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작가 릴레이 인터뷰]<16>‘마음의 소리’ 조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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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0일 16시 15분


네이버에 웹툰 '마음의 소리'를 연재하고 있는 조석 작가.
네이버에 웹툰 '마음의 소리'를 연재하고 있는 조석 작가.

"어머니 아버지, 저 꼭 만화학과에 진학해야겠어요."

어린 시절 부모님께 맞았을 때 이후로 처음 부모님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2002년 전주대 영상만화학과에 합격했다.

'그렇게 배우고 싶다는데…' KO패 당한 부모님은 모르셨을 것이다. 만화를 배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지 만화 그리는 친구들과 같이 학교에 다니고 싶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만화 지망생들과의 대학 생활은 즐거웠을까? 아니다. 만화가가 되려면 공모전을 준비해야지 왜 학교에서 시간낭비 하느냐는 생각에 학교도 나가지 않았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웹툰 '마음의 소리'를 연재하고 있는 만화가 조석(27)의 이야기다. 그와의 인터뷰 2시간은 그의 만화에 달린 댓글이 지적했듯 '식스센스를 능가하는 반전'의 연속이었다.

● "가진 재주가 이것뿐이라…"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만화를 곧잘 그리는 아이로 통했다. 친구들도 '네가 커서 만화가 되면 내가 꼭 책 사볼게'라고 했다. 그러나 조석은 콧방귀만 뀌었다.

'만화 그려서 어떻게 먹고 살라고! 만화가는 안 될 거야.'

고3 여름방학 지나고 처음 미술학원을 찾았을 정도로 만화가는 나와 먼 동네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06년 여름. 2005년 4월 군 제대 후 '내 힘으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1년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듬해 복학해서 학교를 다녔지만 만화 출판시장도 좋지 않고 웹툰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그의 머리 속엔 '나는 만화가 못 되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래도 "가진 재주가 이것뿐이라" 만화는 계속 그렸다. 이를 보던 형 조준 씨(30·회사원)가 블로그에 만화를 올려보라고 조언했다.

"그 때 블로그를 만들고 만화를 올렸어요. 재미있다는 반응이 있으니 밤새서 아르바이트하고 아침에 들어와도 만화를 그리고 잤죠."

그렇게 한 달쯤 그리고 있으니 네이버 웹툰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담당자가 제시한 원고료는 만화가 지망생이 듣기에도 형편없이 낮은 수준.

그래도 연재는 시작했다. "네이버에서 떠서 다음에서 연재해야지"라는 속셈이었다.

당시 네이버는 웹툰 서비스 초창기였고 다음에서는 강풀 같은 유명작가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조석과 그의 형 조준. \'마음의 소리\' 329화 나 때문이야의 한 장면.
조석과 그의 형 조준. \'마음의 소리\' 329화 나 때문이야의 한 장면.
● 만화 속 각진 조석, 실제로 만나면 훈남

연재를 시작하며 그는 블로그에 1회 2회 횟수만 붙이던 만화에 '마음의 소리'라는 제목을 달았다.

"만화 콘티를 짤 때 속으로 하는 말들이 많았어요. 그 부분을 화살표로 표시하고 '마음의 소리'라고 적곤 했죠. 거기에서 나온 말이에요. 유명해진 후에 누가 '지금 그리는 만화가 뭐에요?' 물어본다면 '왁자지껄 #$%^'라는 것보다 마음의 소리라고 답하는게 창피하지 않을 것 같기도 했고요."

'마음의 소리'의 주요 소재는 조 작가가 군대 생활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들.

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다보니 가족과 그가 기르는 강아지 '센세이션', 고양이 '정남이'도 주요 등장인물이다. 조석, 조준 등 실명을 쓸 때도 있다. 때문에 조 작가가 만화 속 조석처럼 광대뼈가 산처럼 튀어나오고 턱은 네모반듯할 것이라고 추측하는 독자들이 많다.

