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대표적 고급 레스토랑에서 평소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각국의 정찬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위크'가 다음달 2일 시작된다.
그랜드테이블협회가 소속 회원업체, SK텔레콤과 함께 진행하는 '레스토랑 위크'는 '뉴욕 레스토랑 위크' '런던 레스토랑 위크' 등 미국과 유럽 주요 도시에선 이미 정착한 행사를 국내에 도입한 것이다.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열리는 이 행사에는 미식가가 선호하는 유명 레스토랑들이 참여해 왔다. 단품 메뉴 하나의 가격으로 다양한 요리를 풍성하게 맛볼 수 있기 때문에 '레스토랑 위크'를 기다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올가을 행사엔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등 총 20개 레스토랑이 동일하게 점심 2만원, 저녁 3만원(각 부가세 별도)으로 애피타이저 메인 요리 디저트 등이 포함된 정찬 코스 요리를 선보인다. 특히 참가 레스토랑들이 유명 사진가들의 작품 전시회도 마련해 예술과 맛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레스토랑 위크'에 참여하는 매장 가운데 서울 청담동에 있는 대표적인 레스토랑 세 곳을 다녀왔다. 이곳에서 자신 있게 내놓은 코스 메뉴의 맛과 분위기를 소개한다.
●퓨전 일식당 타니(TANI)의 테이블
퓨전 일본요리 레스토랑인 타니는 점심과 저녁에 각각 다른 코스를 선보인다. 어둡고 차분한 동양적 분위기에 좌석이 넓어서 편안하고 조용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다.
타니의 점심 코스는 디저트를 포함해 총 5종의 단품 메뉴와 커피 혹은 차로 구성됐다. 퓨전 스타일이지만 일본 전통요리의 맛과 장식이 돋보여 정갈하다.
단품 한 개만 보면 "양이 좀 적다"는 생각이 들지만 5종의 메뉴를 모두 먹고 나면 포만감이 들 정도로 풍성하다. 종류가 다양해 음식이 질리지 않는다는 점도 만족스럽다.
'새우와 관자, 아스파라거스의 그릴 샐러드'는 그릴에 구워낸 새우와 관자, 아스파라거스가 싱싱한 채소와 함께 제공된다. 버터와 브랜디를 넣고 구운 각각의 재료가 은은한 맛을 내고, 타니에서 올리브기름과 꿀 등을 넣어 만든 발사믹 소스가 입맛을 돋운다.
메인요리는 '된장치킨 도반야끼'와 '향신소스의 광어 튀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된장치킨 도반야끼'는 일본 전통된장인 미소로 양념한 닭고기와 야채를 작은 냄비에 넣고 구워 먹는다. 고소한 향이 육질에 베어 있다.
식사로는 '중화 누룽지탕'이 나온다. 큰 새우와 관자, 죽순 등 고급재료를 넣어 푹 끓여낸 중국식 누룽지와 어우러진 맛이 일품이다.
저녁 코스에는 디저트를 포함해 총 6종의 단품 메뉴와 커피 혹은 차가 제공된다. 점심 코스보다 비싼 3만원(부가세 별도)이지만 음식 종류가 다양하고 양도 많다.
'비프 타리야타와 루꼴라 샐러드'에는 겉만 살짝 익힌 뒤 얼음에 넣어 식혀 육즙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직화구이 소고기가 들어가 있다. 여기에 신선한 루꼴라와 아보카도, 참깨 소스와 와사비(고추냉이 소스)를 넣어 고소하면서도 쌉싸름한 맛이 난다. 김을 얹어서 바삭한 맛도 살렸다.
애피타이저는 일본 요리의 대표적 메뉴인 '새우튀김과 아게다시 도후'가 제공된다. 새우와 가지, 두부를 튀긴데다 간장과 다시로 만든 아게다시 소스를 끼얹었다. 그 다음으로는 '단호박 포타쥬 스프'가 나온다.
