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작가 릴레이 인터뷰]<21>‘샴’ 최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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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2일 13시 51분


최종훈 작가는 두번째 웹툰 \'샴\'의 한 장면에 스승인 김수용 작가를 그려넣었다. \'샴\' 11화 지킬앤하이드 캡쳐.
최종훈 작가는 두번째 웹툰 \'샴\'의 한 장면에 스승인 김수용 작가를 그려넣었다. \'샴\' 11화 지킬앤하이드 캡쳐.
"너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니?"
"만화가요."
"그럼 스케치북 사줄게. 그런데 뭐가 되고 싶냐고"

고등학교 2학년, 큰 형이 장래 희망을 물어왔다. 만화가라고 답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바쁘신 부모님 대신 집안의 대소사를 관장하던 큰 형은 10살 어린 막내 동생의 꿈을 꿈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반항하지는 않았다. 그저 공부를 멀리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길 바랐다. 큰 형의 허락 없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20살 성인식을 기다린 막내는 웹툰작가 HUN(본명 최종훈·32)이다.

● 피어싱, 염색 그리고 만화가 문하생 입문

20살이 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빨주노초파남보 온갖 색으로 머리를 염색했고 피어싱도 했다. 그리고 만화가들의 작업실을 찾아 다녔다. 물론 가족과의 상의는 없었다.

문하생이 되려고 만화가 작업실을 찾아 다녔지만 미술학원 근처에도 가 본 적 없고 아마추어 활동조차 한 적이 없는 '초등학생만도 못한 그림 실력'을 가진 최 작가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이유는 같았다. 실력에 비해 나이가 많다는 것.

포기하진 않았다. 그리고 여섯 번째로 찾아간 김수용 만화가가 그를 문하생으로 받아줬다.

"김수용 선생님도 다른 작가님들과 같이 실력에 비해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셨다고 해요. 저를 받아주신 이유요? 아직도 모르겠어요."

문하생이 됐다는 기쁨도 잠시. 고된 연습이 시작됐다.

첫 과제는 선 긋기. 1m 떨어져서 보면 검은 종이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선 하나 하나가 한 차례도 겹치지 않아야 하고 언뜻 보면 자를 대고 그린 것처럼 일직선으로 그어야 했다.

"일주일에 60시간 정도 작업했던 것 같아요. 월요일 아침 출근 금요일 밤 퇴근이었어요. 주말에도 쉬지 않았어요. 작업실에 있는 동안은 주어진 과제를 해야 하니 개인 연습은 주말에만 가능했거든요. 거의 자지 않으며 연습에 매달렸죠. 남들보다 5,6년 늦게 시작했으니 그만큼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악착같았어요."

● 문하생 생활 1년 반 만의 데뷔.

최 작가는 문하생 생활 1년 반 만에 만화잡지 '아이큐점프'에 단편 '킬러'를 실으며 만화가로 데뷔했다.

"1999년 '아이큐점프' 공모전에 '킬러'를 응모했어요. 당시 김수용 선생님께서 같은 잡지에 '힙합'을 연재하고 계셨기 때문에 출판사 직원들과 안면이 있었거든요. 혹시 입선이라도 되면 낙하산 소리 들을까봐 가명으로 우편으로 응모했죠."

가명으로 응모한 '킬러'는 입선작으로 선정됐다. 물론 출판사도, 김수용 작가도 '킬러'의 만화가가 최 작가라는 것은 몰랐다. 그러다 아이큐점프의 원고 하나가 취소돼 '킬러'가 대타로 실리면서 최 작가의 작품이라는 게 밝혀지게 됐다.

초고속 데뷔까지 마친 최 작가는 군대 문제로 김수용 만화가의 작업실에서 나왔다. 군에 입대하면 만화를 계속 그릴 수 없는 상황.

"2년 간 연습했는데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손이 굳거든요. 만화가에게는 치명적이라고 들었어요. 만화를 계속 그리려고 군대 대신 디자인업체에서 병역특례를 하기로 했어요"

디자인업체에서 단편 다섯 작품을 그렸다. 동시에 벽 등에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를 소재로 한 장편 만화를 기획했다.
사진=석동율 기자 seokdy@donga.com
사진=석동율 기자 seokdy@donga.com

● 조회수 3,4만? 놀면서 그려보자

군 제대와 동시에 2004년 아이큐점프에 '그래피티'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독자들은 '가장 재미있는 작품'으로 주저없이 '그래피티'를 꼽았다.

