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톨스토이"라고 이름을 날렸던 애자, 그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애자는 소위 사고뭉치 꼴통이다. 명성은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된다.
글쓰기 대회에 나갔다 하면 입상하는 애자는 그런데 그 문학성 때문에 좀 이상한 아이로 보이기도 한다. 아이들과 어울려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고, 부탄가스에 후라이팬까지 들고 와 학교에서 밥을 볶아 먹는다. 무단결석이 많아 특기가 있음에도 특기생으로 뽑히기 어려운데 그 이유가 더 그럴싸하다. 비오는 날엔 바닷가에 가야지 학교에 가서는 안 되기 때문이란다.
최강희가 주연을 맡은 영화 '애자'에서 애자는 꼴통이기에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다가온다. '달콤, 쌉싸름한 연인'에서 특유의 4차원 연기를 선보인 바 있는 "최강희"는 이번 '애자'에서 이상하지만 매력적이고, 사고뭉치지만 의리있는 "애자"를 훌륭히 소화해낸다.
● 사고뭉치 애자의 사랑스러움…
애자는 최강희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최강희-애자는 사랑스럽게 다가온다. 애자 엄마의 말마따나 그녀는 사막에서도 우물을 길어 낼 여장부다. 여장부란 무엇인가?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이 헤쳐나가는 여자이고 한편으로는 협잡이나 비리에 응하지 않고 자기 뜻을 관철하는 고집쟁이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과연, 애자는 고집불통에 의협 여성이다.
그런 애자는 친구들에게는 인기가 있지만 엄마에게는 골치덩어리, 사고뭉치에 불과하다. 귀를 잡아 학교에 앉혀 두고,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해대는 딸을 방안에 가둬야 하니 말이다. 더더욱이나 이런 모습이 19살 때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스물아홉 살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 골치는 두 배로 아프다.
스물아홉이 된 여자가 직장이나 생계가 아닌 "꿈"을 쫓아다니는 것은 사회적으로 보아 철부지 짓에 불과하다. 스물아홉쯤 되면 엄마는 딸이 조금은 평범한 삶의 궤도에 들어가기를 바란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렇게 알콩달콩 살아가기를 말이다.
그래도 "애자"는 꿋꿋이 자신의 '캐릭터'를 고수한다. 골목길에서 만난 버릇없는 여고생들을 육체적으로 벌하고, 자신에게 덤비는 사람이라면 수를 불문하고 용납하지 않는다. 덕분에 엄마는 육십이 다 된 나이에 딸이 친 사고 뒤처리에 '깽값' 처리하느라 골머리를 앓는다.
"애자"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언급되었지만 사실 영화 '애자'는 애자 그리고 애자의 엄마 이야기다. 애자의 독특한 성격은 사사건건 충돌하는 엄마 때문에 더 입체적으로 빛난다. 서울에 올라간 지 10년이 되도록 부산엔 내려가지 않는 딸, 웬만해서는 오라고 부르지도 않는 엄마는 흥미로운 짝패가 된다. 실상 애자 엄마의 모습은 애자와 꼭 닮아 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수의사라는 번듯한 직업을 갖기는 했지만 자기 주관을 고집부리는 모습이나 마음에 없지만 독한 말만 뱉어내는 솜씨는 애자의 모습, 바로 그것이다.
● 우리는 모두 애자, 그리고 꼴통
예상하다시피, 말썽꾸러기 고집불통, 천덕꾸러기 딸 애자는 엄마의 가장 좋은 친구 노릇을 하게 된다. 엄마에게 딸은 친구라는 말이 있듯이 애자는 갑자기 병이 재발한 엄마의 마지막 길을 지켜준다. 남편도, 아들도 없는 그녀의 임종엔 말썽꾸러기 딸이 최후의 반려로 앉아 있게 된다.
영화 '애자'는 결국 언젠가 우리 앞에 떠나보내야만 하는 소중한 사람, "엄마"의 이야기를 애자의 시각에서 제시하고 있다. 엄마의 죽음이라는, 누구나 언젠가 겪을 평범한 일이 꼴통 애자와 고집불통 엄마의 이별로 감각적으로 전달된다. 언젠가가 바로 지금처럼 당겨지면서 이별의 고통과 부재의 감각은 구체화되기에 이른다. 누구나 겪게 될 이별, 영화 '애자'의 매력은 그 소소함에서 비롯된다.
영화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부분도 사실, 일상 속 시시한 다툼들이다. 엄마는 선을 보라면서 사진첩을 펼치고 딸은 머리가 벗겨지거나 얼굴이 칙칙한 사진들을 보며 툴툴거린다. 별 것 아닌 일로 싸우다가 애자는 짐을 싸서 서울로 가겠다고 으름장을 부리며, 엄마의 화장품 하나를 슬쩍 가방에 넣는데, 엄마는 또 그걸 알아채서 꼬집는다.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 싸워서 서로에게 "세워라", "내려라" 소리 지르는 애자와 엄마의 모습은 그런데, 가만히 보면 지금 내가 사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