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다시 시작하자! 한국 남자농구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2일 11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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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9월 5일, 김포공항. 허름한 중절모에 백 하나를 든 외국인 노 신사가 입국장을 들어서자 키가 큰 한국인 여러 명이 달려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그를 차로 안내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 노 신사는 미국 농구계의 거장이었던 존 번이었다. 그는 1936년부터 3년 간 스탠포드대 농구팀 감독으로 전미대학선수권대회(NCAA) 3연속 우승을 이끌었고 미국농구심판협회 회장을 맡는 등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그가 한국에 온 이유는 초창기의 한국 남자농구를 지도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대한농구협회는 30여 명의 학생 선발군을 뽑아 한국농구의 토대를 놓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고 존 번이 지도를 맡은 것.

이처럼 농구는 다른 스포츠 종목에 비해 일찌감치 외국인 지도자를 받아들였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1955년의 존 번 감독과 2000년 한국에 온 거스 히딩크 축구대표팀 감독 사이에 공통점이 있었다는 것.

존 번은 경복고 체육관에서 한국 선발군과 첫 대면을 했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농구 관계자의 말에 "바벨(역기)"이라고 답했다. 그가 보기에 한국 선수들이 근육이 너무 부실해 기술 보다는 체력 강화가 우선이라고 여겼던 것.

히딩크 감독도 한국축구대표팀을 맡은 뒤 바로 파워 프로그램을 실시해 1년 6개월 간 강력한 체력훈련을 꾸준히 실행함으로써 한국축구의 월드컵 4강을 이끌었다.

1950년대만 해도 농구 선수는 어깨에 살이 붙으면 슛이 부정확해지고 유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역기를 들거나 기계체조를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여겨졌고 야구 선수들은 수영과 역기 드는 것을 금기로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 존 번 감독은 역기를 이용한 강력한 체력 훈련을 한국 학생선발팀 선수들에게 시켰다. 몇 달 간의 체력훈련 후 존 번 감독은 "오케이 이제는 본격적으로 농구를 해보자"며 기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한국 농구는 존 번 감독 이후에도 내트 홀맨, 찰스 마콘, 제프 고스폴 등의 외국인 지도자를 초청하면서 발전을 거듭했고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 2회, 준우승 11회를 하면서 아시아 농구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지난 8월 남자농구대표팀은 팬들을 너무 실망시켰다. 제25회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최초로 4강에도 들지 못하면서 7위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둔 것.

특히 역대 최장신(221㎝)인 하승진(KCC)을 비롯해 김주성(동부), 주희정(SK), 양동근(모비스), 김민수(SK) 등 프로농구의 스타플레이어들이 대거 포진해 최소한 결승에는 오를 것이라는 기대 속에 나온 저조한 성적이어서 그 충격이 더 했다.

남자 농구는 라이벌 종목이었던 배구에 앞서 1997년 프로를 출범시키면서 동계 구기 종목에서는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다. 프로농구는 지난시즌 역대 최다 관중인 122만8856명을 기록하며 흥행에 큰 성공을 거뒀다.

농구인들이 이런 국내에서의 성공에만 만족하고 국제무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한국 농구는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농구팬을 하나둘 사라지게 할 것이다.

앞으로 정확히 1년 후인 2010년 11월 12일에는 중국 광저우에서 아시아인의 스포츠 축제인 아시아경기대회가 개막한다.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결승에서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던 한국남자농구. 아시아 정상에 또다시 서기 위해서는 54년 전 존 번 감독을 초청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권순일 동아일보 스포츠사업팀장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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