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졸업, 스웨덴 왕립공대 석사, 스위스 연방공대 박사, 스위스 화학회 최우수논문상, 과학저널 '네이처 케미스트리'에 논문 게재. 그 다음은? 전업(專業)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조윤석·34)이 10일 발표한 4집 앨범 '레미제라블'의 첫 트랙 제목은 '평범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이력은 누가 봐도 평범하지 않다.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작년 가을만 해도 직업음악인이 될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미국 두 대학 연구소에 갈 자리가 났던 참이었습니다. 교수들이 이탈리아 토리노 학회에 온다기에 만나보고 결정하려 했죠. 그런데 막상 토리노에 도착하니 학회에 참석할 의욕이 나지 않는 거였어요. 나흘 동안 무작정 여기저기 걸어 다니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만 하자' 마음먹었어요."
좋아서 시작한 공부고 남들에게 인정도 받았지만 평생 공학자로 살 엄두는 나지 않았던 것. "10년을 공부했는데 아깝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내 성향과 정말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깨우쳐간 과정"이라고 답했다.
"직장에서 일이 전부가 아니잖아요. 하루 종일 붙어 있는 사람들과 밥도 같이 먹고 밤에 술도 같이 마시고 싸우기도 하고…. 공동체 생활인데 주변과 안 맞으면 못 버티죠. 그런데 짬만 나면 음악 생각만 하고, 대화도 음악 얘기만 하고. 미묘하게 불편한 어긋남이 조금씩 쌓인 것 같아요. 기질의 코드가 맞지 않다는 걸 6년 동안 겪어 알게 된 겁니다."
-증권과 음악 일을 병행하는 김광진 같은 선배도 있지 않나요.
"만나보진 못했지만 그분은 두 가지 일을 다 즐기는 것 같았어요. 난 그럴 수 없어요. '정말 못 하겠다' 생각해서 그만둔 겁니다. 그리고 성격이 둥글둥글해야 조직생활을 잘 하는데, 그 점에서도 빵점이에요. 사소한 잘못도 슬쩍 보아 넘기지 못하고 시시비비를 집요하게 가리는 타입이거든요. 불경기라 그런지 소문과 달리 오라고 부르는 데도 없습니다."(웃음)
공부와 달리 음악은 그에게 '그냥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대중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3학년 같은 반 옆자리 친구를 통해서. 하지만 그 좋은 음악을 직접 하려 들지 않고 '그저 많이 찾아 듣는 것에 만족한다'는 친구의 생각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꾸준히 습작을 만들기 시작했고, 1997년 3월 대학 친구들과 밴드 '미선이'를 결성했다.
"그해 5월 학교 뒷산 수영장 가설무대에서 첫 공연을 했어요. 20여 개 아마추어 밴드가 나왔는데, 정말 좌절했던 기억입니다. 가져간 기타 이펙트 박스가 무대 시스템과 안 맞아서 시작부터 당황했죠. 멤버 4명의 연주가 다 따로 놀아서 아수라장이 됐어요, '시간이 왜 이리 더디 가나' 생각하며 슬쩍 뒤돌아보니 드러머는 정신 나간 얼굴로 콧물을 줄줄 흘리며 스틱을 휘두르고 있었어요."(웃음)
첫 공연 후 드러머를 내보내고 3인조로 재편성한 미선이는 마침 일어난 홍대 앞 인디밴드 클럽 열풍에 힘입어 1998년 어렵사리 첫 음반을 냈다. '시간' '치질' 등을 담은 이 앨범이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유희열의 눈에 띈 덕에 그는 오래 목말라하던 '음악 쪽 인맥'을 얻었다.
"1993년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을 받았는데 그해부터 재정 문제로 수상작 음반 제작이 중단됐어요. 그때는 '난 왜 이렇게 운이 없나' 한탄했는데, 돌이켜보면 운이 참 좋았어요. 노래 좋게 들었다며 무턱대고 영화음악('버스 정류장') 작업을 맡겨준 분도 있었고…. 중요한 시점마다 고마운 분들을 만나 도움을 받으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유학 시절 루시드폴은 외로운 마음을 백석과 마종기의 시(詩)에 기댔다. 한 출판업자의 도움으로 연을 맺은 마 씨와 1년 반 동안 주고받은 이메일을 모은 책 '아주 사적인, 긴 만남'에서 그는 "과학기술이 인류의 행복지수를 높인 적은 없는 것 같다"고 썼다. 새 앨범의 노래 '그대 슬픔이 보일 때면'에는 음악을 통해 그가 이루고 싶은 바람이 잔잔히 녹아 있다.
"그대 슬픔이 보일 때면 / 정말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요 / 난 조용히 / 그대의 작은 귓가에다 / 어제 밤새워 만든 노래 하나 / 들려주고 싶은 맘 밖에는…."
부산(19일), 서울(24~26일), 대구(31)에서의 공연을 앞두고 루시드폴은 짬짬이 사우나를 가거나 친구와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등, 외국에서 혼자 보낸 6년 동안 놓쳤던 소소한 즐거움에 빠져 있다. "이번 앨범 활동을 마무리한 뒤에는 뭘 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피아노 레슨과 외국어 공부"라고 답했다.
"평생 꾸준히 가급적 많은 외국어를 배우고 싶어요. 프랑스 문화원, 포르투갈 대사관을 찾아가 원어민과 대화하며 배울 수 있는 길이 없는지 기웃거리는 중입니다. 꼭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스위스에 처음 갔을 때 언어 텃세를 심하게 겪었거든요. 집에 초대해 놓고 독일어로만 이야기하고, 실험도구를 불리하게 배정하고…. 언어가 힘이라는 걸 절실히 느꼈죠."
-지난해 8월 스위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 한복 두루마기를 차려입고 갓을 쓴 건 그런 분한 마음 때문이었나요.
"아 그때는 그런 심각한 생각을 한 건 아니고…. 양복 살 틈이 없어서 누나가 가져온 옷을 입었죠. 농담으로 '양복 없는데 한복 입을까?'했는데 정말 챙겨 온 거예요.(웃음) 나중에 귀국해서 친척 할아버지께 엄하게 꾸중을 들었습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복을 이왕 입을 거면 잘 차려 입어야지 격식에 어긋나게 대충 입었다고요."
더 먼 장래에 대해 묻자 그는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시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염두에 두고 있는 모델은 브라질 뮤지션 쉬쿠 부아르키. 소설가이자 싱어송라이터인 부아르키는 집필할 때 몇 년 동안 음악 활동을 하지 않는다.
"마종기 선생님은 등단 과정 같은 거 생각하지 말고 그저 꾸준히 '쓰라'고만 하세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저 지금은 친구 결혼식에 참석해서 축가를 불러줄 수 있고, 형들 집에 놀러가서 아기를 안아줄 수 있는 하루하루가 그저 너무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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