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나보다 우월한 사람이 존재한다. 그는 최고 명문대에 다니고 잘생겼으며 부모님께 효도한다. 그런 그에게 취업난은 장난일 뿐이다. 이런 엄청난 힘을 발산하는 그의 정체는… 엄마 친구 아들!'
엄마 친구 아들, 줄여서 '엄친아'는 엄마가 자녀에게 잔소리할 때 나오는 비교 대상이다. 이제는 언론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신조어가 됐지만 '엄친아'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이 누군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바로 웹툰 작가 박종원 씨(28)다.
2005년 대학 복학생이던 박 작가는 네이버에 웹툰 '골방환상곡'(글 박종원, 그림 심윤수)을 연재하면서 재미삼아 '엄친아'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엄친아'는 모든 면에서 남들보다 우월한 존재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심지어 당시 박 작가가 다니던 영어 학원 강사까지도 박 작가에게 "내가 진짜 웃긴 얘기 해줄게요. 세상에서 나보다 우월한 사람이 있는데…"라며 '엄친아' 얘기를 꺼낼 정도였다.
'골방환상곡'은 매회 100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그도 스타 작가 반열에 올랐다. 이 만화로 2006년 대한민국 만화애니메이션 캐릭터 대상에서 만화부문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승승장구하다가 2008년 12월부터는 연재를 쉬고 있다.
● 늑대 '워니'는 원래 '엄친아'다?
박 작가는 그의 만화 속 주인공인 회색 늑대 '워니'를 빼 닮았다. 그는 "늑대는 원래 좋은 동물인데 음흉하다는 오해를 산다"고 해명했다.
큰 웃음을 선사하는 그의 만화처럼 즐거운 인터뷰를 기대했지만, 그는 대단히 시사적이고 진지한 사람이었다. 아니 너무나 진지한 나머지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는 스타일이었다.
예를 들면 '만화에서처럼 군대에서 치약으로 별걸 다 하나요?'라는 질문에는 "군대가 참 문제가 많은 곳이죠"라며 행정병 시절 느낀 갖가지 불합리한 군대 문제를 꺼내 놓는다. 대부분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요구하는 통에 기사로 쓸 건 별로 없었다.
하긴 그의 만화 '골방환상곡'도 △야근에 익숙해지기 위해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중고생 △취업을 위해 영어에 목숨을 거는 대학생 △뇌물 비리 정치인 등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는 등 '재미'보다는 '메시지'를 추구하는 편이다.
"커피에 시럽을 너무 많이 넣으면 맛이 없잖아요? 마신 후에 더 괜찮은 맛이 나는 그런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세상사에 한이 서려서 그런가?"
그도 한때는 '엄친아'였다. 만화 속에선 '엄친아'에게 매번 지는 '루저(Loser)' 늑대 워니로 나오지만.
울산 출신인 그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들어간다는 명문 학성고등학교를 다녔다. 아마도 박 작가의 중학생 시절 그의 어머니의 친구들은 집에서 "엄마 친구 아들 종원이는…"이라며 아들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았을 것이다.
엄친아의 실제 모델을 묻자 "정해진 모델은 없다"고 말했다. 만화가 뜨니까 그의 주변에서 "야, 내가 엄친아 모델이지?"라고 묻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고교 동기 여러 명을 가공해서 하나로 만들었다고.
● '엄친아'였던 그, 인생의 좌절을 맛보다
박 작가의 고교 시절만 해도 그의 학교는 일반 인문계 학교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대학 진학률이 높았다. 하지만 머리만 믿고 공부를 안 하는 그의 성적은 늘 꼴찌를 맴돌았다. 고3 때 반 석차가 46등이었다.
내신은 형편없지만 수능은 자신 있었다. 평소 모의고사에서 전국 상위 1~3%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마저 '망'했다. 여기서 '망'했다는 건 그의 기준에서 말한 것이다. 재수는 하기 싫었고, 어찌어찌해서 운 좋게 세종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들어갔다.