궁금증을 풀 수 없는 독자들. 네이버 지식인에 물어보기도 한다. 조 작가가 일일이 답해 줄 수는 없을 터. 조 작가는 인터뷰에서 지식인에 올라온 FAQ에 이렇게 답했다.

Q1. 조석 작가는 정말 만화처럼 각지게 생겼나요?

"만화 속 조석은 제 얼굴 보고 그렸어요. 초반에는 지금처럼 각지진 않았죠. 어느 순간 캐릭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과장되게 그린 것이에요. 제 이름을 만화에서 그대로 쓰다보니 독자들은 캐릭터를 보고 저를 상상하겠죠. 그래서인지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인사차 하는 말이 '실제로는 안 그런데 왜 그렇게 각지게 그리셨어요?'에요. 전 그 말이 듣기 좋더라고요. 앞으로도 실수로라도 주인공을 예쁘게 그릴 생각은 없어요."

기자가 직접 본 조석은 턱만 살짝 각졌을 뿐 뽀얀 피부에 귀염성 있는 외모의 '훈남'이었다. 180cm를 넘는 훤칠한 키에 스키니 진도 소화할 만큼 기럭지도 훌륭했다.

Q2. 조석님 형은 어떻게 생겼나요? 직업은요? 진짜 만화처럼 속옷만 입고 일하시나요?

"형은 게임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외모는 만화처럼 하얗고 동글동글하니 삶은 달걀 느낌이 나고요. 항상 웃고 있는 것도 닮았어요. 구부정한 자세로 느릿느릿하지만 망설임 없이 다가가 해코지하는 것도 비슷하고요."

그렇다고 팬티에 러닝셔츠 차림으로 출근하진 않는다. '위에는 상의, 아래는 하의'를 입고 다닌다고.

Q3. 아버지 어머니도 실제와 닮았나요?

"부모님은 상대적으로 늦게 만화에 출연하셨어요. 아버지 어머니는 욕되게 할 순 없다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점잖고 근엄한 분위기의 캐릭터가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하면 더 재밌잖아요. 배경이 집이면 어쩔 수 없이 아버지 어머니가 나오게 되는 거죠. 그렇게 자주 나오다보니 아버지 어머니로 틀이 잡힌 것뿐이에요."

그의 가족은 만화에 등장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가족 모두 일이라고 생각하세요"라는 것이 조석의 답.

Q4. 애봉이가 작가님 여자친구라던데 사실인가요?

"애봉이의 모델은 4년 가까이 교제한 여자친구가 맞아요. 처음에는 여자친구를 만화에 그리지 않으려고 했어요. 여자친구라고 그려놨는데 혹시 헤어지게 되면 그 후 대처법이 깜깜했거든요. 물론 여자친구는 매번 얼굴을 그려달라고 졸랐죠. 그 때마다 '외주는 돈을 줄 때만 해준다'는 핑계로 번번이 거절했어요. 그러다 한번은 약 올리려고 '너는 눈도 크고 코도 오똑하고 눈썹도 진하고 항상 웃는 얼굴이지'라며 말로 하면 완벽한 얼굴을 그렸어요. 그랬더니 바보 같지만 너무 멋진, 연구를 해도 나올 수 없는 마음에 드는 캐릭터가 나온 거예요. 그래서 만화에 쓰게 됐어요."

애봉이 이름은 여자친구 애칭에서 따왔다. 여자친구 이름은 최나래. 친구들 사이에서는 나래봉이라고 통한다. 본인이 이를 줄여 '애봉'이라고 부른다. '한자는 '사랑 애' '봉우리 봉'이야'라고 강조하면서.

여자친구 약올리려고 그렸던 애봉이. '마음의 소리' 290화 얼굴 좀 그려줘 중 한 장면.
여자친구 약올리려고 그렸던 애봉이. '마음의 소리' 290화 얼굴 좀 그려줘 중 한 장면.
● 조석은 한 달에 1000만원 버는 고소득 만화가?

'마음의 소리'가 누적 조회수 8억을 훌쩍 넘긴 인기 만화이다 보니 그의 고료는 만화가들 사이에서도 관심의 대상이다.

