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상을 준비하려고 장을 보러 나선 주부 주정희(56·서울 서대문구)씨는 "고기와 과일만 사도 10만원은 훌쩍 넘는다"고 푸념했다.
최근 한국물가협회가 올 추석 차례용품 비용이 평균 13만1200원(재래시장 기준)이라고 발표했지만, 이는 물정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라는 얘기다.
물가협회의 발표는 8월 25, 26일 서울시내 남대문시장, 영등포시장, 광장시장 3곳에서 차례용품 23개 품목의 가격을 조사한 결과다. 농수산물공사, 농협 등도 추석 차례 비용을 12만~18만원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주부들은 이 같은 예측이 실제 가격과 너무 다르다고 지적한다. 10만원을 들고 나가도 어디로 갔는지 모를 만큼 물가가 뛰었다는 것.
추석이 열흘 남은 2일, 주부 주정희 씨와 함께 직접 광장 시장에 나가 한국물가협회 가격표와 실제 가격을 비교, 조사해 보았다.
●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한숨만 나와요"
"숙주가 500원이라니 언젯적 이야기인지…."
나물 가격을 물어보던 주씨가 한숨을 쉰다.
물가협회 조사에서는 숙주 (중국산 400g 기준)가 500원으로 발표됐지만, 이는 실제 가격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나물류는 추석이 임박하면서 가격이 더 뛰었다. 중국산 400g 기준으로 숙주는 1500원, 도라지와 고사리는 3000원이나 했다. 국내산은 비싸서 손님들이 가격만 물어보고 사지 않아 아예 팔지도 않는다.
올해는 추석이 빠른 탓에 산지 출하량이 부족한 과일도 값이 껑충 뛰었다. 중품 기준으로 사과는 개당 2000원, 배는 2500원, 감은 5000원이나 했다. 단감은 출하량이 극히 적어 값이 치솟은 데다 취급하지 않는 곳도 많았다. 물가협회 가격표 단감 가격이 1000원인 것은 물량이 부족한 단감 대신 곶감을 조사한 것이다.
물가협회 가격표가 가장 정확히 맞은 품목은 수산물이다. 조기 25cm 마리당 5000원, 동태포는 ㎏당 7000원, 북어포는 마리당 3000원이었다.
주씨는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고기라도 미리 사 두어야겠다며 산적용 소고기를 주문한다. 정육점 주인이 무게를 정확히 맞춰 고기 끄트머리를 잘라낸다.
"아, 사장님, 그거 떼내지 말고 그냥 다 주시지…."
"안 돼요, 안 돼. 원가가 계속 올라 마진을 줄여 파는 겁니다. 우리도 죽겠어요."
국거리용 소고기(한우) 가격은 100g당 5500원 정도로 가격표의 100g당 3000원보다 1.8배나 비쌌고 지난해보다 80% 정도 올랐다.
돼지고기는 100g당 1680원으로 가격표의 100g당 580원의 3배나 된다. 정육점 주인은 "고기 값이 계속 올라 마진을 낮춰서라도 손님을 끌어야 한다" 며 텅 빈 시장 골목을 가리켰다.
실제 장을 보고 나니 전체 비용은 18만6000원. 물가협회가 제시한 추석 차례 비용 (13만1200원)보다 5만 원가량 더 든 셈이다. 그러나 주씨의 장바구니엔 4인 가족 기준 차례상 용 식품만 담겼다.
그는 "추석 연휴 기간에 친지들이 모일 때 필요한 상차림 비용까지 모두 포함하면 이보다 적어도 3배는 더 들 것"이라 예상했다.
약과나 옥춘 같은 제수 용품만 해도 가격은 지난해와 차이가 없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이화상회 주인 유영순(64)씨는 "설탕이나 밀가루 값이 뛰었지만 가격을 올리는 대신 용량을 줄였다. 산자만 해도 20개 한 봉지였던 것을 14개 한 봉지로 판다"며 "비싸게 팔면 손님이 발길을 돌리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옥춘은 300g에서 200g으로, 약과는 400g에서 300g 정도로 줄어 실제로는 30%가량 가격이 오른 것이다. 물가협회 가격표에는 반영되지 않았지만 예년과 같이 푸짐하게 상을 차리려면 1봉지를 더 사야한다.
광장 시장을 한 바퀴 돌아 본 주씨는 가격표에 빠진 품목이 너무 많은 것도 실제 차례 비용과 차이 나는 이유라고 지적한다.
"전 부칠 때 쓰는 밀가루나, 녹두도 빠졌고 설탕, 소금 등 조미료는 아예 없네요. 국에 고기만 넣나요? 무도 들어가고 파도 들어가고…두부도 많이 올랐는데…."
이에 대해 한국물가협회 측은 "매년 물가 동향을 보여주려고 가격에 반영할 대표 상품들을 선별한 것이지 차례상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 아니다"라면서 "시장의 여러 가게를 조사해 평균가격을 산출한 가격으로 제품 등급별, 부위별, 상점별로 가격이 다를 수 있다"고 밝혔다. 직접 특정 가게에서 장을 보는 것과는 다르다는 설명이다.
주씨는 예전에 추석 선물이 들어오면 흔한 갈비, 굴비 등 식품세트보다 이리저리 쓸 곳이 많은 백화점 상품권이 반가웠지만 요즘은 반대라고 말한다.
"추석 때 모인 친지들 십수 명의 밥상을 차리려면 생활비가 적자가 날게 뻔한데 고기나 조기가 더 반갑죠. 근데 올해는 추석선물조차 뜸한 것 같아요"
우경임기자 woohaha@donga.com
[관련기사]실속있죠…알뜰하죠…역시 명절엔 ‘선물세트’!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김재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