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사랑받는’ 수염, ‘미움받는’ 수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27일 10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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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SK의 김성근(68) 감독. 요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손으로 소복하게 자라난 수염을 만져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김 감독은 평생 안 기르던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13일 한화와의 경기. 올 시즌 처음 선발 등판한 김광현이 6이닝 동안 삼진 5개를 잡으며 무실점 호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8회 초 한화에 연속 안타를 빼앗기며 1-2로 역전패를 당했다.

김 감독은 다음날 아침까지 이날 패배를 곱씹느라 면도를 못했다. 그런데 다음날 경기서 타자들이 불방망이를 휘둘러 한화에 6-1로 대승을 거뒀다.

그래서 김 감독은 그 다음날도 수염을 깎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수염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고 SK는 어느 새 25일까지 10연승을 달리고 있다.

'야신(야구의 신)'으로 불리는 김 감독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쓰는 선수들이 수염을 갑자기 기르기 시작한 감독을 보면서 승리에 대한 의지를 읽었기 때문일까.

김 감독은 "연승이 계속되는 한 수염을 깎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사랑받는 수염'도 있지만, '미움 받는 수염'도 있다.

넥센의 투수 김상수(22)는 수염을 길렀다 혼만 났다. 최근 선발 투수진의 한자리를 꿰찬 김상수는 경기를 앞두고 연습 투구를 하다 정민태 투수코치에게 "면도 좀 하라"고 핀잔을 들었다.

김상수는 7경기에서 평균자책 5.40의 저조한 기록으로 부진에 빠져 있다. 그런데 수염까지 덥수룩하게 길러 의기소침해 보이는 모습이 정 코치 눈에는 거슬렸던 것.

롯데의 홍성흔(33)과 두산의 김현수(22)는 방망이 하나를 놓고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롯데의 강타자 홍성흔은 다른 팀 선수라도 타격감이 좋은 타자들의 배트를 모으는 습관이 있다.

홍성흔은 이번 시즌 초반부터 맹타를 휘두른 김현수를 찾아가 방망이를 하나 얻었다. 김현수로서는 두산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대 선배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웠을 듯.

어쨌든 이후로 홍성흔은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현재 타율 0.367(33안타, 5홈런, 31타점)로 타격랭킹 3위에 올라있다.

반면 초반 잘나가던 김현수는 최근 주춤하며 타율 0.310(26안타, 1홈런, 12타점)으로 타격랭킹 14위에 처져 있다.

홍성흔은 그의 배트가방에 김현수에게서 얻은 방망이를 고이 모셔놓고 경기를 앞두고 한번씩 꺼내 쓰다듬는다.

25일 93경기 만에 100만 관중을 돌파해 103만 7000명을 기록한 2010 프로야구. 팬들의 폭발적인 관심 속에 이런저런 뒷이야기를 남기며 중반전을 향해 치닫고 있다.

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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