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31세의 신인왕 탄생을 기대하며

설기현.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설기현을 국내 프로 무대에서도 보게 되다니…."

벨기에와 잉글랜드 프로축구 리그에서 활약해 오던 설기현(31)이 K리그 포항 스틸러스와 입단 계약을 맺고 이번 시즌부터 K리그에서 뛰게 됐다는 즐거운 소식이 들려왔다.

설기현이 포항 유니폼을 입었다는 게 기쁜 것은 그가 활약하는 모습을 국내에서 직접 볼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

설기현은 대한축구협회의 유망주 해외 진출 프로젝트에 뽑혀 광운대 재학 시절인 2000년 8월 벨기에 1부리그 앤트워프에 진출한 이후 해외에서만 활약해 왔다.

국가대표로 2002년과 2006년 월드컵에 출전하기는 했지만 국내 프로리그에서 뛰지를 않아 그의 진면목을 충분히 알 수 없었다.

사실 대부분의 외국 축구 전문가들은 2002년 월드컵 때만 해도 설기현을 '최고의 한국 선수'로 꼽았다.

'왼발의 달인'이라는 별명처럼 왼발 슈팅이나 프리킥 능력이 뛰어난 데다 오른발도 잘 써 왼쪽과 오른쪽을 가리지 않고 운동장을 폭넓게 움직이며 뛰어난 공격력을 보였다.

그러나 벨기에의 앤트워프와 안데를레흐트, 잉글랜드의 울버햄프턴, 레딩, 풀럼을 거쳤고 지난해 초 잠시 알 힐랄(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임대 생활을 하는 등 해외에서의 활약은 국가대표팀에서 만큼 빛나지 않았다. 연이은 허리와 허벅지 부상에 이은 컨디션 난조가 겹친 탓이다.

하지만 기자는 혹독한 가난과 부상을 딛고 꾸준히 활약해온 설기현이 국내 무대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을 것으로 확신한다.

'인간은 가난해봐야 내가 어떤 인간인지 그리고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8살 때 아버지가 탄광 사고로 돌아가신 뒤 설기현은 어머니 김영자 씨와 3형제와 함께 강원도 정선에서 강릉으로 나왔다. 생계는 어머니가 과일 행상 등을 하며 꾸렸다. 설기현이 축구를 시작한 것도 이런 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리겠다는 꿈 때문이었다.

배고플 때는 수돗물로 배를 채우며 축구공을 찬 설기현은 앤트워프에 입단해 받은 계약금으로 어머니에게 강릉에 아파트를 사드린 일을 '생애 최고로 기뻤던 일'로 꼽는다.

이렇게 가난의 고통을 맛본 설기현은 "겸손하고 착실하며 인간성이 됐다"는 게 가까이 서 그를 지켜본 사람들의 공통된 평가.

부인 윤미 씨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둔 설기현은 이제 31세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그것은 K리그 신인왕 타이틀과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본선에 나서는 것.

설기현은 K리그에서 단 한차례도 뛴 적이 없기 때문에 이번 시즌 신인왕에 도전할 자격을 갖추고 있다.

또한 지난해 풀럼에서 많이 뛰지 못한 탓에 국가대표팀 허정무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했던 그는 K리그에서 활약해 국가대표팀 복귀와 월드컵 3회 연속 출전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인간성 좋은' 설기현의 화려한 부활을 기대해 본다.

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