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오륜동 올림픽공원 옆에 자리 잡은 한국체육대학. 대설이 내린 10일 캠퍼스에 들어서니 아름다운 설경을 배경으로 학교 정문부터 죽 걸려 있는 현수막이 눈길을 끈다.
'세계가 놀랐다! 1만m의 기적!', '대한민국 빙속 사상 첫 금메달', '대한민국 여자빙속 사상 첫 금메달'….
아, 여기가 바로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이승훈 모태범 이상화가 다니고 있는 그 학교로구나….
이번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 40명 중 한국체대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선수만 12명.
이들 중 이승훈 모태범 이상화 등 4학년 동기생 3명이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를 따내는 쾌거를 이뤘으니, '한국체대가 도대체 어떤 학교냐'는 궁금증과 함께 세간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김종욱(53) 한국체대 총장. 지난해 3월 제 5대 한국체대 총장에 취임한 그는 "이런 훌륭한 성과를 거둔 우리 학생들이 너무 자랑스럽다"며 "국내는 물론 일본 문부성 파견단이 찾아오기로 하는 등 최근 국내외에서 우리 학교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인사 온 선수들에게 이번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다음 올림픽에서도 2연속 메달을 딸 수 있도록 노력하고 더 나아가 국제올림픽위원회 등 국제무대에서도 활약하는 체육인이 돼 줄 것을 당부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올림픽 등 큰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국가대표들은 주로 태릉선수촌에서 생활하는 데 과연 한국체대 재학생들은 대학 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김 총장은 "보통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이 인터뷰에서 '식사하고 자는 시간만 빼고 열심히 운동했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우리 학교 학생들은 절대 이런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태릉선수촌에 있는 국가대표라고 하더라도 우리 학교 학생들은 오전 9시부터 낮 12시50분까지의 수업은 반드시 참가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때문에 이번에 금메달을 딴 이승훈 모태범 이상화도 매일 아침 태릉선수촌에서 대한체육회가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오전 8시 경 학교에 와서 공부를 한 뒤 다시 선수촌으로 들어가 훈련하는 생활을 했다"고 밝혔다.
혹 전지훈련이나 대회 출전 등으로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리포트나 e러닝 교육 등을 통해 수업을 보충해야 한다.
듣고 보니 대학에 이름만 걸어놓고 운동에만 전념하는 타 대학 스포츠 스타들과는 달리 한국체대 엘리트 선수들은 '공부하는 운동선수'로 불릴 만하지 않은가.
1977년 개교한 한국체대는 그동안 올림픽과 아시아경기대회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의 30% 이상을 획득해 내 '한국체육 사관학교'로 불린다. 그래서 '한국체대 출신 선수들만으로 국가대표팀을 구성해 올림픽이나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해도 종합순위 5위 안에 들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양궁의 김진호(한국체대 교수), 레슬링의 박장순(삼성생명 레슬링팀 자유형 감독) 안한봉(삼성생명 레슬링팀 그레코로만형 감독), 배드민턴의 박주봉(일본대표팀 감독), 핸드볼의 임오경(서울시청 감독), 오성옥(오스트리아 히포방크) 등…. 헤아릴 수 없는 한국 체육의 별들이 한국체대를 나왔다.
김 총장은 "한 해 신입생 590명 중에서 240명 정도를 경기력으로 선발한다"며 "대학 4년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전원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정부 예산으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다닐 수 있다"고 소개한다. 그래서 일찌감치 각광을 받는 스타급 선수들은 사립대가 선점하지만 한국체대는 잠재력 있는 선수를 선발해 크게 키워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그는 "엘리트 선수 육성과 함께 국립대학교로서 체육을 전공하고 싶으나 가계가 곤란한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이들이 체육 지도자로 사회에 나가 후진을 양성하고 스포츠 활동에서 소외받고 있는 저소득층 국민들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체대는 학생들의 등록금과 기숙사 비 등 제반 비용은 물론, 훈련 장비와 용품 구입, 대회 출전 훈련 경비 등을 국가에서 지원받고 있는 특수 목적의 국립대학.
김 총장은 "이러한 혜택을 준 국가와 국민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금보다 좀 더 지원을 받는다면 더 좋은 성적을 낼 자신도 있다"며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지원받은 교육역량강화사업 예산으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이 해외 전지훈련을 처음으로 다녀올 수 있었고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이 돌풍을 몰고 온 원동력 중의 하나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27년 간 재직하면서 느끼는 큰 변화는 학생들의 목표 의식이 뚜렷해졌고 체육인으로서 자부심도 커진 것"이라며 "이와 함께 학내에서 선, 후배 간 폭력이 없어진 것도 변화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메달리스트들을 줄줄이 배출하고 있는 한국체대. 앞으로 주목할 만한 유망주는 누구일까.
김 총장은 "2학년에 재학 중인 최규웅은 수영에서, 3학년생 정동현은 스키에서 앞으로 국제적으로 두각을 나타낼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다. 내년 대구에서 열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우리 학교 출신으로 각각 코오롱과 삼성 육상단에 입단한 황준현과 육근태가 마라톤에서 좋은 기록을 낼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이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데에는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한 박성인 선수단 단장, 김인건 태릉선수촌장 등 대한체육회를 중심으로 한 국가적인 지원이 주축이 됐는데 메달리스트 중 우리 학교 학생이 많다보니 한국체대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같다"며 "우리 학교가 이런 관심을 계속 받을 수 있도록 교직원들과 함께 더욱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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