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레이디는 진에 그레나딘 시럽을 첨가한 달콤한 칵테일이다. 칵테일만큼 달달한 순정 만화 '핑크레이디'로 스타덤에 오른 연우(28·본명 우영욱) 작가.
미대생 한겨울(여자)과 윤현석 커플의 사랑과 좌절을 그린 '핑크레이디'는 포털 사이트 네이버 연재 당시 회당 조회 수 100만, 누적조회 수 1억 건 이상을 올렸다. 6권 분량 단행본으로도 출간됐고, 올해 KBS를 통해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실제로 본 연우 작가는 그의 만화 주인공 현석이와 많이 닮았다. 그는 지난해 7월 '한국 만화 100년 전(展)' 기념 릴레이 사인회에 참가한 뒤 훤칠한 키와 수려한 이목구비로 '웹툰 계의 F4'라는 별명을 얻었다.
연우 작가는 이에 대해 "말도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인터뷰 도중 촬영한 사진을 보정해 달라고 하거나, 사진을 새로 찍어서 보내겠다고 하는 등 인터뷰 사진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 울고 웃던 연애 경험 녹여
연우 작가는 홍익대학교 회화학과 출신이다. 그래서 웹툰을 그리기 시작할 때도 미대생 커플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구상하게 됐다. 미대생 얘기를 다룰 경우 다른 작가보다는 더 잘 그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딱딱하지 않게 그림 이야기를 하려고 '순정' 장르를 선택했다. 작품 전반에 핑크색을 자주 배치해 사랑스러운 느낌을 줬다.
하지만 예비역 남성 작가로서 순정만화에 도전하기란 쉽지 않은 일. 그는 '직접 겪어봐야 그릴 수 있다'는 평소 신조에 따라 스스로 남자 주인공이 되기로 했다.
"원래 제가 그런 사람은 아닌데, ‘핑크레이디’를 연재하면서 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삶을 살려고 노력했어요. 현석이가 칵테일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보니 저도 칵테일 재료를 사서 만들어 보고, 현석이가 입는 옷을 사서 입어보고, 온종일 현석이처럼 살았죠."
주인공을 따라 하다 보니 칵테일 제조 실력도 수준급이 됐다. 가장 많이 만들어 본 칵테일은 핑크 레이디지만 제일 자신 있는 건 블랙 러시안이다.
'핑크레이디'의 소재가 된 자신의 연애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더니 "손발이 오그라들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여자친구는 그에겐 가장 든든한 우군이자 조언자다. 그러다 보니 너무 솔직하게 만화를 평가해 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처음에 겨울이를 그려서 보여줬더니 ‘눈 너무 크고 피부색 칙칙하고 머리카락도 터치가 거칠다’고 지적해서 고쳤죠. 그랬더니 외계인 같아!'라고 다시 뭐라는 거예요. 제가 속 좁게 ‘다 때려치우고 말겠다’며 화를 냈어요."
● 클림트의 '키스' 배경으로 한 겨울이와 한석이 뽀뽀 장면
홍대 졸업 후 미술학원 강사로 일하던 연우 작가는 웹툰 작가를 준비하던 한 학생을 만나면서 진로를 바꿨다. 회화를 하는 데 돈이 많이 든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
"몇 십 년 그림을 붙잡고 있어야 빛을 발할 것 같은데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던 제게는 그런 기회가 차단돼 있다고 느꼈어요. 튜브 하나에 몇 십 만원 하는 물감과 몇 천 원 하는 물감은 색감이 전혀 다르거든요. 게다가 대학 다닐 때도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그림 연습할 시간도 부족했어요. 항상 선배들이 '너는 왜 열심히 안 그리느냐'라고 타박하는데 그게 서럽더군요. 화가는 못할 것 같고 졸업하고 뭘 할까 고민 많이 했어요. 그러다 웹툰을 알게 됐어요."
