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이달 초 지진 피해를 본 인도네시아에 50만 달러 상당의 구호품을 보냈다. 9월에는 태풍에 강타당한 필리핀과 가뭄으로 식량난에 시달리는 과테말라에 각각 30만 달러와 10만 달러어치의 구호품을 보냈다. 이른바 ‘인도적 지원(humanitarian aid)’의 사례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인도적 지원을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고통을 경감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 보호하기 위한 활동’이라고 요약한다. 정부는 지난해 31개국에 1000만 달러가 넘는 인도적 지원을 했다.
▷사흘 전 개성공단에서 열린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인도적 지원과 이산가족 상봉 문제가 충돌했다. 남측은 11월과 내년 설에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하자고 제의했으나 북측은 “이산가족 추가 상봉행사를 하려면 남측의 성의 있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며 ‘선(先)인도적 지원’을 요구했다. 남북의 주장이 엇갈려 합의를 못 이루었지만 북측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인도적 지원을 직접 요청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정부에서도 “적십자 차원의 소규모 지원은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굶주리는 북한 주민은 논란의 여지없이 인도적 지원의 대상이다. 국경과 인종을 초월해 외국인까지 도와주는 마당에 북녘 동포의 고통을 덜어줄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인간으로서도, 같은 민족으로서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남북 이산가족 상봉 또한 긴급구호에 못지않은 인도적 과제다. 이산가족 상봉은 ‘인도적 지원’에 대한 OECD의 정의에도 딱 들어맞는다. 게다가 이산가족 상봉은 북한이 호응하면 당장이라도 재개할 수 있다.
▷문제는 이산가족 상봉과 인도적 지원을 연계하는 북한의 태도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남북 대화와 이산가족 상봉의 대가로 쌀과 비료를 준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인도적 이슈가 흥정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북이 요구하는 성의나 보상은 인도주의 자체에 대한 모독이다. 북은 계속해서 이산가족 상봉의 대가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민족적이고도 인도적인’ 상봉의 상례화에 협조해야 한다. 북의 태도가 그렇게 바뀌면 ‘성의나 보상’ 차원을 넘어 남측이 더 많은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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