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모(37)씨는 입에 담배를 문 채 온라인 게임이 열중하고 있었다.
김씨 또래의 직장인이라면 지금쯤 일에 파 묻혀 정신없이 바쁠 시간. 김씨의 손은 마우스를 클릭해 아이템을 획득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그는 한 정보기술(IT)업체의 프로젝트 매니저였다. 지난해 초 회사가 부도를 내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6개월 넘게 자신의 직급에 맞는 새 직장을 찾아 헤맸으나, 결국 취업에 실패했다. 지금은 자포자기 상태다.
부모님과 함께 살며 전 직장에 다니면서 저금한 돈을 야금야금 쓰고 있는 그는 "밥 먹자"는 어머니의 말 한마디에도 괜한 짜증이 난다는 이유로 집 밖으로 떠돌고 있다.
은행 통장의 잔고는 최근 1000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도 없어 최근 발견한 PC방의 '고정고객'이 됐다.
이 PC방에서는 8000원에 10시간을 머물 수 있고 컵라면도 덤으로 준다.
●실업자 축에도 못 끼는 구직 단념자
김씨와 같이 일정 기간 이상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고용 통계에 '실업자'로 잡히지 않는다. 대신 '구직 단념자'로 분류돼 실업률과는 따로 수치가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구직 단념자는 2002년 말 한때 3만9000명 수준으로 떨어지기로 했으나 이후 계속 늘어 지난달에는 12만 명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한계상황에 놓인 이들은 지출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지방대 법대를 졸업하고 중소기업에 근무하다 퇴사한 뒤 2년여 간 일자리를 구하다가 이제는 포기한 조모(31)씨.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그는 아침 식사 값을 아끼기 위해 낮 12시경까지 늦잠을 잔다. 점심, 저녁은 각각 4000원 이하로 해결한다.
그에게 유일한 낙은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실 때다. 자신의 처지를 알아주는 친구들이 술값을 내 주기 때문이다.
조씨의 부모는 조씨가 명절 때 고향을 찾을 때 마다 "회사에 잘 다니고 있다"고 거짓말을 해 왔기 때문에 아들이 회사원인 줄 알고 있다.
친구들은 "눈이 너무 높은 것 아니냐" "아무데나 일단 다니고 봐라"며 핀잔을 준다.
하지만 그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새로 시작하는 것은 부담이 너무 크다"며 "궁합이 맞는 직장이 나타날 때까지 잠시 지금처럼 지내겠다"고 말했다.
●"상당 수 구직 단념자, 눈높이 낮춰야"
통계청 고용통계과 관계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서도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과 달리 구직 단념자는 돈을 벌어야만 정상적인 삶이 가능하지만 소득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들 중 상당수가 일을 할 수 있으면서도 비참한 생활을 감내하며 구직활동을 안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능력보다는 학력, 하는 일보다는 직위를 중요시하는 풍토도 구직 단념자를 양산하는 데 한 몫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자신의 학력이나 전공, 과거 소득 수준을 잊고 철저하게 실리를 따지는 풍토가 자리 잡아야 구직 단념자 수도 줄어들 것"이라며 "정부도 효율적인 재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이들을 경제활동 인구로 끌어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