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포르노 제작자의 두 얼굴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일 07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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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마찬가지로 영국도 어린이를 상대로 한 성범죄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런데 영국 사회는 무분별한 어린이 성범죄를 부추기는 주범으로 인터넷을 지목하고 있다고 BBC 등 현지 언론이 30일 보도했다.

영국 에든버러 고등법원은 29일 스코틀랜드 최대 소아성애자 네트워크를 이끌면서 어린이들을 성폭행한 닐 스트라찬(41)과 제임스 레니(38)에게 16년과 13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인터넷에 아동 포르노 영상과 사진을 올리기 위해 생후 3개월 된 아기를 포함한 여러 어린이들을 성폭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에이즈(HIV) 양성반응자인 스트라찬은 생후 18개월 된 아기와 6세 소년을 강간한 혐의로, 레니는 한 사내아이를 생후 3개월 때부터 4년간 성폭행한 혐의로 올해 초 기소됐다. 레니는 스코틀랜드의 청소년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를 통칭하는 축약어) 보호단체의 존경받는 지도자였다.

파렴치하게도 두 사람 모두 피해 어린이들과 단둘이 있기 위해 이들의 가족들과 사전에 두터운 우정을 쌓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가족들과 몇 년씩 가깝게 지냈고 피해 어린이들은 두 사람을 '삼촌'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우정을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배반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어린이를 성폭행하는 장면을 사진과 동영상에 담아 인터넷에 올리고 e메일을 이용해 널리 전파했다. 피해자들이 죽는 날까지 인터넷에 떠돌게 될 끔찍한 영상 때문에 받을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 피해자의 아버지는 언론에 "램프의 요정은 한번 밖으로 나오면 다시 그 안으로 집어넣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수사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범인의 단순한 실수였다. 2007년 8월 범인이 수리를 위해 맡긴 한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어린 소년들'이라는 제목의 이상한 폴더가 발견됐다. 수리공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복원된 하드 디스크에서 수천 장의 불건전한 사진들을 찾아냈다.

같은 해 10월 수사는 대대적으로 확대됐다. 경찰은 스트라찬의 소재를 파악했다. 그는 이미 두 건의 성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아 성범죄자로 등록돼 있었던 것. 스트라찬은 HIV 양성반응자였으나 당국의 관심을 피해 두 명의 아이를 둔 부부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경찰은 스트라찬과 그의 연인 콜린 슬래븐(23)을 체포하고 컴퓨터 수사 전문가들을 동원해 그의 인터넷 트래픽을 뒤져 다른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곧 'kplover99'라는 e메일 주소 하나가 의심을 샀다.

스트라찬은 정기적으로 누군가와 서신을 주고받았는데 여기에는 아동 학대를 하자는 제안이 담겨 있었다. 경찰은 e메일 계정을 추적해 스코틀랜드 LGBT 사무실에서 보낸 사실을 알아냈다. 이 단체의 임원인 레니의 것이었다. e메일 'kplover99'에서 kp는 아동 포르노(kids porn)를 의미했다.

2007년 12월 레니의 체포는 경찰에게 중대한 돌파구가 됐다. 그의 아파트를 압수수색한 결과 비밀 벽장에서 DVD와 엄청난 양의 아동학대 이미지가 쏟아져 나왔다. 경찰은 또 그의 인터넷 파일을 검사하면서 대규모의 소아성애 사이트를 찾아냈다.

존경받는 교사로 알려진 레니는 '두 얼굴의 사나이'였다. 낮에는 사회적 약자인 청소년을 위해 일하고 밤이 되면 전 세계의 소아성애자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 중에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살면서 15만 건의 불건전한 이미지를 유포해 유죄 판결을 받은 악명 높은 강간범 매튜 그라쏘와 또다른 네덜란드인도 있었다.

경찰은 그의 컴퓨터에서 얻은 정보로 존 밀리간, 로스 웨버, 크래이그 보스, 닐 캠벨, 존 머피 등 다른 5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아동 포르노를 주고받은 혐의로 올해 6월 유죄를 선고받았다.

스트라찬과 레니는 존 밀리간 등 6명과 함께 아동 포르노를 주고받았기 때문에 형량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경찰은 컴퓨터에서 압수한 수천 장의 아동 포르노 사진과 수백 개의 동영상, 온라인 대화 녹취록을 통해 이들의 범죄를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전 세계에 아동 포르노물을 퍼뜨린 두 범죄자는 감옥으로 갔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인터넷이 깔린 곳 어디에서나 끔찍한 아동 성범죄의 독버섯이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도 스트라찬이 컴퓨터 수리를 맡기지만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에 만연된 아동 음란물이 아동 성범죄를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게 한다고 지적했다. 아동 포르노는 아동을 성적인 대상으로 치부할 뿐만 아니라 아동과의 성행위에 대한 사회적 용인, 아동 학대 불감증을 강화하는 등 각종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우예슬·이혜진 양 살해사건의 범인 정성현(40)의 컴퓨터에는 무려 700개나 되는 음란 동영상이 하드 디스크 가득히 들어 있었다. 어린이와 성관계를 즐기는 음란물도 여럿 나왔다. 인터넷 여기저기서 다운 받은 것들이었다. 정 씨는 2007년 12월 두 어린이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성추행한 뒤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버린 혐의로 기소됐고 대법원은 올 2월 그에 대해 사형을 확정했다.

이번 사건에서 소아성애자 네트워크를 운영한 레니는 e메일로 유럽과 미국의 변태 성욕자들과 주기적으로 연락하며 '아동 포르노 시장'을 유지하는 데 공을 들였다. 그는 '소비자'들의 격려와 칭찬에 고무돼 더 자극적이고 대담한 짓을 벌였다.

바나틴 상원의원은 영국 일간 타임스 온라인 판에 "음란물 제작자들의 사진과 동영상을 내려 받은 사람들이 적었다면 이들의 제작 의욕이 떨어졌을 것이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심각한 범죄도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든버러 대학 에델 콰이레 사회 심리학 박사는 "(불법 영상물을) 공유할 수 있는 거대한 장소인 인터넷의 출현 이전에는 이 같은 범죄는 전혀 불가능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20년 전만 해도 섹스 숍에 들어가서 '나는 어린이를 좋아하는 성적 취향이니 내게 맡는 상품을 추천해 달라'고 말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인터넷은 이제 그걸 가능하게 했다"며 "온라인에서 개인 간 거래된 자료들의 양과 수준을 보면 실제로 경찰에 붙잡힌 사람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원의 유죄 판결 이후 경찰은 성범죄자들 사이의 온라인 트래픽을 분석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인터넷에서 불건전한 이미지 배포를 감시하는 새로운 기술을 이용할 것으로 전해졌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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