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씨, 방화 이튿날 이웃들과 태연히 고스톱

  • 입력 2008년 2월 13일 14시 59분


12일 인천 강화군 하점면 장정 2리.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식탁모양의 고인돌 71점이 곳곳에 자리한 108만㎡ 넓이의 잔디밭이 눈길을 끈다.

이들 고인돌은 영국의 스톤헨지와 함께 대표적인 고인돌 무덤으로 꼽히는 세계적인 유적이다.

이 마을 주민들은 "마을 앞에 세계적 문화유산이 있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한 명은 아니었던가보다.

국보1호 숭례문을 불태운 혐의를 받고 있는 채 모(70)씨도 이 마을에 살고 있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노인회장 유영수(77)씨는 "대한민국 최고의 문화재를 불태운 혐의를 받는 사람이 우리 이웃이었다는 게 무척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채 씨는 범행 다음날인 11일 오후 마을회관에 놀러와 태연하게 이웃들과 고스톱을 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함께 고스톱을 쳤던 이웃들은 "채 씨의 모습이 평소 때와 전혀 다르지 않아 남대문에 불을 질렀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며 "평소에 술도 안 먹고 점잖은 사람이었는데…"라며 혀를 찼다.

채 씨의 집에는 부인 이모(71) 씨와 자녀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기자를 맞았다.

가족들은 "설날까지만 해도 강화 집에 온 식구가 모여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며 "아버지가 설 연휴 마지막 날 그런 일을 꾸몄을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채 씨는 1998년 일산 집터가 신축 아파트에 수용되는 과정에서 보상금을 적게 받은 것에 심한 불만을 품은 것으로 알려졌다.

채 씨의 둘째 딸은 "시공사가 처음 맺은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보상금도 낮게 제시해 아버지가 땅을 비워주지 않았고 결국 법정공방까지 갔다"며 "아버지가 청와대 등에 여러 번 진정서를 냈지만 정부가 힘 있는 대기업 편에 선다고 억울해했다"고 말했다.

채 씨는 분한 심정을 호소하기 위해 2006년 4월 서울 창경궁에 불을 질렀다.

하지만 그로 인해 추징금 1300만원까지 물게 되는 등 더 큰 불이익을 당하자 숭례문에 불을 놓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부인 이 씨는 "2년 전 강화도로 이사 오면서 토지 보상에 대한 불만을 모두 잊자고 했는데 결국 돌이키지 못하게 된 것 같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강화=신광영 기자 sky@donga.com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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