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몸매를 그린 붉은 간판이 자극적이다. 일행 3명이 계단을 올라 2층 문을 열고 들어서자 ‘비키니’ 차림의 여성 종업원들이 반겼다. 아랫부분은 속이 훤히 비치는 짧은 망사치마(랩 스커트)를 둘렀다. 조명 아래로 드러나 보이는 몸매가 선정적이다.
2층에는 빈 자리가 없다. 한 여성이 3층으로 안내한다. 3층에는 바와 4인용 테이블 두 개, 2인용 테이블 한 개, 룸이 두 개 있다.
바에는 30대 전후의 젊은 직장인들이 앉아서 맥주를 홀짝였다. 테이블에서는 넥타이를 맨 30~40대들이 양주를 마셨다. 이들 곁에는 여성 종업원이 한 명씩 붙어 앉아서 함께 술을 마셨다.
유일하게 비어 있는 계단 옆 테이블에 앉았다. 일행을 따라서 앉은 하늘색 비키니 차림의 여성은 가슴 명찰을 가리키며 “지영이예요”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메뉴판을 내민다. 맥주 한 병에 8,000원, 양주는 18만원부터 수십만 원까지 다양하다.
“기본 메뉴는 없냐”고 물었더니 “‘병맥 5병과 과일안주 기본세트가 7만5000원”이란다. 기본 세트를 주문한 뒤 주위를 둘러봤다.
뒤 테이블에서 3명의 손님과 여성 종업원이 양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돌리고 있었다. 술이 도는 동안 손님들은 여성의 몸을 만지거나 연신 성적인 말을 건넨다. 바에서도 젊은 손님과 여성 종업원이 무슨 이야기인지 신나게 주고받으며 술을 즐긴다.
지영 씨가 맥주와 안주를 내왔다. 그녀와 맥주를 마시며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눴다. 그녀는 올해 스물두 살이고, 대학을 휴학 중이란다. 2년 전에는 클래식 스타일의 정장을 입는 ‘모던 바’에서 일했다. 작년 초 강남의 섹시 바로 진출했다. 이후 마포·여의도 등 서울 곳곳의 섹시 바를 옮겨 다녔다. 그녀가 섹시 바에서 일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돈을 더 많이 주기 때문.
“일반 바 보다 돈을 많이 줘요. 쉽게 얘기해서 시급 3천원인 편의점 알바 보다 몇 배 더 받아요. 술 먹는 것도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힘든 것은 없어요. 간혹 말이 없거나 짓궂은 손님들이 있는데, 그들을 상대하는 게 좀 힘들 뿐이에요.”
“비키니 입고 일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냐”고 물었더니, 당돌한 대답이 돌아왔다.
“수영장에서도 비키니를 입는데, 여기서 입지 말란 법 있어요. 장소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해요. 우리 보고 여성 상품화니, 얼굴 팔아서 돈을 버니 하는데, 솔직히 상품이 되면 안 되나요. 우리도 밤새 노동해서 돈 벌어요. 몸을 파는 것도 아니잖아요.”
N섹시 바는 4층 건물에 2, 3층은 룸과 바, 테이블이 있고, 4층은 룸만 있다. 장사가 잘돼 역삼동, 마포, 무교동에 체인점을 두고 있다.
강정훈(34ㆍ가명) 실장은 “서울 곳곳에서 섹시 바가 성업 중이다. 2~3년부터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해 최근에는 급속하게 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종로는 다른 지역보다 장사가 잘되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가계는 바에 7명, 룸에 4명, 총 11명의 여성 종업원과 남자웨이터 1명이 일하고 있다. 이들에게 월 200~300만 원을 준다. 월 매출은 7000~8000만 원 정도 된다”고 말했다.
강 실장은 “스트립쇼를 하면 억대 매출을 올릴 수 있지만, 불법이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29일 밤 9시 서울 여의도의 M호프집
검은색 탱크탑에 초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성 종업원들이 분주하게 테이블을 오가며 술을 날랐다. 종업원 8명 모두 같은 차림이다. 나이는 20대 초반 정도.
평일인데도 빈 테이블은 없다. 30~40대 직장인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일반 호프집과 비교해서 가격차이는 없다. 500cc 한 잔에 3000원. 다만 안주를 의무적으로 시켜야 하는 것만 다르다.
