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작가 릴레이 인터뷰]<24>‘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 김규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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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4일 09시 56분


웹툰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는 단행본으로 출간되 현재까지 8만여권이 판매됐다. \'정글고\'에 사인하고 있는 김규삼 작가.
웹툰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는 단행본으로 출간되 현재까지 8만여권이 판매됐다. \'정글고\'에 사인하고 있는 김규삼 작가.
뇌물받고 선생님을 임용하는 이사장, 주말에 해이해진 마음을 다잡자며 월요일 아침마다 체벌하는 선생님, 선생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재벌 아버지한테 고자질해 해고시키는 학생…

이런 고등학교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개교와 동시에 폐교되겠지만 만화 속에서는 가능하다. 게다가 너도나도 다니고 싶어 하는 인기 고등학교가 될 수 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연재 중인 웹툰 '입시명문 사립 정글고등학교(이하 정글고)' 얘기다. '제대로 된 학교가 아니'라고 그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열광하는 것이 놀랍다는 작가 김규삼(35) 씨를 만났다.

● 담당자 손끝에서 튕겨져 나간 원고

고등학교 1학년. 연습장에 볼펜으로 그린 만화를 들고 만화주간지 '소년 챔프' 출판국을 찾아갔다. 무작정 들이밀었는데 담당자는 '원고는 괜찮으나 연습장에 볼펜으로 그린 것은 곤란하니 제대로 그려보라'고 답했다. 만화 원고지에 제대로 그려 다시 찾아간 출판국. 원고는 잡지에 실리기는커녕 담당자 손끝에서 튕겨져 나갔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겠다는 말이 무슨 심정인지 이해가 됐어요.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는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 뒤로 만화가가 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대학도 '점수가 되는' 경원대학교 관광경영학과에 들어갔다.

본격적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제대하고 복학까지 남은 시간을 활용하려 명지대학교 사회교육원 만화교육과를 다니면서부터. 김 작가는 만화가가 되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로 당시 같은 수업을 받은 한 여학생을 꼽았다.

"한 여학생을 좋아했는데, 그 학생이 만화가를 좋아하고 있었어요. 나도 만화가가 되면 그 학생의 관심을 끌 수 있겠구나 싶어서 정말 열심히 그렸어요. 그랬더니 '수컷의 본능'인지 제 눈에 보일 정도로 실력이 수직상승했어요."

● 인기와는 거리가 멀었던 출판만화작가 시절

1998년 학산 문화사에서 주최한 공모전에 입선했다. 그렇다고 바로 만화가로 데뷔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담당자와 원고를 주고받으며 수정, 보완하는 일명 '트레이닝' 기간을 통과해야만 잡지에 만화가 실렸다.

"트레이닝 과정만 1년 넘게 하던 중 '이 출판사는 신인을 쓰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앞구르기로 2분 거리에 있던 대원출판사를 찾아갔죠."

대원출판사는 김 작가의 원고를 손가락으로 튕긴 곳. 이번에는 '원고는 조금 부족하지만 단편을 한 번 실어보자'는 반응을 얻었다. 그렇게 2000년 단편 '킬러 레옹'을 실으며 만화가로 데뷔했다.

데뷔는 또 다른 시작이었다. 소년 챔프 팀장이 "우리나라 만화 역사를 바꿀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며 연재를 강행한 공상과학만화 '룬 AD 3000'은 말 그대로 망했다. '심각한 만화가 어울리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싶은 마음에 후속작으로는 영화패러디물 '역전시네마'를 구상했고 반응은 좋았다. 그러나 자신감을 얻고 시작한 세 번째 작품 '몬스터즈'는 그의 마지막 출판만화가 됐다.

"어느 날 마감하러 갔더니 앞으로 3회 안에 끝내달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최종 원고를 출판사에 제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어요. 주저앉아 버렸죠."

며칠 후 꿈에는 그가 그렸던 만화 캐릭터들이 나왔다. 소파에 둘러앉은 캐릭터들에게 김 작가는 '미안하다. 내가 너무 재미없게 그려서… 더 이상 너희들을 그릴 수 없다'며 연신 사과했다. 캐릭터들은 괜찮다며 김 작가를 위로했다. 그러다 잠에서 깼는데 마음이 쓰렸다.

● 학원비 벌려고 시작한 웹툰

당시 김 작가는 만화를 그리겠다며 대학교도 중퇴한 상황. 집에만 틀어박혀 학교는 왜 그만 뒀을까, 만화는 계속 그려야겠지 등 고민에 빠져있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아버지께서 답을 주셨다.

"아버지께서 지나가시다 평온한 목소리로 '규삼아, 그만하면 됐다' 그러셨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너무도 편해지면서 만화를 그만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 만화 모두 그만뒀으니 남은 길은 자격증을 따는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서른을 앞둔 나이에 부모님께 학원비 달랄 수도 없는 상황. EBS 교재로 공부를 시작한지 이틀째. 네이버에서 웹툰 연재를 제의 받았다.

"만화를 그만두자고 마음먹은 상황에서 제안을 받으니 탐탁치 않았죠. 그래도 학원비는 벌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인터넷 게시판에 만화 한 번 올린 적 없고 인기작도 없는 만화가에게 웹툰 제의가 들어온 것은 어찌 보면 신기한 일. 김 작가도 나중에서야 전후사정을 알게 됐다.

