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본명 박재상. 올해 서른셋, 딸 쌍둥이의 아빠. 엽기 가수 겸 인기 프로듀서. 대한민국 군대를 두 번 다녀 온 전무후무한 이력과 이슈의 주인공. 우린 그를 싸이코라고 부른다. 하긴 본인부터가 무대에 오르자마자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진해서 자기 이름 뒤에 '코'자를 꼭 붙여달라고 요구한다. 그렇다! 외모로 보나 행동으로 보나 그는 누가 봐도 싸이코다. '싸이'의 영문 표기 자체가 psycho에서 따온 'psy'인 것을. 하지만 그는 정말 무개념 싸이코인 것일까? 나는 최근에 그가 얼마나 치밀하고 예의바른 개념만빵 싸이코인지 알게 됐다. 9월 12일 내가 연출하는 SBS <김정은의 초콜릿> 프로그램은 가수 싸이의 컴백스페셜 무대를 방송했다. 7월 제대 후 이렇다 할 활동 없이 두문불출하던 싸이의 최초이자 단독 컴백방송이었다. 싸이의 <초콜릿> 출연은 조금은 갑작스레 이루어졌다. 녹화 바로 한주 전 평소 알고 지내던 가수 김장훈씨가 전화를 해와 <초콜릿>을 통한 컴백을 제안한 것. 싸이의 절친한 선배이자 정신적 멘토인 김장훈은 자진하여 그의 매니지먼트까지 도맡고 있었다. 여름의 끝자락, 숨가쁘게 달려왔던 <초콜릿>의 계절마감을 싸이가 채워줬으면 하고 내심 바라던 차, 반갑고도 신나는 소식이었기에 긴 말 필요없이 깔끔하게 "OK!" ● 갑작스럽게 이뤄진 싸이의 복귀무대 그렇게 기획된 <초콜릿> 무대에서 싸이는 전혀 녹슬지 않은 전성기 그대로의 파워와 매력으로 1500여 관중과 함께한 현장을, 그리고 수백만 시청자와 만나는 안방을 한방에 후끈 달궜다. 그런데 나는, 무대 위에서 보여준 익숙한 그의 열정 외에도 무대 밖에서 새롭게 발견한 또 다른 모습들을 몇 가지 눈여겨보게 되었다. 미국 보스톤의 대중음악 전문대학인 버클리 음대(Berklee College of Music)를 졸업한 한 부잣집 아들이 갑자기 TV에 나와서 "완전히 새 됐"다며 기괴한 가사와 코믹한 '새춤'을 추기 시작했다. 60년대 복고양복 스타일에 생긴 것부터가 뭔가 심상치 않았던 이 가수. 노림수 그대로 엽기가수의 자리를 꿰찬 싸이는 이후 거침없는 입담과 퍼포먼스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대마초라든가 재입대라는, 노래보다도 훨씬 더 엽기적인 사건사고로 헤드라인에 오르락내리락거렸다. 그의 행보는 독보적이었고 그의 반성은 조속했으며 그의 인기는 지속됐다. 확실히 싸이는 남들이 감히 넘보지 못하는 자신만의 구역을 확실히 접수하고 있었다. 세상 어느 곳이나 다 그렇겠지만 이쪽 동네(예능계)에도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일명 '건달'들, 아니면 '샌님'들. 이것은 사전적 정의와 상관없이 일처리 스타일을 비유한 표현으로서, 건달이라 함은 대체로 먼저 크게 질러 기선을 제압한 후 뒷처리는 따르는 사람들이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는 스타일이라면 샌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세심하게 자신의 손을 거치고 그 과정과 결과에서 스스로 무한책임을 묻는 스타일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대표적인 '건달'과와 '샌님'과에는 누가 있을까? 전자의 대표가 이승철이라면 후자의 대표는 김장훈 정도? 그럼 여기서 퀴즈. 국민가수 신승훈과 김건모는 누가 더 '건달'과에 가까울까? 이미지나 노래 스타일로 봤을 때 김건모 아니겠냐고?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의외로 미성의 신승훈이 훨씬 '건달' 스타일이라는 재밌는 사실!
그렇다면 싸이는 건달과 샌님 사이 어느 쪽일까? 쉬이 접근하기 어려울 듯(?)한 외모와 무대 위에서의 과격 엽기 퍼포먼스로 미루어 봤을 때 건달 쪽이 더 가깝지 않겠냐고 생각하시는 분들. No! 그는 스스로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나는 샌님이야~" 아니, 내가 보기에 정확히 말한다면, 싸이는 '건달의 탈을 쓴 샌님'이다.