여종업원들은 짧은 치마가 말려 올라가는 게 신경 쓰이는지 수시로 끌어 내렸다. 탱크탑도 사이즈가 맞지 않는지 몇 번씩이나 매만지곤 했다.
이영기(45ㆍ가명) 사장은 여성 종업원의 노출과 매출액은 비례한다고 말했다. 그는 “종업원들의 노출을 파격적으로 한 뒤부터 월 매출이 4000만 원에서 8000∼9000만 원으로 2배 이상 뛰었다. 남성들에게 큰 인기를 끈 것 같다. 그들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도하기 위해 종업원들의 복장을 좀 더 다양하고 섹시하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사장은 남성 고객의 발길을 사로잡은 이유에 대해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있다. 비슷한 값으로 술도 마시고 늘씬한 미녀들의 몸매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비키니·속옷·T팬티·노팬티에 ‘쇼’까지…섹시 마케팅 끝은 어디인가
요식업계에 ‘섹시 마케팅’ 열풍이 불고 있다. 유흥업계의 아성을 허물 정도다. 그 첨병에는 ‘섹시 바’, ‘섹시호프’가 있다.
‘섹시 바’는 탱크톱, 비키니, 란제리 차림의 젊은 여성들이 손님을 접대하는 신종 술집이다. 2004년 초반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업계는 불황 타개책으로 여성의 노출을 영업에 접목시켜 주목을 받았다. 성매매금지법이 시행된 뒤에는 우후죽순처럼 늘었다. 업소의 경쟁은 날로 치열해졌다. 손님을 끌기 위해 속옷, T팬티, 노팬티 차림의 여성들을 등장시켰고 최근에는 자극적인 ‘쇼’까지 등장했다. ‘스트립 쇼’는 기본이고, ‘백마 쇼(백인 여성의 스트립 쇼)’, ‘트랜스젠더 쇼’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밤문화 전문 마케팅 기업 ‘CNT 마케팅’ 전성호 팀장은 “비키니 바, 란제리 바, 페티쉬 바 등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모두 ‘섹시 코드’를 컨셉트로 내세운 업소다. 섹시 바는 지난해 기준으로 봤을 때 강남에만 40여 곳이 밀집해 있고, 서울시내에는 어림잡아 100여 곳이 넘는다”고 말했다.
전 팀장은 “업소가 너무 많아 경쟁이 치열하고 처음의 호기심이 어느 정도 줄었기 때문에 증가세는 주춤하겠지만, ‘섹시 바’류의 업소는 여전히 성업을 이룰 것”이라고 내다봤다.
호프집들도 ‘섹시 코드’ 전선에 동참했다. 탱크톱, 핫팬츠, 초미니스커트, 란제리 차림의 ‘비어걸’을 전면에 내세웠다. 서울의 여의도, 종로, 명동, 역삼동, 서대문 등 사무실 밀집 지역에서 시작해 수도권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맥주전문점 ‘BTB(Better Than Beer)’는 가장 성공한 케이스. BTB는 탱크톱과 초미니스커트 차림의 비어걸을 등장시킨 이후 월 매출이 3500만 원에서 순식간에 8000만 원으로 뛰어올랐다. 비수기인 겨울에도 월 매출이 6000만 원 선을 유지한다. 서울 소공동의 본점이 성공한 이후 삼성동, 이태원, 여의도, 동대문, 강남 등지에 잇달아 체인점을 열었다. 지난해 7월에는 전·현직 모델들을 고용한 퓨전포차 ‘제인걸스(Zane Girls)’가 압구정동에 문을 열었다.
이달 18일에는 여성 노출을 영업 전략으로 내세운 미국의 대표적인 섹시 레스토랑 ‘후터스(Hooters)’가 서울 압구정동에 1호점을 냈다. 오렌지색 핫팬츠와 민소매의 타이트한 흰색 셔츠가 기본 유니폼. 1983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일반 식당(밥집)도 예외는 아니다. 젊은 여성들이 배꼽을 드러낸 민소매 셔츠와 미니스커트를 입고 음식을 나른다. 최근 종로와 마포, 삼청동 등지를 중심으로 하나둘 선보이고 있다.
한양대 홍성태 경영학과 교수는 “업체들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면서 여성의 성을 앞세운 마케팅이 성행하고 있다”며 “그러나 여성의 노출 수위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장기적으로 성공하기 어렵고 제품과 서비스가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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