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저녁 서울 강남의 한 클럽에서 2년 만에 무대에 선 가수 아이비(본명 박은혜·27)의 세번째 정규앨범 '아이 비(I be)…' 쇼케이스가 열렸다.
"오기와 독기로 지금까지 버텼다"는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이비는 무대 위에서 폭발적인 가창력을 뿜어냈다. 격렬한 춤 동작에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은 음색으로 새 앨범 수록곡 '터치 미' '눈물아 안녕'을 비롯해 예전의 히트곡 '유혹의 소나타'를 연이어 불렀다. 풍부한 감성과 성숙한 분위기가 요즘 유행하는 '걸 그룹'과는 다른 아이비의 연륜을 드러냈다.
대신 의상과 춤 동작, 음악에 있어서는 '아이비 표' 파격보다는 안정성을 중시했다. 요즘 대세인 파워 숄더 스타일의 의상, 후렴구가 반복되는 후크 송 형식의 곡을 선보여 과거와 다른 소극적인 면모를 보였다. 아이비는 '그 사건' 이후로 많이 달라진 듯했다.
2년 전 아이비는 '여자 비', '이효리를 누를 대안'으로 평가받으며 '유혹의 소나타' '이럴 거면' 등으로 인기 절정에 올랐다가 전 남자친구의 협박 사건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졌다.
아이비는 2005년 자신이 출연한 한 영상물의 스태프였던 6살 연상의 유 모 씨와 연인관계로 발전했으나 2007년부터 관계가 소원해졌다. 유 씨는 같은 해 10월 헤어질 것을 요구하는 아이비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아이비 소속사 측에도 "아이비와 성관계한 동영상이 있다"고 협박한 혐의로 기소됐다. 유씨는 법원에서 폭력과 협박 등의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유 씨는 "아이비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었다. 그전까지는 다른 남자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아이비와 가수 H가 차 안에서 연애 중인 모습을 목격했다"며 언론에 협박 동기를 말했다. 아이비 소속사는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아이비가 동의 하에 동영상을 찍은 사실은 없지만 아이비가 음반작업을 끝내고 (유씨의 집에서) 불가피하게 잠을 잔적은 있다"라고 말해 대중의 호기심만 더 자극했다. 아이비와 전 남자친구, 그리고 삼각관계로 소문난 가수 이야기까지 더해져 온갖 억측이 난무했다.
아이비는 피해자였고 상대 남성은 법에 따라 죗값을 치렀지만 팬들은 아이비에게 돌을 던졌다. 다른 섹시 가수와는 달리 '군인 집안에서 잘 자란 모범생 딸' 이미지를 고수했던 아이비를 '가식적'이라고 비난하고 나선 것. 2000년대 초 '혼전 순결 선언'으로 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팝 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남자관계가 탄로 났을 때와 비슷했다. 이후 스피어스는 성녀(聖女)에서 색녀(色女)로 이미지가 하강했다.
비록 아이비가 스피어스처럼 '순결 선언'을 한 적은 없으나 아이비의 팬들은 "남자친구 만날 시간도 없다" "여자의 몸은 아이를 낳는 성스러운 존재라 술과 담배를 하면 안 된다" 등 과거 발언을 거론하며 아이비를 구석에 몰아세웠다. 또한 사촌으로 알려진 수영 선수 박태환과의 관계도 지인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아이비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결국 '범죄 피해자'인 아이비는 연말 골든 디스크상 시상식에서 눈물을 흘리며 "구설수에 올라 죄송하다"고 사죄의 뜻을 표시했다. '여가수는 섹시하되 섹스해선 안 된다'는 인기 공식이 맞아떨어진 순간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연예인이, 그것도 여자 연예인이 사생활을 전부 다 대중 앞에 털어놔야 하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삼각관계의 또 다른 당사자로 지목된 남자 가수는 별 타격 없이 지나간 것과는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이비를 모델로 썼던 광고주가 이미지 타격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해 소속사가 광고주에게 1억 2500만 원을 물어주게 된 것. 또한 새로운 기획사와 계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분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올해 초에는 작곡가 김태성과 연인 사이라는 게 공개됐을 때도 "남자를 이용해 뜨려 한다"는 호된 비난에 부딪혀야 했다. 아이비는 답답함을 호소하는 과정에서 "은밀한 스폰서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고(故) 최진실 씨의 마음을 이해한다" 등의 글을 올려 또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금까지도 인터넷에는 아이비의 문란한 사생활 진실이라며 '유명가수와 양다리', '잠자리 몰래카메라 동영상' 등 검증되지 않은 각종 설이 버젓이 유포되고 있다. 아이비는 쇼 케이스에서 "악성 댓글에 가장 많은 상처를 받은 건 부모님"이라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아이비는 협박 사건의 상처를 이겨내고 가수로 복귀하게 된 데 대해 솔직한 심경을 털어놨다. 대한민국에서 여자 연예인으로 살아가는 비애가 느껴진다.
"중도 포기했다면 많은 사람은 저에 대해 '남자관계가 복잡했던 가수'로만 기억할 것 같았다.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내 아이도 그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이제 나의 목표는 가수 1등이 아니다.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통해 '아이비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이런 아이비의 모습은 선배 가수 백지영과 겹쳐진다. 백지영은 2000년 전 남자친구가 그녀와의 사생활이 담긴 비디오를 유출해 힘든 시간을 보냈다. 오랜 공백 끝에 발라드곡 '사랑 안해' '총 맞은 것처럼'을 연속 히트시킨 백지영은 올해 초 한 방송프로그램에서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을지, 가정을 가질 수 있을지, 아이들이 내 과거를 창피해하지 않을지 걱정도 했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비디오 사건 이후 백지영의 가족들은 독일에 이민을 가서 조용히 살자고 했지만 그는 계속 노래하는 길을 택했다. 지금은 2PM '택연'과 함께 댄스곡 '내 귀에 캔디'로 활동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아이비는 "쉬는 동안 무대가 그리웠다"고 말했다. 특유의 여전사 파워는 없었지만 춤을 추면서도 라이브로 노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가수는 많지 않았다. 더구나 아이비는 백지영처럼 발라드와 댄스곡을 모두 맛깔 나게 부를 줄 안다. 가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가창력이다.
쇼 케이스에서 공개한 발라드 곡 '눈물아 안녕'은 단숨에 음악 차트 상위권에 올랐다. 총 16곡이 수록된 아이비의 정규 3집 '아이 비'(I Be…)는 29일 정식 발매됐다. 앨범 제목 '아이 비…'는 '나는 아이비다' '나는…시작한다' '나는…존재한다' 등의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어떻게 해석되든 오랜 공백 끝에 다시 일어선 아이비의 각오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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