생정책의 총체적 실패에 대한 통렬한 반성부터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문성현 대표는 “솔직히 말해서 여당發 정계개편에 관심이 없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면 정계개편을 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는가.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뿐”이라고 말했다.

민노당은 이번 정계개편의 소용돌이에서 한 발 물러서 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떡고물’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여야당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민노당과 색깔이 비슷한 의원들은 민노당으로 가라”고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과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이 색깔론을 내세우며 당내 진보 의원들의 ‘민노당행’을 강권하는 대표적 인사들이다.

‘정치권 빅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여당發 정계개편에서 각 정치인들은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헤쳐모여’할 것으로 보인다. 어떤 모습이 될지 예단하기는 아직 섣부르다. 하지만 동아닷컴은 여야당이 어떤 전략으로 정계개편에 대비하고 있는지 정치권 깊숙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현장의 생생한 소리를 듣기 위해 5당 대표를 잇달아 만났다. 각 대표들이 쏟아낸 머릿속의 생각은 ‘12월 정치 빅뱅’을 예측할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다. 각 당 대표 인터뷰 기사는 15일부터 내보낸다.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