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의 춤추는 미소년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7일 15시 53분


연보랏빛 치마를 입고 진분홍 스카프를 나풀거리며 춤을 춘다.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남성들에게 웃어 보이는 작은 얼굴엔 진한 화장을 했다. 차림새는 여자인데 자세히 보니 수염이 나지 않은 사내아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선 수 백 년 전부터 부잣집 남자들이 모여 예쁘장한 사내아이를 사다가 춤추게 하고 성추행까지 하는 몹쓸 관행이 전해져 내려온다. 현지어로는 '바차 바지'(bacha bazi·소년이 하는 공연이라는 뜻)라고 하는데 미국 CNN이 이들의 공연을 담은 동영상을 입수해 유력자들의 성노예 생활을 하는 아프간 미소년들의 인권 유린 실태를 26일 보도했다.

CNN에 따르면 '바차 바지'의 주요 고객은 군 사령관이나 고위 공무원들이며 수도 카불의 거리를 떠도는 6만명 가량의 소년들이 바차 바지 관행의 잠재적인 희생자이다. 미소년들은 고객들이 빙 둘러 앉아 있는 가운데 여장을 한 채 춤을 추고는 30달러를 받는다. 이런 모임에는 술과 마약이 곁들여지게 마련이며 춤이 끝난 후에는 성추행으로 이어진다. 이 몹쓸 관행에 대해 인권 단체는 물론 이슬람 학자들도 문제를 제기하지만 탈레반과의 전쟁에 여념이 없는 아프간 사회가 미소년들의 성 유린 문제까지 고민할 겨를은 없다.

파르헤드(19)는 13세때 이웃 남자에게 성폭행 당한 후 바차 바지 세계에 끌려 들어갔다. 처음 5개월 동안은 감금된 채 얻어맞고 성폭행을 당했다. 그는 "이후로는 그 남자에게 익숙해져서 그와 함께 파티에도 가고 어디든 그를 따라 다녔다"고 털어놓았다.

아프간에서는 성폭행의 가해자보다는 희생자가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여자 같이 생긴 남자'로 한번 찍히면 사람대접을 안 해주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파르헤드 같은 미소년들은 도움을 호소할 곳도 없다. 파르헤드는 심지어 경찰관들에게도 성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미소년들이 바차 바지 세계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이다. 자멜(20)은 결혼을 하고 나서도 5년 전 시작한 '바치 바지' 생활을 그만두지 않는다. 그는 "내가 돈을 벌어 어린 남동생과 여동생들 공부도 시키고 옷도 사주고 밥도 먹인다"며 "난 동생들이 나처럼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파르헤드와 자멜은 춤을 추기 전 "어떻게 하면 폭행당하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을 까 겁이 난다"고 했다. 자멜은 "우린 이런 일이 정말 싫다"며 "신이 이렇게 살도록 내버려두는 대신 차라리 우릴 죽여줬으면 하고 생각할 때도 있다"고 전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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