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활]엔화 초강세

  • 입력 2009년 9월 30일 02시 57분


일본 경제는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세계 경제위기로 교역이 격감한 데다 엔화 강세로 가격 경쟁력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올 1월 엔-달러 환율은 1995년 이후 14년 만의 최저치인 달러당 87엔대까지 급락(엔화가치가 급등)했다. 과거 몇 차례의 엔고(高)를 극복했던 도요타자동차 소니 등 간판기업들은 줄줄이 적자로 돌아섰다. 대규모의 인적 구조조정과 공장 가동 중단 등 위기대책도 잇따라 나왔다.

▷2분기 이후 달러당 100엔을 넘어서며 한 고비를 넘겼던 엔화 초강세가 다시 두드러지고 있다. 28일에는 엔-달러 환율이 한때 달러당 88.23엔까지 떨어졌다. 미국의 저금리정책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한 배경이다. 이 때문에 달러를 빌려 다른 나라 통화나 주식에 투자해 차익을 노리는 ‘달러 캐리 자금’이 넘친다. 게다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일본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를 줄인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얼마 전 출범한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후지이 히로히사 재무상은 28일 “최근 엔화 움직임은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다가 29일 시장개입 가능성까지 시사하며 급히 ‘불끄기’에 나서야 했다. 그렇잖아도 “민주당 정권은 엔고를 용인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던 터라 그의 28일 발언은 적절치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몇 달 전 각종 대책을 쏟아냈던 일본 기업들은 경기 회복이 확실하지 않은 현실에서 다시 닥친 엔화 강세를 걱정하고 있다.

▷해외 시장에서 한국과 경쟁하는 제품이 많은 일본 엔화의 등락은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 경제는 대체로 엔화 강세 때는 순풍(順風)을, 엔화 약세 때는 역풍(逆風)을 맞았다. 우리나라가 비교적 빨리 경제위기에서 벗어난 것도 원화 약세 못지않게 엔화 강세의 도움이 컸다. 한국 기업들은 이번 엔화 강세를 수출 및 시장점유율 확대, 기업체질 개선의 기회로 삼아 ‘포스트 엔고’에 대비해야 한다. 일본 기업들은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달러당 235엔에서 1년 만에 120엔대까지 급변한 ‘역사적 통화가치 급등’ 국면에서도 경쟁력을 키웠다. 지금도 우리 기업들이 방심할 상황이 아니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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