메인요리는 '삼겹살 적된장 구이'와 '메로 된장구이' 가운데 고르면 된다. '삼겹살 적된장 구이'는 붉은 빛깔의 일본 적된장에 일주일 동안 숙성시킨 뒤 쫄깃하게 구워낸 삼겹살을 파절이, 고추와 함께 먹는 요리. 매콤한 맛을 선호하는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아서 평소에도 인기 메뉴로 꼽힌다.
식사에는 스시 3종류가 나오는데 생선 종류는 매일 바뀔 수 있다. 이날 제공된 스시 중 연어는 특유의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을 정도로 싱싱했다. 머랭과 푸딩에 라즈베리 멜론 산딸기를 넣어 만든 새콤달콤한 '파나코타 푸딩'이 식사를 마무리 짓는 디저트 메뉴다.
타니의 레스토랑 위크 코스 중 가장 독특하면서도 입맛을 사로잡은 요리는 저녁 코스의 '단호박 포타쥬 스프'다. 단호박을 푹 끓여내 부드럽고 달달하면서 동양적인 맛과 서양적인 스타일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별미다.
타니를 예약할 경우엔 매장 안쪽에 마련된 작은 정원이 내다보이는 유리창 옆 좌석을 택할 것을 권한다. 정원에도 좌석이 있지만 날씨가 쌀쌀하기 때문에 실내에서 넓은 창을 통해 동양 분위기가 물씬 풍기도록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정원을 바라보며 식사를 즐기는 편이 좋다.
예약문의: 02-3446-9982
●카페 미엘(miel)의 테이블
깔끔하고 모던한 분위기의 카페 미엘은 다음달 2일부터 6일까지 5일 동안 점심 코스를 선보인다. 150여 평의 탁 트인 매장에는 26개 테이블이 마련돼 100여명의 손님이 동시에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미엘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특히 각광받는 카페다. 안쪽에는 깜찍한 인형이 세워진 작은 정원이 있으며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실내, 자연광이 잘 들어오는 창가 등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어 사진 찍기에 안성맞춤이다.
미엘이 선보이는 '레스토랑 위크' 점심코스는 3종의 단품 메뉴와 커피 혹은 차로 구성된다. 카페이지만 주방장이 손이 큰 덕분인지 양이 유난히 푸짐하다.
우선 '디종 머스터드 치킨 샐러드'가 나온다. 새콤한 향의 디종 머스터드 소스에 버무린 따뜻한 닭고기 느타리버섯 감자와 싱싱한 채소를 먹을 수 있다. 이 샐러드가 단품으로 연매출 3억원을 올리는 미엘의 '효자 메뉴'라고 한다.
메인요리는 '오늘의 파스타'다. 파스타는 '레스토랑 위크' 기간 중 매일 아침마다 주방에서 '고르곤 졸라' '시푸드 토마토' '갈릭 엔초비' '봉골레' '카르보나라' 중 한 가지를 골라 내놓는다.
'레스토랑 위크'에 앞서 미리 맛본 파스타는 '갈릭 엔초비 파스타'였다. 이 파스타는 엔초비 마늘 올리브를 듬뿍 넣고 올리브 오일로 담백하게 맛을 낸 요리다.
특히 멸치를 소금에 절여 만든 이탈리아 전통 멸치젓갈인 엔초비 특유의 짭조름한 맛이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다.
카페답게 디저트가 매우 풍성하다.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과일을 곁들인 와플이 제공되는데 '베리'와 '키위 바나나' 중에서 한 가지를 고를 수 있다. '베리 와플'은 벨기에산 도우를 구운 와플에 블루베리 라즈베리 블랙베리 등 각종 산딸기가 함께 나온다.
보통 디저트 메뉴에선 과일이 장식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미엘의 '베리 와플'은 산딸기가 꽤 많아서 와플을 다 먹을 때까지 상큼한 맛을 즐길 수 있다. 갓 구워낸 와플은 겉면이 바삭바삭하면서도 안쪽은 쫄깃하다.