대학 생활은 재밌었다. 대학 연합 광고 동아리 활동을 하며 시험에 크게 신경을 안 쓰고 자유롭게 서울 생활을 즐겼다.
물론 성적은 좋지 않았다. "대학의 문제점은 아직도 책을 외워서 적으라는 시험이 반복되고 있는 겁니다. 그게 가치가 있나요?" 그는 뜬금없이 한국 대학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일장 연설을 했다. 결론은 학교 다니면서 공부를 안 했다는 얘기였다.
처음으로 사회의 벽을 느낀 건 군 복무 때였다. 그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대전에서 육군으로 복무했다.
"행정병을 뽑는데 컴퓨터 자격증이 있는 병사보다 컴퓨터를 아예 못하는 저를 뽑았어요. 저만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내가 사회 나가서 당할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서부터 그의 마음속에는 늘 "왜?"라는 물음이 자리 잡았다. 상명하복의 군 생활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을 터. 유쾌하지 않은 군 생활이 이어졌다.
군대에는 '소원 수리'라는 것이 있다. 부대 내에서 벌어진 불합리한 일이나 폭행 등을 신고하라는 것이다. 그대로 썼다가 지휘관들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대개 병사들은 '좋다'고 적어낸다.
그런데 박 작가는 달랐다. 투철한 고발정신으로 보고 들은 걸 적어낸 것. 그때부터 그의 군대 생활은 말 할 수 없이 고달파졌다. "거의 잠을 안 재우고 굴렸다"고.
● 연재 종료 후 1년 간 마음고생 심해
제대한 후 동아리 홈페이지에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만화가 인터넷에 퍼지면서 네이버에서 연락이 왔고 동갑내기 친구인 심윤수 씨와 함께 '골방환상곡'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원래 가고 싶었던 광고업계에서 일감이 들어오고 팬클럽도 생겼다.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골방환상곡'은 2008년 12월 이후 연재가 중단된 채로 있다. 새 작품을 들어갈 만 한데 쉬는 시간이 길다. 대체 왜 다시 연재를 재개하지 않는 걸까.
"저도 하고 싶다고요. 당장 내일이라도 시켜주면 해요." 컴백을 하고 싶지만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다는 포털 측의 지적에 따라 내용을 보완 중이라는 설명이다. 새삼 웹툰 계의 치열함이 느껴진다.
연재가 끊기고 아들의 '미모'가 전국 상위 2% 안에 든다고 말하던 박 작가 어머니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식구들의 걱정이 늘었다. 사랑에도 실패했다. 박 작가도 많이 의기소침해졌다. 체중이 늘고 신경성 위염까지 앓았다.
"2009년은 정말 끔찍했어요. 별 일이 다 터져서 생각하기도 싫어요. 살면서 운 횟수보다 작년에 운 횟수가 더 많아요. 운수 게임에서 '이렇게 안 되기도 힘들 정도로 올해는 안 좋다'고 점괘가 나왔어요. 다행히 올해 초부터 건강보험공단 건강상식 만화, 언론사 닷컴 뉴스 카툰도 하기 시작했어요."
● 차기작은 '세계정복사무소'
차기작은 샐러리맨의 일상을 풍자한 가칭 '세계정복사무소'이다. 늑대 '워니'가 회사원으로 나온다. 샐러리맨의 일상을 풍자한 미국 만화 '딜버트'도 참고했다. 다행히 현재 포털 사이트와 연재 여부를 조율 중인데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릴 전망이라고.
"지난해는 분명 괴로운 시기지만 그 시기가 없었으면 인생의 소중함을 몰랐을 거예요. 잃은 게 많으니까 더 잘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관계에 대한 반성이랄까. 인격적 숙성은 제 직업 특성상 굉장히 중요한 일이예요. 사람을 보는 시각이 더 따뜻하게 변했다면 만화에서도 더 좋은 얘기를 많이 들려드릴 수 있겠죠."
그는 '화이팅'을 상징하는 빨간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그의 표현대로 "5년 후에 봐도 자신의 아이가 봐도 재밌는, '탈무드' 같은 만화"를 그리길 기대해 본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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