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말 독일 총선에서 과반수를 얻지 못한 우파 기민당은 36년 만에 중도좌파 사민당과 대연정을 해야 했다. 첫 여성총리로 기대를 모았던 앙겔라 메르켈은 ‘독일의 대처’가 되지 못했다. 감세와 규제완화 등 성장을 위한 개혁을 시도할 때마다 사민당이 발목을 잡아서다. 이 때문에 좌우연정에 대한 평가는 그리 높지 않다. 그 대신 메르켈은 합의를 중시하는 ‘조용한 카리스마’로 신망을 얻었다. 최다 의석을 갖고도 소신껏 뜻을 펴지 못했던 메르켈로선 이 ‘원치 않은 결혼’을 끝내는 게 소원이었을 터다.
▷27일 실시된 총선에선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당-기사당 연합과 우파인 자민당이 드디어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11년 만의 보수연정 탄생이다. 과격하리만큼 친기업적인 자민당이 뜻밖에 많은 표를 얻으면서 이제 메르켈은 유럽경제의 ‘전차군단’ 독일을 위한 진짜 개혁을 할 수 있게 됐다. 자칫 그동안 너무 부드러워진 이미지가 걸림돌이 될 판이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메르켈이 ‘엄마’에서 ‘철의 여인’으로 변신할 수 있을까” 기대와 우려를 표명했다.
▷이번 선거의 패배자 사민당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노동자를 위한다면서 뾰족한 전략도 없이 ‘10년 내 400만 개 일자리 창출’ 같은 허황된 공약이나 내놓는 정당으로 찍혔다. 영원히 회생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게 슈피겔의 지적이다. 6월 유럽연합(EU) 의회선거에서도 중도좌파 의석은 4분의 1에 불과할 만큼 사회민주주의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우파정부들이 중도 온건 실용 정책으로 유권자에게 다가간 것과 대조적이다. 우리의 수구좌파세력은 독일을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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