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마지막을 준비하는 용기

  • 입력 2007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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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요한’ 씨가 47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암 선고를 받고 대학병원에서 6개월 동안 치료를 받다가 ‘더는 가망이 없다’는 말에 우리 호스피스센터를 찾았고 입원 27일째 되는 날 하늘나라로 가신 것이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고 아이들도 어린 터라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의연하고 용기 있게 마지막을 정리하는 모습은 모두에게 감동을 주었다.

어느 날 혼자 정원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던 요한 씨가 아침 기도를 마치고 나오는 나를 반갑게 맞았다. 이른 아침의 신선한 공기와 햇살을 받으며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 후회되는 일들, 곁에 있어 준 고마운 가족과 친구들을 떠올리고 있노라고 했다. 사내 커플로 만나 결혼한 요한 씨 부부는 병동에서도 소문난 잉꼬부부였다. 부인은 극심한 고통을 견뎌내는 남편 곁에서 항상 웃는 얼굴로 지극정성 간호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몰래 눈물짓는 시간이 많아졌다.

친척, 친구, 직장 동료 등 찾아오는 손님도 유난히 많았다. 종교에는 관심 없이 지내던 그는 투병생활을 하면서 가톨릭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곳 호스피스센터에서 교리 공부를 하고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이렇게 마지막을 용기 있게 준비하는 분들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세상과의 이별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이 세상 누구나 한 번은 맞게 되는 죽음, 고통과 희망이 공존하는 죽음. 세상에 올 때는 순서가 있지만 하늘나라에 가는 순서는 따로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내가 세상에 머물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면 과연 어떻게 준비를 하고 받아들일까 하는 생각이 다시 한 번 가슴깊이 메아리친다. 준비하는 만큼 인생의 마지막길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지만 준비할 용기가 나지 않아 회피한 채, 죽음이라는 것이 나와는 상관없는 듯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오늘 하루가, 이번 달이, 올해가 나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한다면 남은 시간을 정말 귀하고 의미 있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요한 씨를 기억하며 떠오르는 태양보다 저물어가는 저녁노을이 더 찬란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마음에 깊이 새겨 본다.

박삼화 수녀 모현의료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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