컴백녹화를 앞두고 우리는 여러 번 만나 선곡부터 무대장치까지 많은 것들을 사전조율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싸이는 기대(?)와는 달리 아주 젠틀한 신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중간중간 농담을 섞어가며 능청스럽게 자신의 의도를 고집하면서도 웃는 낯을 한번도 찡그리지 않고 반대의견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경청했다.
스스로의 퍼포먼스에 대한 넘치는 확신이 있었고 폭죽이나 리프트 운용 같은 특수효과의 타이밍을 0.1초 단위까지 철저히 지정/관리했으며 조명이 어디에서 켜지고 어디에서 꺼져야 하는지, 어떤 색으로 어떤 각도에서 어떤 움직임을 보여야 하는지 명확히 계산해 놓은 그림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공연이란 것은 관중들에게 원하는 효과를 정확히 100% 전달해야 하는, 그리고 100% 전달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런 종류의 완벽주의는 방귀 깨나 뀐다는 우리 PD들에게서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일종의 직업병이긴 하지만 내가 놀랐던 점은 그것을 구현해내는 그의 일처리 방식이었다.
●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꼼꼼한 일처리
방송, 특히 예능 분야에서 어느 한사람이 완벽하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혼자서 하면 되는 일이라면 며칠 밤을 새든 몇끼를 굶든 몇 번을 새로 하든 얼마든지 희생을 감수할 수 있지만, 예능이라는 놈의 속성은 나의 뜻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PD가 아무리 완벽해도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고 작가면 작가, 연기자면 연기자, 카메라면 카메라, 각 파트를 맡은 스태프들에게 취지를 설득하고 공감시키고 밥 먹이고 어르고 달래야만 내가 원하는 것과 그나마 비스무리한 결과가 나온다.
때로는 그런 마찰이 귀찮아서 어떤 건 포기하기도 하고 어떤 건 그냥 내버려 두기도 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싸이는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어떤 갈등도 빚어내지 않았다. 할 말은 꼭 한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실하게. 그리고 반드시 체크한다. 그것이 이루어지도록. 세상에, 조명기기 렌즈의 미세한 반사광까지 집요하게 체크하는 가수는 처음이었다. 노래 도중에 완전한 암전상태가 필요한 타이밍이 있었는데 비상구에서 새어나오는 불빛 하나, 미세한 조명 각도 1도, 심지어 보이지도 않는 스튜디오 저 꼭대기에 달려있는 창문 하나까지도 검은 커튼을 쳐야만 한다고 리허설 중에 그것만 수십 번 연습했다.
'건달'의 외모를 가진 그는 '샌님'처럼 치밀하면서도 조곤조곤 자신이 원하는 바를 피력했고 그 결과에 대해선 다시 '건달'이 되어 화끈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끝난 후 제일 먼저 함께 고생한 스태프들을 챙겼다. 녹화 후 뒷풀이 자리에서 그는 새벽빛이 밝아오도록 연출팀부터 안무팀 막내에 이르기까지 모든 스태프들 옆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술잔을 권하고 수고에 감사해 했다.
● 이것저것 '싸'이는 일이 많아서
나는 예전부터 싸이를 한국의 에미넴이라고 생각해 왔다. 가수를 넘어 작사가로, 작곡가로, 그리고 음반 프로듀서로 지평을 넓힌 그는 시장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남다른 감각을 가진 친구다. 가사든 곡이든 그가 손을 댄 노래 치고 (자신의 노래 포함하여) 히트 치지 않은 곡이 거의 없다.
렉시의 <애송이>, 이승기의 <내 여자라니까>, 서인영의 <신데렐라> 등 의외의 노래들도 모두 싸이의 손을 거친 히트곡들이다.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이승기의 <면사포>나 곧 컴백할 것으로 예상되는 섹시가수 아이비의 신곡 등 최고의 음반을 메이킹 & 프로듀싱하는 능력에서 그는 최고의 감을 자랑하고 있다.
예전에 모 전화CF에서 그의 이름을 빗대 "싸군!"이라고 부르며 해당제품이 싸다는 것을 광고한 적이 있다. 근데 내가 본 싸이는 절대 싸지 않다. 값이 싸지도 않을뿐더러 절대로 일을 싸고 뭉개지도 않는다.
