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마음을 훔치는 법

  • 입력 2007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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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끝 마을 아름다운 절.’ 전남 해남군 미황사의 애칭이다. 미황사는 달마 스님이 마지막 자취를 감추었다는 달마산 자락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산사다. 이곳은 사찰뿐 아니라 바다에 비치는 햇살이 맑고, 하얗게 병풍처럼 우뚝 선 바위들과 항상 서늘한 바람이 휘돌아 지나는 무성한 숲이 별천지를 이루고 있다. 하루를 지내고 나면 발길을 돌리는 순간 그 아름다움이 바로 눈에 맺힌다. 사람들과 미황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문득 ‘금강사’라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곤 한다. 그럴 때면 서로 통하는 마음에 저절로 마주 웃음 짓는다. 금강 스님, 미황사의 젊은 주지 스님이다. 2002년부터 템플스테이를 운영하여 미황사를 열린 사찰로 만든 멋쟁이 스님이다. 미황사와 금강 스님은 둘이 아니다. 그래서 때때로 절 이름과 스님 이름이 혼동되어 ‘금강사’라는 말이 나오곤 하는 것이다.

언젠가 지인들이 차를 마시며 금강 스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때 한 스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하였다. “금강 스님은 다 좋은데, 나쁜 버릇이 하나 있어요. 훔치는 버릇이 있습니다.” 다들 깊은 관심과 우려의 마음으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 글쎄, 만나는 사람마다 다 마음을 도둑맞고 말더라고요.” 순간 유쾌한 폭소가 터져 나왔다.

금강 스님은 상당히 진지한 사람이다. 생각이 깊고 말은 느리며 분명하다. 때로 잘못을 꾸짖을 때는 무섭다. 그런데 사람들 앞에 서면 늘 웃는다. 편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음을 도둑질당한다. 해마다 2000명이 넘는 사람이 템플스테이를 하러 미황사를 찾는다. 다들 마음을 도난당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이 훔치는 방법을 배워 간다. 마주 보며 웃고, 부드럽게 말하고, 마주치는 눈길 속에 마음을 담는다. 믿음이고, 사랑이며, 어여삐 여기는 마음이다.

철이 바뀔 때면 한 번씩 전화가 온다. 맑은 목소리에 푸근한 미소가 한껏 느껴진다. 순간 행복해진다. ‘여름 한문학당’도, ‘부처님 오신 날 어르신 노래잔치’도 미황사에서 배워 왔다. 다른 도반들에게도 적극 권하곤 한다. 해보면 다들 만족스러워한다.

마음을 훔쳐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마음은 한번 도둑맞으면 먼저 주고 싶어진다. 또 기회가 되면 나도 훔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런 나쁜 버릇이라면 세상 사람들 모두가 가져도 나쁘지 않겠다.

주경 스님 충남 서산시 부석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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