"'몬스터즈'를 인터넷에서 유료로 서비스했어요. 연재를 중단한 뒤 어느 날 찾아 들어가 봤더니 댓글이 하나 있었어요. '이 만화 보다가 사무실에서 뒤집어지는 줄 알았어요. 아이구 배야~' 라는 댓글이었는데 적어도 한 사람은 즐겁게 봤다는 생각에 기분이 굉장히 좋았어요. 웹툰 연재하다 갑자기 댓글을 단 누리꾼이 누군지 궁금해져서 다시 들어가 봤더니 아이디가 낯익더군요. 네이버 웹툰 담당자 아이디랑 같았어요."

'몬스터즈'를 재밌게 봤던 네이버 담당자가 김 작가에게 연락을 한 것. 그는 "가뜩이나 인기가 없어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만화라 애틋했는데 그 만화를 재밌게 본 사람이 담당자라고 생각하니 더욱 고마웠다"고 말했다.

● 엑스트라였던 불사조, 악역으로 설정한 이사장

웹툰으로는 학원 패러디물을 구상했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축소해 '정글고'라는 학교에 담아보고 싶었다. '정글고'는 6년간의 무명 시절을 보상이라도 하듯 초반부터 반응이 좋았다. 동시에 예상치 못한 반응도 나왔다. 김 작가가 기획한 '정글고'의 주인공은 정글고 자체. 그러나 첫 회를 본 사람들은 '불사조 잘봤어'라고 인사했다.

"불사조는 엑스트라였어요. 그래서 닭의 머리에 봉황의 벼슬만 얹어서 캐릭터를 구상했고요. 그런데 사람들이 강렬하게 기억하니 주인공으로 바꾼 것이죠."

또 욕먹으라고 만든 캐릭터 정안봉 이사장은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고 있다. 뇌물 받고 교사를 임용하고, 학생들에게 돈을 뜯어내려 고가의 단체 모자까지 만들며 '학교는 이사장의 것'이라고 외치지만 그래도 독자들은 '이사장이 진리다'라고 환호한다. 이사장의 인기 비결은 김 작가에게도 미스터리. 그저 동글동글한 외모에 모차르트 머리까지 한 귀여운 외모 덕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김 작가는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로 '만년 2등' 명왕성을 꼽았다.

"'정글고' 캐릭터들은 모두 앉은 자리에서 바로 그렸어요. 너무도 자연스럽게 나왔죠. 유일하게 기획해서 나온 캐릭터가 명왕성이에요. 개인적으로는 모든 걸 갖추기 보다는 뭔가 한 군데 부족해 보이는 캐릭터가 마음에 들거든요. 명왕성이 딱 그렇죠."

학원 패러디물을 그리다보니 오해에 시달리기도 한다. 김 작가가 사립고교 출신인 만큼 작가의 경험담이 바탕이 된 것 아니냐는 것. 그는 "내가 다닌 학교는 평범했다. '정글고' 소재는 팔도에서 모인 대학 친구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라고 부정했다.

● 독자들 사랑에 5년째 졸업하지 못하고 있는 '정글고' 학생들


우리나라 고등학교는 3년제다. 그러나 2006년 '정글고'에 입학한 학생들은 현재까지 졸업하지 못하고 5년째 고등학생이다.

"기획할 때부터 '정글고'는 3년만 그리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2009년 2월 졸업시킬 때가 되니 애착 때문에 고민이 되더군요. 특히 저는 만화를 그만 두려다 출세작을 만나서 정글고가 제 정체성을 대변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거든요. 게다가 독자들이 끝내지 말라고 하니…."

망설이다보니 어느새 3월. 졸업 시즌을 놓쳤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일년 더 하자 마음먹었다. 덕분에 수능까지 치른 전교 1등 불사조도 4학년이 됐다. 같은 고민은 올 2월 반복됐다.

"끝내지 말라는 독자들도 많지만 이제 지겹다는 독자들도 계세요. 고민하고 있는데 한 지인이 '왜 네 만화를 싫어하는 사람을 위해 만화를 끝내려 하느냐,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그려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재미있게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정글고' 학생들은 5학년이 됐다. 그러나 내년 2월에는 망설이지 않고 졸업시키려고 한다. 인생이 너무 짧다고 느꼈기 때문.

"벌써 5년째 한 작품을 그리고 있는 것이잖아요. 제 머릿속에는 보여주고 싶은 작품들이 가득한데…. 앞으로 길게 잡아봐야 30년 만화를 그릴 수 있을 텐데 한 작품을 너무 길게 연재하면 다른 작품들을 보여줄 수 없어요. 그래서 아무리 아쉬워도 내년에는 정글고를 마무리하려고 해요."

특별히 구상하고 있는 '정글고 졸업식'은 있을까.

"물론 졸업식하면서 끝내야겠죠. 솔직히 졸업식을 그리기가 힘들어요. 누구는 붙고 누구는 떨어뜨려야 하는데 제가 정해야 하는 게 참…. 해피엔딩이라고 전부 합격시킬 수는 없잖아요. 앞으로 신중하게 생각해보려고요."

김아연 기자 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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