컴퓨터 작업이 바탕이 된 웹툰은 그에게 신세계였다. 물감이 없어서 안 나왔던 색깔이 컴퓨터에서는 너무 자연스럽게 잘 나왔다. 그림 사이즈도 내 맘대로 할 수 있었다. 영상 같은 느낌을 주는 스크롤 연출도 기막히게 좋았다.
결국 그는 2007년 네이버의 웹툰 신인작가 등용문 '도전! 만화가' 코너에서 단 4회의 원고만으로 데뷔에 성공했다. 남들은 '최단 기간 데뷔'라며 대단하다고 하지만 정작 연우 작가는 "기다리던 2달이 지옥 같았다"고 고개를 저었다.
"1~3회를 그릴 때만 해도 데뷔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어요. 강사 일을 관두고 시작한 거라서 강박감이 컸어요. 1회 올리고 메일함을 확인해요. 다음날 또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하루에 60번씩 메일 함을 열어보는 거에요. 심할 때는 새벽 2~3시에 자다 일어나서 컴퓨터를 켰어요."
미대 출신답게 그의 작품 곳곳에는 피카소, 뭉크 등 유명 화가의 작품 패러디가 등장해 웃음을 준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겨울이가 설레는 마음으로 치장하는 장면에서 쓰이기도 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겨울이가 아르바이트 소개를 받는 모습은 '천지창조'로 패러디된다.
클림트의 명화 '키스'를 배경으로 어린 겨울이와 한석이가 놀이터에서 뽀뽀하는 장면은 그가 가장 아끼는 컷이다. 그는 자신의 만화로 많은 사람들이 미술에 흥미를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연우 작가는 여세를 몰아 최근에는 '핑크 레이디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두 번째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주인공들이 미술사 책으로 들어가 대가를 직접 만나는 판타지 만화다. 재밌는 점은 고흐나 얀 반 에이크 같은 대가들은 하나같이 '찌질' 댄다는 것.
"예술가들은 창작의 고통을 겪기 때문에 성격이 그래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이나 유럽인들에 비해 미술사에 대한 관심이 적어요. 에곤 쉴레 같은 작가도 모르는 사람이 많고. 구석기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훑는 방식은 재미없으니까 제가 좋아하는 고흐부터 드가 순으로 재밌는 부분 위주로 미술사 책 여기저기를 왔다갔다 하고 있어요."
● 다음 작품은 '돈' 이야기
연우 작가의 차기작은 돈을 주제로 한 만화다. 작가 모임에서 다른 작가들과 후속작 소재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누군가가 "그럼 돈 얘기는 어떨까"라고 한 것. 순간 작가들의 눈이 번쩍했다고 한다. 금방 부동산과 주식 이야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자본주의 사회인데 돈이 터부시 되는 게 안타까웠어요. 돈에 대해 관심은 많은데 애써 부정하고 싶어 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고 할까? '나는 돈이 정말 좋아'라고 대 놓고 말하지 못하잖아요."
하지만 전혀 다른 장르이다 보니 준비가 쉽지 않았다. 투자 전문가 주식 애널리스트를 만나러 다녔지만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역시 경험보다 더 좋은 스승은 없다는 생각에 주식 삼매경에 들어갔다. 적게 투자해선 스토리가 안 될 것 같아서 소위 '몰 빵(집중 투자)'을 해보기도 했다. 주식에 투자하면서 그 심리를 만화에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상한가를 쳐본 적 있어요. 공돈이 생기니 날아갈 것처럼 기뻤습니다. 하한가에 갔을 때는 몸 일부가 뜯겨나가는 고통을 느꼈어요. 주식하다 한강 간다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요. 옵션 선물 같은 건 더하겠죠. 하루에 몇 십 배 씩 잃고 몇 배 씩 따니까요. 도박 이상의 전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끝으로 그는 독자들에게 "처음 연재할 때는 죽겠다는 소릴 너무 많이 했는데, 지금은 여러분 덕분에 재밌게 잘 살고 있다"며 "사랑에 보답할 수 있도록 좋은 작품 가지고 가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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