기본적으로 싸이의 강점은 폭발적인 무대에 있다. 한번이라도 그의 <올나잇 스탠드> 콘서트에 가본 사람이 있다면 대중을 쥐락펴락 울고 웃기는 그 파워와 무대장악력에 잠시도 두발을 땅에 붙이고 서 있을 틈이 없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화끈하다. 하지만 거기에서 머물렀다면 그는 그저 신나는 광대에 불과했을 것이다. 싸이의 노래에는 뭔가 모를 사연과 카타르시스가 묻어난다. 일단 촌철살인의 사회풍자가 속 시원하고, 그것이 실려 있는 가사의 모양새가 구수하고 맛깔난다. 싸이 특유의 구어체 가사는 마치 숭숭숭 잘 쳐진 도다리 회를 매콤달콤한 초장에 찍어먹을 때의 혀에 착 달라붙는 감칠맛이 난다.
거기에 영어를 쓰지 않고도 기깔나게 표현해내는 각운은 또 어떻고. "이것보소 남녀노소" 식의 한글 라임은 일견 쉬워 보이지만 그리 쉽게 나올 수 있는 가사는 아니다. "내일 걱정은 내일 모레" 같은 대목에선 심지어 우리네 인생에 뭔가 시사점을 던져주는 경구를 듣는 듯이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스스로가 스스로를 바보로 만들 수 있는 용기야말로 싸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본인을 낮추는 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사람은 그 누구 앞에서도 거칠 것이 없어진다. 스스로를 횟감으로 삼아 맛깔나게 한상을 차려내는 싸이표 메뉴에 사람들은 줄을 서 단골이 된다.
"그대의 연예인이 되어 / 항상 즐겁게 해 줄게요 / 연기와 노래 코메디까지 / 다 해 줄게" 이 동네 '딴따라'들의 열정과 진심을 <연예인>의 가사처럼 진정으로 전해 주는 노래가 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신나는 노래가 다가 아니다. 군에 재입대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한 싸이는 입대 직전 그의 심경을 담아 <소나기>라는 노래를 썼다.
"우산없이 살다가 / 아주 흠뻑 젖었네 /
정신없이 살다가 /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웃어야지...
내가 찾아가야 인생이 있어 / 또 내일이 있잖아 /
오늘 하루만 소나기"
만일 싸이 본인이 인생에서의 우여곡절을 겪지 않았다면 이런 가사가 나올 수 있었을까? 이것저것 쌓이는 일이 많았던 싸이였기에 그는 사람들과 솔직한 자신을 털어놓고 소통할 수 있었다. 구구절절이 사연이 그득한 싸이 최초의 발라드를 <초콜릿>을 통해 처음으로 부르던 날, 인간 박재상은 끝내 목이 메어 노래를 멈춘 채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 웰컴 투 싸이 월드
2002, 2006, 그리고 2010년. 온갖 우여곡절로 자리를 떠났다가도 월드컵만 되면 제자리에 돌아온다는 남자 싸이. 그가 술자리에서 항상 외우는 '주문'이 있다.
"우리의 젊음이 저기 저 뜨거운 라스베가스를 향하여!
저기 저 높은 태백산맥의 높새바람이 불 때까지!
우리의 우정은 영원하다!"
주변 사람들의 잔을 반강제로 가득 채우고 모두 한자리로 모아놓은 채 한소리로 외우는 저 건달 같은 주문이 바로 인간 싸이의 모습이다. 항상 뜨거운 바람을 겁내지 않고, 항상 높이 날기를 원하는 새처럼, 모두와 함께 '우리'이고 싶은 영혼 박재상. 싸이가 건재하는 한 대한민국 국민들도 쉼 없이 울고 웃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은 과연 나 혼자만의 것일까?
《싸2》부터《3마이》,《싸집》까지 새로 내는 음반마다 자신의 이름을 이용해서 독특한 작명을 하는 싸이의 센스가 내년 초쯤 나올 5집에서 또 어떤 모양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줄지 무척 궁금해진다. 혹시 이건 어떨까? 5집이니까, '하이파이브!'를 활용해서 《싸이파이브!》? ㅋㅋ
그나저나 앞서 말한 저 건달스런 주문, 나도 어디 가서 한번 써먹으려 했더니 싸이가 대뜸 한마디 한다. "형, 저작권료부터 지불해!" ㅠㅠ 에잇, 샌님 같으니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