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뚱맞은 피켓시위였다. 기자가 된 후 시위현장을 취재한 일은 많았지만 시위 참여는 처음이었다. 특별취재팀 기획회의가 발단이었다. 한국 사회의 소통 부재를 보여주기 위해 취재기자가 거리에서 ‘갈라진 한국’을 확인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 피켓시위를 통해 참여연대의 행보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자는 의견이었다. 천안함 폭침사건의 조사결과에 대해 참여연대가 의문을 제기하는 서한을 유엔에 보내면서 이 사안은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됐다.》
○ 첫 번째 시위, 신촌 거리
지난달 30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현대백화점 신촌점 정문 앞. 20, 30대가 많이 오가는 거리다.
‘천안함 서한 유엔에 보낸 참여연대 각성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기자는 섰다. 평일 백화점 앞은 여유로웠다. 팔짱을 낀 연인들이 총총거리며 지나갔다. 뜨악한 표정으로 힐끗 눈길을 주고 지나치는 젊은이도 있었다. 기자 옆에 스티커를 붙여 찬반의견을 표시하는 여론조사 패널을 설치했다.
시간이 지나자 여론조사 패널에 스티커가 늘어났다. 의견도 뚜렷하게 갈렸다. 김모 씨(27)는 “당연히 북한이 한 것 아니냐”며 “북한 외에 누가 천안함을 공격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유모 씨(24·여)는 “정부 말보다 북한을 더 믿는 참여연대는 어느 나라 국민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모 씨(40)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의견을 표출할 수 있지만 수십 명의 대한민국 젊은이가 목숨을 잃은 상황에서 참여연대 행동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지지 시민 중에는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믿음이 안 간다는 응답이 많았다. 정모 씨(27·여)는 “정부 발표가 새떼, 잠수함 등으로 오락가락했다”며 “인터넷을 보면 다른 시각의 뉴스들이 많다”고 말했다. 피켓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윤모 씨(47)도 “증거가 확실치 않은데 북한으로 몰아가는 것은 평화를 해치는 행위”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념 성향에 따라 답변이 미리 정해져 있다는 인상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참여연대 지지 이유를 물으면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보다 ‘정부를 믿지 못해서’라는 답이 많았다. 참여연대 반대 이유를 물으면 ‘북한과 같은 말을 해서’라는 대답을 자주 들었다.
4시간이 지났다. 최종 집계는 ‘참여연대 각성’ 피켓에 찬성 113명, 반대 62명. 주섬주섬 짐을 정리하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데 이들 중 참여연대의 서한을 읽어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두 번째 시위, 탑골공원
7월 1일 오전 10시 종로 탑골공원. ‘참여연대 각성하라’는 똑같은 피켓을 목에 걸었다.
공원 안은 대부분 노인이었다. 노인들은 신촌에서보다 의견 표시에 적극적이었다. 한 노인은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기특한 일을 한다”며 격려했다. 정모 씨(60)는 “천안함 사건은 국제사회에서도 다 인정한 것이다.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박모 씨(67)는 “우리 청년들이 40명 이상 죽었는데…. 한마디로 이적행위”라며 열변을 토했다. 참전용사라고 밝힌 박모 씨(87)는 “피란길에서 생글거리던 갓난아이가 다시 돌아보면 흙먼지를 쓰고 죽어 있었다”며 “전쟁의 참혹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소수였지만 참여연대 지지 의견도 있었다. 한 노인은 “중국·러시아가 참여한 중립적인 조사단이 북한 소행임을 입증한 다음에 제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최종 결과는 ‘참여연대 각성’ 의견이 121명으로 반대 30명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탑골공원에서도 신촌에서처럼 ‘내 편 네 편의 틀’이 작동하고 있었다. 설득력 있는 이유 제시는 드물었고 주로 누구 편인가에 따라 응답했다. 피켓을 들고 있던 기자에게 “당신들은 어느 편이냐” 따져 묻던 한 노인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 ‘국내총생산(GDP) 세계 15위, 수출 9위, 자동차 생산대수 5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기록들이다. 대한민국은 20세기 들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한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렇지만 2010년 한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극단적인 갈등과 분열상을 겪고 있다. 국회 몸싸움은 이제 뉴스거리도 아니다. 굵직한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사회 전체가 갈기갈기 찢겨 ‘두 나라’가 된다. 극심한 분열과 갈등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의 지불을 요구한다.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공유한다는 전제하에서,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길을 찾아야 할 시기다. 이런 문제의식 위에 동아일보는
19일부터 ‘대한민국, 공존을 향해’ 특별기획시리즈를 시작한다.》
▼ 2010년 7월 평온한 서울, 작은 피켓이 등장하자 거리가 쫙 갈라졌다 ▼
○ 세 번째 시위
두 차례의 피켓시위 결과가 나오자 “피켓 문구를 바꿔서 다시 해봐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참여연대 각성하라’는 피켓을 들고 있으면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시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전과는 달리 ‘참여연대 정당하다’는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서기로 했다.