"당시 같은 잡지에 일본 작가 쿠보 타이토의 '블리치'가 연재되고 있었는데 '가장 재미있는 작품'으로 제 만화를 꼽은 독자들이 더 많았어요. 2000년 이전에는 만화 잡지에서 인기 순위 1등을 하면 어느 정도 성공이 따라오는 것은 당연시됐거든요. 그래서 전 제 인생이 바뀔지 알았어요. 하하하"

하지만 인생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피티'를 끝내고 1년여 간 준비한 차기작 연재를 앞둔 어느날 잡지사에서 연락이 왔다. 연재를 고사하던 유명 작가와 계약이 되며 최 작가의 작품이 밀렸다는 것.

"연재 취소라는 충격에 멍하니 시간을 보냈어요. 만화도 그리지 않고 싸이월드 스킨 디자인등 아르바이트만 하면서 지냈죠."

그러다 같이 작업하던 친구가 웹에 만화를 올리는 것을 보게 됐다. 조회수는 3,4만.

"친구가 웹에 연재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 시간에 제대로 된 만화 한 컷을 더 그리지 싶었죠. 그런데 우연히 조회수를 보게 된 거에요. 그 만화가 인기가 많지 않은 편이었는데도 3,4만 정도가 나오더라고요. 충격을 받았죠. 과연 '그래피티'는 3,4만명이 봤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만화 잡지 인기 순위는 독자들이 보낸 엽서 수백장으로 결정되던 상황. '그래피티'를 1위로 뽑아준 수백명 독자와 3,4만 독자는 비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차피 놀고 있으니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놀면서' 그려보자' 마음먹었다.

● 잔 선 하나 대신 그림 한 컷 추가하기.

5회쯤 올리자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연락이 왔다. 정식 연재를 해보자는 것. 그렇게 2006년 '데자뷰'를 연재하며 웹툰 세계에 입문했다.

"당시에는 출판만화 작가와 웹툰작가가 별개라고 여겨졌어요. 출판물을 연재하다 웹툰을 그린 경우는 거의 없었죠. '데자뷰'를 연재하면서도 제가 웹툰을 계속 그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출판작가로는 이름을 알렸지만 웹툰은 낯설었다. 작업 방식도 독자들이 기대하는 것도 달랐다. 고료도 신인작가들이 받는 수준이었다.

"출판물은 어시스턴트가 있었지만 웹툰은 보통 혼자 작업해요. 출판물은 수작업이 기본인 반면 웹툰은 컴퓨터에 많이 의존하고요. 출판물은 단행본 판매부수로 평가받는데 웹툰은 한회당 조횟수로 평가되죠."

웹툰을 연재하며 최 작가의 고민은 그림의 질을 어디까지 낮추느냐는 것이었다.

"웹툰 독자들은 질보다 양을 중시해요. 컷에 잔 선 하나 더 그려진 것보다 그림 한 컷을 추가하는 것을 좋아하죠. 고민하다 컷 당 컬러 작업은 10분은 넘기지 말자는 기준을 세웠어요. 그림의 질을 낮추는 대신 컷 수를 늘렸죠. 두 번째 웹툰인 '샴'을 연재할 때는 한 회 그림 작업을 20시간으로 제한했고요"

● 출판물 연재? 너무 멀리 온 것 같아요.

'출판작가 출신'이어서 에피소드가 생기기도 했다. 2008년 연재하던 '항해'를 갑자기 끝내자 독자들이 연재를 중단한 이유를 물어왔다. 새로운 작품을 시작해도 '항해'를 끝낸 이유를 묻는 독자들은 따라다녔다. 그래서 댓글에 '인기가 없어서 중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잡지는 한 회 연재하고 그만두게 되는 경우들이 있거든요. 인기가 없으면 중단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져요. 독자들이 계속 문의하길래 인기가 없었다고 댓글을 달면 수긍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마음 반, 댓글놀이 하려는 장난 반으로 남긴 것이에요."

예상 밖으로 댓글의 파급효과가 컸다. 독자들은 '인기가 없었다니 말이 안 된다', '진짜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했고 최 작가는 당황했다.

"이런 반응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웹툰 독자들은 의견을 나눌 공간이 있다보니 반응이 큰 것 같아요. 이 일 후로는 댓글 자체를 남기지 않는 편이에요."

김아연 기자 aykim@donga.com

출판물로 데뷔해 웹툰을 더 많이 그린 최 작가. 그는 출판물로 돌아갈까?

"너무 멀리 온 것 같아요. 제 성향이 웹에 더 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출판물은 만화가 잘 안되면 작가와 출판사가 같이 손해를 봐요. 그래서 담당자의 간섭이 심하고요. 반면 웹툰은 망해도 작가 혼자, 흥해도 작가 혼자에요. 그래서 부담감이 덜 하고 즐거워요. 앞으로 제 목표는 웹에서 오래 살아남는 것이에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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