미엘은 카페답게 커피의 맛과 향이 뛰어나다. 진하지만 부드럽고 쓴 맛이 없다. 커피를 정말 싫어하거나 카페인 때문에 마시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코스에 제공되는 '미엘 커피'를 마시기를 권한다. 평소엔 질이 높은 만큼 커피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미엘을 찾는 커피 마니아들에겐 좋은 기회가 될 것같다.
미엘의 김동완 총괄주방장은 "미엘이 문을 연지 2년 만에 처음으로 '레스토랑 위크'에 참여하게 됐다"며 "여럿이 함께 즐기고 나누는 카페 문화의 특징을 살려 이번 메뉴 구성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예약문의: 02-512-2395
●모던 중화요리 레스토랑 '시안'(XIAN)의 테이블
모던 중화요리 레스토랑 시안은 점심, 저녁에 각기 다른 코스를 준비했다. 최근 내부를 새롭게 단장한 시안은 고급카페처럼 모던한 감각이 돋보이는 인테리어로 조용하게 분위기 있는 식사를 즐길만한 곳이다.
중국 출신 요리사가 솜씨를 부린 쓰촨, 후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점심 코스는 6종의 단품으로, 저녁 코스는 7종의 단품으로 구성됐다. 부담 없는 가격에 맛도 뛰어난 중화요리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것. 애피타이저, 메인요리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모든 요리에 눈길이 간다.
점심 코스는 숙성한 오리알 두부 냉채로 만든 '피단두부'로 시작하며 국물은 뽀얗지만 얼큰한 맛의 '송이 통 샥스핀 찜'이 이어진다. 메인 요리는 '백채 삼겹살'과 매콤해서 술안주로도 일품인 시안의 대표적 요리 '매운 고추와 닭 날개'이다.
또 시안에서 개발한 특유의 소스인 미극장으로 맛을 낸 '활우럭 미극장 찜'이 나온다. '활우럭 미극장 찜'은 통째로 삶은 싱싱한 우럭에 미극장과 채소를 곁들여 먹는 요리다.
마지막으로 식사는 사천탕면 마라탕면 완탕면 가운데 고르면 된다. 매운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천탕면이나 마라탕면을 권한다. 마라탕면은 고추기름이 들어가 혀가 얼얼해질 정도로 맵다. 개운한 맛을 원한다면 완탕면이 현명한 선택이다.
저녁에는 해산물과 채소를 겨자 소스에 버무린 '반심선 냉채' '매생이 게살 샥스핀 스프'가 나온다. 이 밖에 해삼과 죽순, 청경채를 굴 소스에 볶은 '총고 해삼'과 '왕새우 간장 칠리 떡 차우'가 코스에 포함돼 있다. '백채 삼겹살' '활우럭 미극장 찜'과 식사의 면류는 점심 코스와 같다.
시안의 '레스토랑 위크' 코스 메뉴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것은 점심, 저녁 코스에 모두 포함된 '백채 삼겹살'이다. 이 요리는 돼지고기 삼겹살을 쪄서 얇게 썬 것에 파채 숙주 무 쌈을 넣고 미극장을 부어 먹는다.
수육처럼 만든 삼겹살이 부드럽고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으며 오이 등 채소가 들어간 무 쌈이 입 안에서 사각사각 씹힌다. 한국의 보쌈처럼 고기와 채소가 잘 어우러진 것이 흔히 맛볼수 없는 별미다.
시안의 지홍초 총괄주방장은 "사실 시안의 이번 '레스토랑 위크' 코스 메뉴 가격은 재료 원가에도 훨씬 못 미칠 정도로 낮다"며 "'맛의 축제'라는 점을 고려해 밑지는 것을 무릅쓰고 정성들여 준비한 만큼 많은 손님들이 방문해 정통 중화요리의 맛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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