구체적인 금액은 밝힐 수 없으나 처음으로 계약했을 때와 비교하면 고료는 25배 정도 올랐다. 그러나 '조석 고료는 한 달에 1000만원'이라는 소문은 말도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실제 그는 인천시 부평구에서 월세로 살고 있다.

"만화가들도 제 고료를 궁금해 하세요. '한 달에 1000만원 받는다며?'라고 묻는 분들도 계세요. 그러면 '같이 만화 그리는 분이니 단일 타이틀로 고료 1000만원을 받으려면 어느 정도 위치가 되어야하는지 아시잖아요' 라고 반문하죠. 제가 고료를 밝히지 않으니 1000만원이라는 소문이 1500만원으로 늘었더라고요. 해적들 현상금 오르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뿌듯하기까지 했다니까요. 하하하."

그래도 "만화를 그려서 이렇게 큰 돈을 벌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이 받는 것은 사실"이라고. 그러나 1000만원은 꿈도 꾸지 않는다. 만화가 드라마나 영화화되면 한 달에 1000만원을 벌 수 있을 것 같단다. 하지만 개그물이라는 특성상 판권이 팔릴 리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 그래서 이렇게 선수친다.

"내 만화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찍지 않으면 안 팔 거야. 주인공은 톰 크루즈 정도?"

반면 그의 친척들은 그가 '큰 돈'을 벌고 있는 만화가라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그동안 친척들 만나면 '너 학교는 언제 복학하니'라고 물으셨어요. 조카들이 제 만화를 보고 유명하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친척 어른들은 최근에서야 제가 고료 받으며 정식으로 만화를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셨죠."

그러나 차라리 모르실 때가 좋았다. 이제는 리무진을 타고 다닌다고 오해하신다고.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사회인. 고료 중 일부는 부모님께 드린다.

"단행본 나온 이후부터 용돈을 드리기 시작했어요. 부모님께 드리는 돈은 아까워하지 않으려고요. 김치냉장고를 사드린 적도 있어요. 그랬는데도 아버지가 어느 날 '네가 용돈을 제대로 보내줘 봤어?' 그러시는 거예요. 아버지 뒤에 제가 사드린 김치냉장고가 보이는데 말 할 수도 없고…. 저는 되도록 많이 보내려고 하는데 부모님은 아직도 배고프신 것 같아요."

그는 "부모 자식간의 돈 문제는 깨끗해야 한다"고 진지하게 반복했다.

● 못하면서 열심히 하는 사람 골치 아프다? 요즘 내 모습

400화를 눈앞에 둔 '마음의 소리'. 독자들에겐 매번 웃음을 줬지만 2009년 조 작가의 마음에선 아픈 소리만 났다.

"지난해 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10kg이 줄었어요. 친한 형들이 네 안에 팔뚝만한 기생충이 들어있다고 놀릴 정도였죠."

원인은 스트레스.

"저는 분명히 쉽게 시작했어요. 제가 그리고 싶어서 그린 만화를 독자들이 좋아했죠. 그런데 나는 내가 그리고 싶은 걸 계속 그리고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에서 점점 별로라고, 재미가 없다고 하더군요. 속으로는 스트레스 받았죠. 티내기 싫어서 겉으로는 오래 그렸나보네, 지금까지 잘 그렸지 뭐. 그만 그려야 겠다 라고 말하곤 했어요."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한 결과인데 그런 말들이 나오니 더 싫었다. 만화로 받은 스트레스는 만화로 푸는 성격. 이번 화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다음 화를 더 재밌게 그려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했다. 이 스트레스 해소법은 더 재밌는 만화가 나오지 않는 한 악순환만 가져올 뿐이었다. 담당자가 연재를 잠시 중단하고 쉬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러나 쉬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쉬었다 돌아오면 그만큼 더 잘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3~4달을 보냈다.

