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감염인과 직장생활을 같이 하면 감염될 수 있다?' '에이즈 감염인과 같은 직장에 있다면, 사표를 내도록 해야 한다?'
두 질문은 비슷해 보이지만 답변 태도는 전혀 달랐다. 첫 번째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는 응답자가 82%에 이르렀다. 18%만이 감염인과 같은 직장에 근무할 수 없다고 답변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에 감염인을 직장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답변이 30%에 달했다.
직장생활을 같이 해도 감염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감염인이 나와 같은 직장에 근무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이는 본보 취재팀이 남녀 22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다. (2회 기사 참조)
이런 일반인들의 이중성은 에이즈 감염인들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로 작동한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A 씨(53)가 건넨 명함에는 대형 건설회사의 이름이 박혀 있었다. 그의 시계는 이 명함을 들고 다니던 8년 전에 멈췄다.
방 세 칸짜리 아파트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던 A 씨는 현재 33.48㎡(10평 형) 넓이의 임대주택에서 혼자 살고 있다. 보증금 450만 원에, 월세 3만7000원짜리 방이다.
"차라리 암에 걸려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해요. 그러면 불쌍하게라도 볼 거 아니에요."
2001년 10월 매년 하는 건강검진을 받았다. 여느 때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보건소에서 '잠시 들르라'는 전화가 왔다는 것뿐이다. 의아한 마음에 보건소를 찾았더니 에이즈에 걸렸단다. 감염 사실은 금세 회사에 알려졌다. 점심시간이 가장 괴로웠다. 낮 12시만 되면 하나둘 그의 눈치를 보며 사라졌다. 상사는 노골적으로 회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회식은 늘 그를 빼고 이뤄졌다.
가족까지 A 씨를 외면하자 더 이상 비빌 언덕이 없었다. 감염사실을 안 지 1년 만에 이혼했다. 집과 퇴직금은 아내에게 넘겼다. 집을 나설 때 손에 쥔 100만 원이 든 통장 하나가 전재산이었다.
"막막하더라고요. 앞이 깜깜하다는 말을 그때 실감했죠." 누나가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배달 일을 도왔다. 2004년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이듬해에는 배달 일마저 그만 뒀다. 건강이 점점 안 좋아지면서 덜컥 겁이 났기 때문이다. "돈도 없는데, 아프면 끝장이잖아요."
현재 그의 수입은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 40여만 원이 전부다. 매달 한번 HIV(에이즈의 원인 균) 지원단체인 '레드리본센터'가 가져다주는 쌀과 반찬이 생활을 지탱해준다. A 씨의 삶은 에이즈 환자에겐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상당수 에이즈 환자가 거쳐 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국내 생존 에이즈 환자 5497명 가운데 적어도 1113명이 기초생활수급자다. 정부는 에이즈 환자 중 기초생활수급자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 1113명이란 숫자는 올해 기초생활수급자 가운데 에이즈 진료를 받은 숫자다.
에이즈 환자 권익 단체는 생존 에이즈 환자 중 41%에 이르는 2200여 명이 기초생활수급자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5년 인하대 이훈재 교수팀이 에이즈 환자 25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감염인 중 27%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55%는 감염 이후 소득이 줄었다고 말했다.
에이즈 환자에게 가장 큰 위협은 건강이 아니다. 직장을 잃고, 가족에게 버림 받으면서 당장 먹고 살 일이 가장 큰 걱정거리가 된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 이인규 지원팀장은 "지난 1년 동안 예방협회 서울지부를 찾은 에이즈 환자 200~300명 중 대다수가 쪽방이나 고시원에서 살고 있다"고 전했다.
A 씨는 다시 번듯한 직장을 갖고 싶다. 하지만 두렵다. 그가 전 직장에서 본 동료들의 싸늘한 눈빛과 자신을 벌레보듯 피하던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 날아갔어요. 집도, 삶도, 미래도. 내 딸이 시집을 갔는지도 몰라요. 제가 원하는 거요? 아프지 않고 이 상태만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게 전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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