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연봉만큼 썼어요” 구직비용에 허리휘는 취업준비생

  • 입력 2008년 9월 8일 16시 10분


방 모(23·동국대) 씨는 취업 준비 때문에 지난 학기를 휴학했다. 학점을 따면서 스펙(Specification의 준말로 구직자들의 학점, 어학 점수 등을 가리키는 말)을 높이기가 쉽지 않아서다. 중국어 학원, 토익 학원, 컴퓨터 자격증 학원 등 3곳을 옮겨 다니는 하루 일과는 학교를 다니는 것보다 빡빡했다.

한 학기 동안 들어간 학원비도 한 학기 등록금보다 많았다. 중국어 강좌 2개, 토익 강좌 2개, 컴퓨터 강좌 1개를 듣는데 한달에 50만원 정도 들었다. 방 씨는 "부모님께 계속 손을 벌리려니 죄송스러웠지만 이력서 칸칸을 채우려면 학원에 다니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 모(32·연세대) 씨는 행정고시에 거듭 낙방하자 대학원을 다니며 기업에 원서를 넣고 있다. 고시 공부를 하며 한 달에만 학원비 30만원, 고시원비 30만원 씩을 꼬박꼬박 부모에게 받아썼다.

도서관에서 고시 공부만 하다 보니 영어 회화가 안 돼 1년 전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뉴질랜드에 머무는 6개월 동안 약 1000만원 정도 비용이 들었다. 송 씨의 결혼 비용으로 부모가 따로 저축한 돈을 깨서 충당했다. 차마 대학원 학비까지 달라고 할 수가 없어 학자금 대출을 받고 조교 장학금을 보태 학비를 내고 있다.

입사 시험을 보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도 구직 생활이 고달픈 이유다. 방학 동안 부산 고향집에 머문 송 씨가 서울에 시험을 보러 올 때마다 교통비만 10만원씩 깨졌다. 필기, 면접으로 이어지는 시험을 치르다 보니 지난 7, 8월 교통비로만 50여만 원을 썼다.

송 씨는 "어학연수, 대학원 학비를 모두 합하면 1년 동안 벌써 2000만 원을 넘게 썼고 학원비와 시험 응시료만 매달 30만~40만원이 나가 웬만한 회사 연봉만큼 들었다"면서 "빨리 취직을 해야 학자금 대출도 갚고 부모님 노후 준비를 도와드릴 텐데 정말 답답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 구직 비용에 허리 휘는 취업 준비생

실제 구직자들은 구직 비용으로 얼마나 쓸까. 본보는 취업포털 커리어(www.career.co.kr)와 8월 29~31일 구직자 960명을 대상으로 구직 비용을 공동 조사했다.

조사 대상자의 65%가 취업 준비를 위해 학원을 다닌 적이 있고 평균 2곳의 학원을 다녔다.

어떤 학원을 다녔냐는 질문(복수 응답 가능)에는 '토익 토플 등 공인 어학시험 학원'이 41.1%, '외국어 회화 학원'이 37.8%로 구직자들 대부분이 외국어 능력 향상을 위해 학원을 다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은 '컴퓨터 자격증 학원'(42%), '국가고시나 공무원 시험 학원'(15.9%) 순이었다.

한달 평균 학원비로는 '10만~20만 원이하'를 지출하는 사람이 29.1%로 가장 많았고 '20만~30만 원이하'를 지출하는 사람이 25.2%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10만원 이하'는 20.1%, '50만원 이상'은 9.6%였다.

또 조사 대상자의 17.5%가 어학연수를 다녀왔으며 연수비용은 800만~1000만 이하를 쓴 사람이 35.7%로 가장 많았다. 1000만 원 이상은 23.2%, 200~400만 원 이하가 16.7%였다.

공인 외국어 시험이나 국가고시 등 시험 응시료로 나가는 비용도 상당하다. 응시 횟수를 모두 합친 응시료를 묻는 질문에는 10만~20만 원이하가 26.1%, 10만 원이하가 22.2% 였고 50만 원 이상도 14.7%나 되었다.

아직 자립하지 못한 구직자들의 구직 비용은 주로 부모들이 부담한다. 학원비나 응시료 등 구직 비용을 어떻게 충당하는지를 묻자 조사 대상자의 42%가 '부모님께 기대고 있다'고 응답했고 '부모님 보조에 아르바이트 비용을 합친' 경우가 27.3%였다. '스스로 벌어서 충당한다'는 답은 23% 뿐이었다.

● 취업도 사교육이 좌우한다?

구직 비용이 많이 들다 보니 이력서도 양극화한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높다.

5개월 째 구직 활동 중인 신모 (26)씨는 "영어 면접을 준비하려고 1대 1 원어민 과외를 받는 친구를 보면 좌절감이 더욱 크다. 장학금으로 학교는 졸업했지만 집안 형편상 학원을 다니기도, 기업을 골라 갈 처지도 안 된다" 며 하소연했다.

화려한 이력서가 곧 업무 능력이 아니라는 것이 더욱 문제다. 때문에 구직자는 구직자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교육비용을 이중으로 지출한다는 것.

N식품업체 교육 담당자 서 모(35)씨는 "요즘 입사 지원자들은 스펙도 화려하고 면접 준비까지 똑 부러지지만 막상 뽑고 나면 업무 능력과 일치하지 않는다"면서 "취업 사교육을 많이 받아 시험은 잘 보지만 현업에 대한 적응력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한국고용정보원 장서영 연구원은 "기업에서는 인성 등 조직 적응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구직자는 학점이나 영어 점수를 높이려는 공부만 한다"고 지적하면서 "오히려 동아리 활동 등 대인관계 기술을 배워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경임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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