"처음 겪는 어려움이었어요. 그래도 그만둘 수는 없었어요. 그만 두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 같은 기분이었거든요."

결국 답은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그동안의 열심은 내 눈에만 보이는 열심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콘티가 쉽게 나오는 날이 있거든요. 그러면 콘티도 나왔으니 얼른 그리고 놀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랬는데 이젠 이 정도가 딱 좋지만 조금 더 생각해봐야지라면서 끝까지 생각해요. 예전 같으면 10컷에 끝낼 만화를 요즘엔 20컷으로 그리기도 하고 예전에는 3~4회로 나눴던 소재를 한 회에 풍성하게 담아내기도 하고요."

물론 열심히 한다고 독자들이 더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 이상 남들이 뭐라고 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반응이 좋으면 다행이지만 반응까지는 내가 바랄 수는 없는 법.

"원래 저는 편하게 잘하는 사람이 최고라고 생각했어요. 못하면서 열심히 하면 골치만 아프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 사람을 제일 싫어했죠. 그런데 요즘 제가 그래요. 못하더라도 열심히 하면 우선 저는 뿌듯하더라고요."

'마음의 소리'가 인기를 얻으며 팬사인회에도 불려다니는 조석 작가. 사인을 해달라고 하자 '성함이?'라고 수줍게 묻는 목소리가 '겸손한 슈퍼스타'다웠다.
'마음의 소리'가 인기를 얻으며 팬사인회에도 불려다니는 조석 작가. 사인을 해달라고 하자 '성함이?'라고 수줍게 묻는 목소리가 '겸손한 슈퍼스타'다웠다.
슬럼프를 벗어난 것은 독자들 눈에도 보이나보다.

"댓글을 보면 '조석 작가 요즘 열심히 그리네',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구나' 하고 초등학생들에게 칭찬 들어요. 하하하."

슬럼프를 극복한 뒤부터 그린 작품은 대부분 만족한다는 조석 작가. 올 한해는 '마음의 소리'를 연재할 생각이다. 그러나 내년은 기약하지 않았다.

"내년 이맘때쯤 되면 제 스스로가 바뀔 것 같아요. 개그물을 장기간 연재하다보니 최근에는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 개그를 할 수도 있겠다 싶을 때가 있거든요. 지금은 재밌게 그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있지만 내년은 모르는 거죠. 담당자 형도 '마음의 소리'는 이대로라면 10년을 연재해도 되겠는데?' 하다가도 다음날 '조금 쉬고 돌아오는 게 어때'라고 말을 바꾸기도 해요. 정말 모르는 거죠. 하하하."

걱정은 없다. "처음부터 '마음의 소리'가 아닌 만화를 그리려고 했던 것"이니까.

차기작에서는 폼 좀 잡아보려고 한다.

"그런 만화 있잖아요. 멋있는 형사가 멋진 총으로 멋있는 범인을 잡으러 돌아다니는 거예요. 그러다 밥 먹을 때도 폼 잡고… '간지물'이라고 하죠. 중고등학교때 그리고 싶었던 만화는 꼭 그려보려고요. '간지물' 그리려면 우선 그림이 문제예요. 제 그림이 이렇지 않았는데 '마음의 소리'를 그리다보니 그림이 늘지 않아요. 연습을 해야겠어요."

● 에필로그

'마음의 소리'는 유행어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내 여자에게만은 따뜻한 남자'가 대표적. 이 구절은 문맥에 상관없이 말끝에 붙어 재미를 더했다. '나는 고기를 좋아해서 길바닥에서도 삼겹살을 구워먹을 수 있지만 내 여자에게만은 따뜻한 남자'라는 식이다.

여자친구와 4년 가까이 사귀었다는 실제 조석 작가는? 따뜻한 남자는 아니란다. 그러나 정든 사람에게는 함부로 못하는 성격. "여자친구가 화내면 제가 그 사람 집까지 삼보일배로 가서 화해를 구하는 게 편해요." 삼보일배할 때 그의 마음에서는 어떤 소리가 날까.

김아연 기자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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