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차량을 20% 가량 싸게 파는 병행수입업자들의 시장 점유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이들로부터 시장을 방어할 필요가 있는데다, 국산차의 가격도 수입차 못지않게 높아지고 있어 "값을 낮춰 국산차 시장도 잠식하기 위해서"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
한편 '제 값' 다 내고 구형차를 산 일부 소비자들은 "바가지를 썼다"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볼보 S80 820만원, CTS는 20% 인하
볼보는 최근 2008년 형 S80을 시판하면서 가격을 2007년형보다 820만 원가량 낮췄다.
캐딜락도 DTS 플래티늄 가격을 480만 원가량 낮췄으며, 최근 시판한 올뉴 CTS는 무려 20% 가격을 인하했다.
아우디는 A4의 가격을 2.0 TFSI는 250만원, A4 2.0 TFSI 콰트로는 370만원 내렸다.
이 밖에 사브, 폭스바겐, 랜드로버 등도 값을 내리고 있다.
성능과 옵션이 향상된 새 모델을 내놓으면서 값을 올리지 않아 "사실상 인하한 셈"이라고 밝히는 업체들도 있다.
혼다는 뉴 어코드를 기존 어코드와 같은 값에 내놓았으며 크라이슬러도 신형 300C의 가격을 동결했다.
업계에 따르면 수입차 가격인하 경쟁은 지난해 BMW가 베스트셀링 모델인 528i의 값을 25% 가량 내리면서 시작됐다.
BMW는 가격인하 효과로 판매량이 늘어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그레이임포터(병행수입업체)들의 시장점유율 상승도 가격 인하 압박 요인이었다.
현지 본사→수입업체→딜러 등 3단계를 통해 유통되는 공식 수입차량과 달리 딜러→그레이 임포터(수입 및 판매)의 2단계만 거치기 때문에 중간 마진이 빠져 차 값이 약 20% 싸다.
게다가 병행수입 차량을 위한 전문 보험과 정비 서비스도 속속 등장해 굳이 비싼 값을 내고 공식 수입차량을 살 필요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그레이 임포터들이 판매한 수입차의 점유율은 약 13%. 길에서 눈에 띄는 수입차 10대 중 1대 이상은 병행 수입 차량인 셈이다.
●"거품 낀 국산차 보다 거품 빠진 수입차"
국산차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것도 수입차의 가격인하를 부채질했다는 분석.
일부 국산 차종의 값은 4000만~5000만 원대를 훌쩍 넘지만 미국 등 해외에서는 훨씬 싼 값에 팔린다는 게 알려지면서 '같은 값'이면 수입차를 찾는 소비자들도 늘고 있다는 것.
"갈수록 가격 거품이 많아지는 국산차 보다는 거품이 빠지고 있는 수입차를 선택하는 고객이 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거품이 빠지기 전' 수입차를 구입한 일부 소비자들은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수입차를 구입한 회사원 조모(40)씨는 "신차의 값이 떨어지는 바람에 내 차의 중고차 시세는 더욱 형편없어지게 됐다"며 "수입차 업체들은 기존 고객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보상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값이 떨어지기 직전에 구입한 소비자들에게는 무이자 할부 등 영업사원 재량에서 동원 가능한 다양한 혜택을 드렸다"며 "이 때문인지 생각보다 고객 불만은 많이 접수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