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소한 허경영 씨의 파격 행보가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구속 직전에도 다양한 방송활동을 통해 연예인으로의 가능성(?)을 인정받은 그가 '콜미'라는 힙합 곡으로 이제는 가수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그에 대한 세간의 주된 평가는 "황당하지만 재미있다"로 요약된다. 그러나 다시 시작된 '허경영 현상'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가 정치와 종교 심지어 연예의 영역을 넘나들며 은근한 팬덤 현상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의 노래는 최근 싸이월드 배경음악(BGM) 판매 1위를 차지할 정도가 됐다. 그의 노래를 감상한 한 10대 누리꾼의 반응이 그에 대한 대중의 이중적 심리를 대표한다.
"다른 건 몰라도 그의 이름을 불러서 키만 클 수 있다면 속는 셈 치고 불러 볼 수 있다."
● 기인(奇人), 무인(巫人), 예인(藝人), 도인(道人)…?
그에 대한 관심은 군소정당 대선후보라는 '정치인'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종교적 논쟁'으로 무게추가 기울고 있다. 그가 출옥 직후 "마이클 잭슨의 영혼을 만났다" "메시아와 직접 소통하고 있다"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식의 사교(邪敎)적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문화평론가 최영일 박사(사회학)는 허경영 현상을 "21세기 옷을 입은 첨단 종교현상으로 볼 수 있다"며 "본질적으로는 미국에서 한 때 유행한 싸이언톨로지에 비견해도 무방하다"고 정리한다. 모두가 허무맹랑하다고 이성적으로는 인지하고 있지만 인간의 약한 의존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에 발표된 '콜미'라는 노래가 종교인으로서 그의 성향을 표출하는 대표적 사례다.
전문가들은 이 노래가 전통적인 종교의 주술적 주문의 현대적 해석이라는 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그것도 '시험' '외모' '행복' 등 현대인의 콤플렉스를 절묘하게 추상화시켜 냈기 때문에 겉으론 실소를 금치 못하면서도 젊은층들은 장난으로라도 따라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과거에도 수많은 신흥종교를 탄생시킨 '구전 바이러스 마케팅'의 현대적 부활이라는 얘기다.
그가 대선을 앞두고 대중의 화제를 불러 모은 공약 역시 대중의 약한 마음을 파고드는 '비과학의 역설'이었다. '신혼부부에게 각 5000만원씩 1억을 주겠다'는 공약은 이성적으로 볼땐 허무맹랑하지만 '그랬으면 좋겠다'는 대중들의 막연한 의존심리를 절묘하게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는 해석이다.
● 그는 무속인 출신일까?… "아니다"
지난 대선을 전후해 그에 대한 관심은 출신 논란으로 번지기도 했다. "과거 박통시절 청와대에서 일했다"는 그의 주장에 대해 끊임없는 의혹이 제기됐고, 결국 그의 발언과 행적을 종합할 때 "무속인으로 분류해야 합당하다"는 진단까지 나왔다.
당시 온라인에서는 그가 과거에 서울 서대문구 응암동에서 철학원을 운영했다는 식의 소문이 나돌았다. 그가 자신의 저서에 사용한 젊은 시절의 사진은 시중 철학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도령'의 이미지와 흡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과거 행적을 입증해 주는 자료가 없을 뿐만 아니라 무속인들이 나서 "그는 박수무당이 아니다"고 반박하고 있다(박수무당이란 신 내림을 받은 남자 무당을 칭한다).
무속 전문가인 장영호 '한국의 샤머니즘' 대표는 "그가 신적인 기운이 나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지만 신들림을 받아 신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란 것은 확실하다"며 "설령 신기(神氣)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나쁜 기운인지 좋은 기운인지에 따라 그 결과는 천지 차이"라며 무속계와의 연관성을 부정했다.
동대문구 제기동의 김억만 법사(박수무당)는 "여러 행적에서 머리가 굉장히 좋아 보인다는 인상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며 "그럼에도 우리는 저런 분을 두고 '허주(虛主, 잡신)'가 끼었다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태연하게 행동할 수 없다"고 촌평했다.
허경영 씨 본인 역시 자신을 무속과 연관시키는 것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을 내비친다. 자신은 철학원을 운영한 적도 없고 신 내림을 받은 적도 없기 때문에 무속과 연관 시키지 말라고 주장한다. 오직 자신만이 하늘과 소통이 가능한 '허경영교'의 창시자이자 제정일치를 꾀할 미래지향적 정치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그와 인터뷰 한 언론사 기자들의 거부감도 높아지고 있다. 과거 그의 발언은 주로 자신의 정치적 공약에 집중했으나 이제는 주술적이거나 종교적 내용이 많아 황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허경영 씨가 정치인의 일상적 발언이 아닌 일명 '빵상 아줌마'(인터넷에서 유명해진 우주인과 접속하는 도인)에 비견될만한 황당한 '무속코드'를 본격적으로 제기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인 셈이다.
● "신흥 종교 현상이자 문화적 현상… 경계해야"
물론 이 같은 우려에 대한 재반박도 없지 않다.
문화평론가 조희제 씨는 "그는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웃음을 전달하기 때문에 종교적 색채가 짙게 느껴져도 반(反)사회적인 인상을 주지 않는다"면서 "대중은 그의 캐릭터를 소비할 뿐 그 배후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반박한다. 대중들이 그를 거부감 없이 소비하기 때문에 각종 대중매체에서 그를 소비하려고 끊임없이 호출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는 얘기다.
그가 인기를 계속 유지하는 비결은 정치에서 시작해 종교와 문화 코드를 절묘하게 넘나들며 대중들에게 친숙도를 높여가는 전략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활약에 대해서는 대중문화 관계자들조차 "대단히 영리하다"고 찬사를 보낼 정도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인터넷에서 시작돼 이미 7년째 지속되는 허경영에 대한 대중의 꾸준한 관심에 놀라움과 우려를 동시에 표시한다.
문화평론가 최영일 박사는 "그에게 '혹세무민하는 기인(奇人)'이라는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그를 오랫동안 소비할 경우 언젠가 그를 추종하는 세력이 등장하게 될 것"이라며 "결국 우리 시민사회가 '허경영 현상'을 현명하게 극복하는 과정이 21세기 대한민국을 해석하는 새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사회철학자인 콩트는 일찍이 "인간의 역사는 신화의 단계에서 형이상학의 단계를 거쳐 과학의 단계로 내려왔다"고 간파했다. 그러나 21세기의 대한민국 시계는 '허경영의 노랫소리'를 타고 잠시 거꾸로 흘러가고 있는 셈이다.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