7월 5일 오후 4시 종묘공원. 노인 300명가량이 나무 그늘마다 4, 5명씩 앉아 담소하거나 장기를 두고 있었다. 격한 반응이 나올까 봐 약간 긴장됐다.
공원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종묘공원은 나오는 노인들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세 구역으로 나뉜다. 정문을 기준으로 오른쪽은 우파 성향 노인이, 왼쪽에는 좌파 성향이, 그리고 가운데에는 중도파가 모인다. 한 관리사무소 직원은 “주 업무가 노인들 간 다툼을 말리는 일”이라고 했다. ‘시위 취지’를 설명했더니 “위험할 수 있으니 중도지대에서 시위하라”고 일러줬다.
중도지대에서 ‘참여연대 정당하다’고 적힌 피켓을 목에 걸었다. 걱정한 대로 격렬한 반응이 나왔다. 한 노인은 “참여연대에서 온 거야? 왜 정부를 믿지 못하고 편지를 보내? 참여연대에 가서 항의하려고 했는데 마침 잘 왔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 60대 노인은 “정부 조사단에는 외국 사람도 참여했고 유명한 학자들도 참여했다. 그 사람들이 양심을 저버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참여연대를 지지하는 소수파는 ‘찬성’ 난에 스티커를 조용히 붙이고 사라졌다. 이때 한 노인이 “난 찬성이야”라고 크게 말했다. 일순 말다툼으로 주변이 소란해졌다. “이 사람아, 왜 찬성을 해? 참여연대가 잘했다는 거야”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고 “민주주의 국가야. 의견은 자유야”라는 반박이 이어졌다. 한 노인은 조용히 시위현장을 왔다 갔다 하며 ‘반대’ 스티커를 여러 개 붙이기도 했다.
분위기가 험해지자 한 노인은 “이게 다 뭐 하는 짓이야”라며 스티커 부착용 패널을 밀어 넘어뜨렸다.
동행했던 동료 기자들에게 눈짓을 했다. “더 있다간 일 나겠네. 철수합시다.” 땅에 넘어진 패널을 주워 들고 서둘러 공원을 빠져나왔다. 뒤통수로 고함소리가 꽂혔다. “너희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이냐!” ○ 네 번째 시위
7월 15일 오후 1시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마지막 피켓시위다. 이제 지나가는 사람에게 스티커로 의견을 표시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피켓 문구가 ‘참여연대 정당하다’로 바뀌었기 때문일까. 2주 만에 여론이 달라진 것일까. 아무튼 정부를 불신하는 의견이 우세해졌다.
최모 씨(39)는 “인양된 추진체가 며칠 사이에 녹이 슬었다. 폭발 산화물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재미학자도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김모 씨(26)는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증거를 짜 맞춘 느낌”이라고 했고, 양모 씨(22·여)는 “정부가 알 권리를 무시하며 선거용 언론플레이를 했다”고 말했다.
여중생들도 몰려들었다. 강모 양(16)은 재빨리 ‘찬성’에 스티커를 붙이더니 “이거 하면 잡혀 가는 거 아니에요? 요즘 (정부) 욕하면 경찰에 불려간대요”라고 말했다. “어, 여기에 개념 없이 반대한 사람도 있네”라고 혀를 차던 허모 양(15)은 “MB가 싫어요”라고 말했다.
반대 의견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유모 씨(23)는 “천안함 조사는 정부가 할 일이지, 시민단체가 나설 일이 아니다”라고 참여연대를 비판했다.
○ ‘두 개의 한국’, 공존은 가능할까
홍익대 앞에서는 ‘참여연대 정당하다’에 찬성이 41명, 반대는 5명이었다. 종묘공원에서는 찬성 10명, 반대 40명이었다. 2010년 6, 7월 일상의 거리는 평온했다. 그런데 정치적 주장을 담은 작은 피켓이 등장하는 순간 거리는 쫙 갈라졌다.
천안함 사건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세종시, 4대강, 무상급식 등 많은 현안에서 대한민국은 둘로 찢어졌다. 수도 분할 찬성과 하천 정비 반대가 왜 진보의 몫인지 사상사를 아무리 뒤져봐도 설명할 길이 없다. 거꾸로 4대강 개발, 무상급식에 앞서 교육인프라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왜 보수정책으로 분류돼야 하는지도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각 이슈에 대해 어느 쪽이 옳은지 논변을 통해 설득하고, 양쪽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대개 안다.
그렇다면 다른 견해와 더불어 살아가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이다. 동의할 수 없다면 승복이 있어야 한다. 패자는 승복하고 승자는 포용하는 것. 이를 위해서는 타협을 통한 통합적 대안을 모색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대한민국, 과연 소통하고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 <특별취재팀> ▽팀장 공종식 산업부 차장 kong@donga.com ▽정치부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산업부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경제부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사회부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사회부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교육복지부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문화부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오피니언팀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인력개발팀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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