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부터 케이블채널 QTV에서 방영을 시작한 '더 모먼트 오브 트루스 코리아(The Moment of Truth Korea)'는 1억원의 상금을 놓고 '진실 게임'을 벌이는 쇼다. 리얼리티 원조인 미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 100개국에서 상영되고 있는 FOX TV '더 모먼트 오브 트루스'의 한국판이다.
제작진이 출연자의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해 사전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만든 21개 질문에 출연자가 거짓말 탐지기에 걸리지 않고 답하면 상금을 받는 형식이다.
거짓말만 하지 않으면 1억원을 준다고 하지만 그게 그리 녹록하지 않다. 스튜디오 녹화에는 부모 형제나 남편, 연인, 친구들도 참여하는데 질문은 주로 이들 앞에서 선뜻 답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한 남자 출연자는 여자 친구가 보는 앞에서 "돈 때문에 다른 여자와 성행위를 한 적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해 진실 판정을 받았다. 시청자들에게 얼굴을 알리려 나온 듯한 한 연예 지망생은 "당신의 은밀한 부위를 자로 잰 적이 있습니까" "친 아버지를 죽이고 싶은 적이 있는지" 등의 질문을 받고 눈물을 쏟아내야 했다.
1일 방영된 4회에서 4000만원의 상금을 타간 한 여성 출연자는 "당신은 전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아이를 낙태한 경험이 있습니까?"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인과 잠자리를 한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성형 중독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나요" 등의 수치스런 질문에 받아 넘겼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질문의 수위가 점점 높아진다. 다음 단계로 도전하지 않으면 그동안 적립한 상금을 타갈 수 있다. 도전했다가 답변이 '거짓'판정을 받으면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
방송 중 밝혀진 진실이 시청자들 입장에서 엄청난 의미를 지닌 것도 아니다. 연예인 신변잡기 수준의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도전자에게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껄끄럽게 만들 만한 사실들이다.
이 때문인지 4회 방영 직후 이 프로그램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너무 심하다', '4000만원은 망신 값' 이라는 비난이 쇄도했다. 하지만 출연하고 싶다는 글은 쇄도하고 있다. '빚과 등록금을 갚고 싶다', '자녀들을 위해 돈이 급하다'는 글이 심심찮게 눈에 보인다.
제작진도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8일 방송된 5회에서는 질문의 수위가 다소 내려갔다. 주부 출연자는 남편과 친정 어머니, 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당신은 외박을 하고 남편에게 어디서 밤을 보냈는지 거짓말한 적이 있습니까?" "결혼 전 시댁 식구들에 대해 알았더라면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이트클럽에서 하룻밤 외도를 꿈꿨습니까?" 등의 질문을 받고 2000만원을 타갔다.
이 출연자와 가족들은 도전을 멈추면서 "더 이상 진행하면 어떤 질문이 나올지 두렵다. 돈도 좋지만 가정의 평화를 택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청자들은 "이번 주는 질문 강도가 너무 약했다" "2000만원을 너무 쉽게 벌어간 게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미국판 '더 모먼트 오브 트루스'도 가정파탄 구설에 휘말렸다. 너무도 솔직했던 한 여성은 방송 후 남편과 이혼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프로그램을 아예 '이혼의 순간(The Moment of divorce)'이라고 부르자는 여론이 일기도 했다.
지난해 2월 뉴욕 경찰관의 아내 로렌 클러리는 850만 명의 시청자 앞에서 외도 사실을 공개했다. '깜짝 게스트'로 그녀의 옛 남자친구가 무대에 등장하면서 사건은 시작됐다. 옛 남자친구는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그게 나인지"를 물었다. 놀랍게도 로렌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그래"였다. 거짓말 탐지기 판정은 진실. 이어 "결혼 후 외간 남자와 성관계를 가졌는지"를 물었다. 역시 대답은 "그렇다"였다. 역시 진실. 그러나 로렌은 다음 질문에서 상금을 전부 날리고 말았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에 로렌은 "그렇다"고 말했고 이는 '거짓'으로 판정 났다.
방송 직후 로렌은 '남편을 공개 망신 준 불륜녀', '돈을 위해 가정을 희생했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그녀는 "방송 출연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내 진심은 그게 아니다. 남편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남편은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는 눈치는 채고 있었으나 그렇게 만인 앞에서 공개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고 했다. 결국 몇 달 못가 두 사람은 헤어졌다. 로렌의 시어머니는 피플지와의 인터뷰에서 "며느리는 용서하지만 쇼는 용서 못 한다"며 "그 쇼가 모두의 삶을 망쳐 버렸다"고 분노했다.
최근 미국 누리꾼들의 거센 비난에 직면한 리얼리티 쇼 '존 앤드 케이트 플러스 8(Jon and Kate plus 8)'도 비슷하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시즌을 주인공 부부의 이혼 발표라는 다소 황당한 결말로 끝을 맺었지만 10일 새 시즌을 시작해 '아이들을 돈벌이에 이용한다'는 욕을 먹고 있다. 새 시즌에서 부부는 여덟 아이를 따로 번갈아 가며 돌보고 있다. 엄마 케이트가 아이들을 데리고 해변으로 놀러 가면 아버지 존이 집에 와서 수리를 하는 식이다. 그러나 TV 밖에선 존이 여자친구를 세 명이나 갈아 치우며 독신의 삶을 즐긴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새 시즌 시작 직후 케이트가 결혼반지를 끼고 TV 토크쇼에 나와 존을 여전히 사랑한다고 울먹였지만 돌아온 반응은 싸늘했다.
이처럼 국내외 시청자들은 리얼 프로그램에 대해 '혐오감을 느낀다' '저질이다'고 비난하지만 시청률은 상한가를 달린다. 자극적일수록 논란이 되고, 입소문을 타고 시청률은 올라간다. 드라마와 오락 프로그램은 시청자에게 욕을 먹을수록 시청률이 높아진다는 '공식'을 재확인하면서 리얼리티 쇼는 지금도 한계를 모르고 불편한 진실들을 토해내고 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