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KBS '추노'가 선점한 수목드라마와 달리 월화드라마 시장은 중반에 이른 현재 뚜렷한 선두 주자 없이 KBS '공부의 신'(23%) MBC '파스타'(19%) SBS '제중원'(15%)이 호각지세를 이룬 형국이다.
당초 월화극 지존이 될 것으로 예측됐던 '공부의 신'의 부진 때문이다. 한 달 전만 해도 '공부의 신'은 시청률이 26%를 넘나들며 곧 30% 고지를 넘어설 기세였다. 그러나 치열한 입시전쟁의 본질을 까발릴 것 같았던 '공부의 신'이 엉뚱한 연애놀음으로 맥빠지는 사이, '파스타'가 '주방'이라는 전문직 세계를 흥미롭게 풀어내면서 전세를 역전시킬 기미마저 보이고 있다.
▶ '공부의 신'이 놓치고 있는 세 가지
"사회에는 룰이 있다. 그 룰이라는 것은 전부 머리 좋은 놈들이 만든다. 그들의 편의에 따라 만들어 놓고 (똑똑하지 못한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숨겨 놓는다.… 현명한 놈들은 속지 않고 이득을 얻고 이기지만 바보는 속고 손해를 보고 계속 패배한다."('드래곤 사쿠라' 中)
잘 알려진 대로 '공부의 신'의 원작은 일본 만화이면서 2005년 드라마로도 제작된 '드래곤 사쿠라'이다. 이 작품은 입시지옥으로 널리 알려진 일본의 대입제도를 빗대어 냉엄한 현실을 고발하는 사회 드라마로 유명세를 떨쳤다.
원작을 가진 2차 저작물의 딜레마라면 끊임없이 원작과 비교를 당해야 한다는 점. 이는 '공부의 신'도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다. 한국적 현실을 효과적으로 반영함과 동시에 주제의식을 놓치지 않는 명민한 전략이 주요 관전 포인트다.
중반에 접어든 '공부의 신'이 주춤한 이유는 한국적 상황조차 제대로 담아내지 못할 뿐 아니라 주제의식까지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드래곤 사쿠라'의 변호사(아베 히로시)는 학생들에게 "지배받지 말고 지배해라. 그러려면 동경대행 플래티넘 티켓를 거머쥐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한다. 이는 꼴통과 꼴지들의 반란을 통해 사회제도의 모순과 현실적 해결책을 그려내려 한 작가의 전략을 대변한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폭주족 변호사'가 경험했던 가장 효과적인 공부방법을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수순을 택한다.
그러나 '공부의 신'에서 모방한 것은 그 설정 자체에 그치고 있다. 등장인물이나 그들이 처한 상황은 원작을 빼다 박았지만 이를 야기한 현실은 철저히 배제한 채로 극이 진행된다. 학벌중심 사회의 처절한 현실은 오간데 없다. 단순하게 효과적인 공부법만을 익혀 문제학생이 순식간에 중간고사에서 올백을 받는 대반전을 쾌감의 주요 원인으로 변질 시킨 것.
이런 구도라면 '수능이 채 1년도 남지 않은 고3 문제아들이 단 1년간의 노력으로 최고의 명문대인 천하대에 갔다'는 '인생 대박스토리'로 흘러갈 공산이 없지 않다. 게다가 드라마는 엉뚱하게도 '어리버리한 공립학교 교사 vs 비싸지만 효과적인 사교육'이라는 구도만 시청자들 머리 속에 각인시키는 역효과까지 낳았다.
▶ 결국 천하대 합격이 감동의 이유?
이 뿐만이 아니다.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꼴지에 가깝던 문제 학생들이 만점 학생으로 신분이 뒤바뀌는 설정은 드라마이기에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합숙훈련을 통해 이뤄지는 밑도 끝도 없는 연애행각의 엉뚱함은 참아내기가 힘들다. 어느덧 중반에 이른 드라마는 '사회 고발 드라마'의 본질을 잊고 '사교육 청춘 연애물'로 급전직하했다.
겨울 방학을 맞이해 중고등학생 자녀들까지 TV앞으로 불러 세운 학부모들을 머쓱하게 만든 대목이자, 치열했던 입시지옥을 떠올리며 통렬한 사회비판을 기대했던 20~30대 시청자들까지 불편하게 만든 변질이다.
현대 TV극은 단순한 이야기 서술을 넘어서 현실의 대리 체험으로 진화하고 있다. 남녀간 연애란 극의 흐름을 지속해 가기 위한 필수 설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객이 전도된 순간 드라마는 본연의 임무를 잃고 통속극으로 퇴화해 버린다.
이 같은 드라마의 변질을 불러온 주된 요인으로는 극의 흐름을 이끌어 가야할 변호사 김수로의 어색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원작에서 '아베 히로시'는 철저하게 리걸 마인드로 무장한 진짜 변호사를 연기해냈다. 변호사의 역할이란 사회의 룰이 의뢰인에게 가장 유리하게 적용되도록 돕는 '현대판 칼잡이'에 가깝다. 문제학생들이 벌인 사고를 법률적으로 수습을 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지만 아이들에게 현실의 무서움을 전해 주는 데도 인색하지 않다.
그러나 김수로는 어느 순간 그 치열함을 잃고 전작인 영화 'ET선생'에서 보여줬던 멍청하지만 따스한 가슴을 지닌 '체육선생 출신의 영어 선생'에 주저앉아버렸다. 냉철한 '리걸 마인드'는 쏙 빼 놓은 채 검은 양복을 입은 '꽤 재미난' 변호사로 자리매김한 것. 만일 그와 한수정(배두나 분) 혹은 이사장 장마리(오윤아)의 러브라인 까지 본격화한다면 '공부의 신'은 그 길을 확실하게 잃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유사 이래 모든 청춘의 고민은 '사랑'과 '인생의 목표'를 세우는 일이었다. 두 가지를 모두 이룬다면 최선일 테고, 하나라도 제대로 이룬다고 해도 성공한 청춘이다."
어느 대학 교수는 방황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위로한 적이 있다. '공부의 신'에 등장하는 학생들이 단 1년 만에 사랑과 학벌을 모두 성취한다면, '공부의 신'은 차라리 방황하는 청춘들의 인간 승리를 다룬 '인생극장'으로 부르는 편이 낫겠다.
# 결정적 장면
'공부의 신' 9화(2월1일 방영분). 드디어 학원드라마의 필수 요소인 '키스신'이 등장했다? 벚꽃이 떨어지는 공원에 나란히 앉은 백현(유승호)과 풀잎(고아성)은 서로를 걱정하며 얘기를 나눈다. 백현은 중간고사에서 실수로 원하는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실망해 있다. 이에 풀잎이 위로의 말을 건넨다. "괜찮아? 많이 속상했지?" "걱정했냐? 왜 나를 걱정했냐?"고 되묻는 백현에게 풀잎은 "당연히 걱정했지, 친구니까"라고 답한다. 이때 벚꽃이 떨어지고, 이를 털어주기 위해 접근한 백현. 그의 접근을 거부하지 않는 풀잎. 그리고 미묘한 분위기 속에 이를 멀리서 지켜보는 나현정(티아라 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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