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2(목) 아주대에서 이뤄진 한 교양강좌가 뒤늦게 인터넷에 공개되어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주인공은 2000년 초반부터 '시골의사'란 필명으로 독창적인 '투자 분석'와 '경제 평론'으로 명성을 얻은 박경철(43) 씨. 당시 시장에 대한 탁월한 분석력과 예측력을 인정받아 누리꾼들로부터 '재야고수'란 닉네임을 얻은 그는 2007년에는 대한의사협회 공보이사로 활약하기도 했고, 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으로 영입돼 개혁공천을 이끈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행복한 삶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진행된 제121회 아주대 강연은 올해 5월 말 아주대 측에 의해 한 동영상 사이트에 공개됐다. 이 영상물은 시나브로 누리꾼들의 입소문을 타고 각종 동영상 사이트와, 블로그를 통해 전파되며 "감동적이다",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과 비견할만하다"는 등의 찬사를 얻고 있다.
90분 가까이 진행된 그의 강연은 1편과 2편으로 나뉘어 동영상 사이트 엠앤캐스트(www.mncast.co.kr)에 공개돼 단 두 달 만에 12만 회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1시간이 넘는 강연 컨텐츠로는 이례적일 정도의 인기다. 스티브 잡스의 20분 스탠포드 동영상은 만 2년간 28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날 강연은 15년 전, 평범한 시골 외과 의사였던 그가 어떻게 패러다임의 변화를 감지하고 신문명을 이해하는 안목을 갖게 됐는지에 대해, 자신의 실패사례와 성공사례를 통해 설명하는 자전적으로 회고담이다. 특히 월드와이드웹(www)으로 대표되는 'W(더블류)'라는 한 선지자와 이를 알아본 자신의 백수 친구를 등장시켜 강의의 긴장감을 더했다.
우선 실패사례 한 가지. 1993년 우연하게 참석하게 된 한 강연에서 박 씨는 "인터넷을 통해 금융거래는 물론 우편 신문 TV까지 다 이뤄지게 된다"는 W의 말을 듣게 된다. 당시 난다 긴다 하는 대한민국의 지식인들 모두 그의 말을 듣고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유일하게 그의 '백수' 친구만이 이 말을 신봉하고 대구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상용 e메일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이후 W는 2조 벤처 기업의 대표가 됐고, 자신의 백수 친구는 박 씨로부터 돈을 빌려 사업을 시작해 결국 테헤란로에 빌딩을 세 채 소유한 유력한 기업인이 됐다.
이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박 씨는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왜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으로부터 같은 말을 들었는데, 왜 한 사람에게는 복음(福音)으로 들리고 나에게는 망상장애자의 기괴한 얘기로 들렸던 이 차이가 무엇이었을까?"
반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박 씨는 1997년 남들보다 먼저 이동통신을 접한다. 많은 사용자들이 "이동통신은 지나치게 비싸고 불편해서 성공하기 힘들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그는 3년 전 백수친구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것이 새로운 W가 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 이후 그는 한국이동통신(현 SKT) 주식을 장외시장에서 2만 원에 사서 1999년 600만 원 이상으로 되파는 대반전을 이룬다.
박 씨는 "당시 큰 돈을 벌었다는 기쁨 보다는 이제야 겨우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고 따라갈 수 있을 3등칸 티켓을 끊었다는 데 의의를 뒀다"며 "이는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고 더욱 치열하게 세상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종잣돈이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어 미국의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의 말을 인용하며 "인류문명은 0.1%의 창의적 인간과, 0.9%의 안목 있는 사람들에 의해 건설됐다며 나머지 99%의 인간은 수동적으로 이를 따라왔을 뿐이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진정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하여 자신 앞에 다가온 W를 알아챌 수 있는 통찰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씨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투자인생을 회고한 강의 동영상이 인기를 끈다는 사실에 대해 "아주대학교 측에 비공개를 요청하고 한 강의인데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박 씨는 "얼마 전 내 몸에 큰 병이 걸린 줄 알고 이 같은 회고조 강연을 해오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오진(誤診)이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현재 한 중앙일간지에 '직격 인터뷰'를 연재하고 있는 박 씨는 "인터뷰를 통해 아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서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고 미리 파악하고자 연재를 시작했다"며 "최근에는 점진적인 변화보다는 핵융합이나 바이오테크놀로지 같은 혁명적인 아이템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누리꾼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W'와 '백수'가 실제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 박 씨는 "강연을 위해 나의 주변 인물들을 적절하게 구성했기 때문에 콕 집어 누구인지 특정하기는 매우 곤란하다"고 말했다.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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