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회에는 두 개의 나라가 있다. ‘여당나라’와 ‘야당나라’. 민주 법치 타협 등 같은 말을 하면서도 그 뜻은 제각각이다. 뿌리 깊은 지역갈등, 평행선을 달리는 이념갈등, 말이 통하지 않는 세대갈등, 점점 커지는 계층갈등 속에서 국민들은 무엇에 답답해하고 분노하고 있을까. ‘갈등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관용의 씨앗은 싹 틀 수 있을까.
동아일보는 우리 사회 갈등의 현주소를 찾고자 코리아리서치센터(KRC)에 의뢰해 집단심층면접조사(FGI·Focus Group Interview)를 실시했다. FGI는 기업에서 마케팅조사에 많이 사용하는 기법으로 타깃 소비자를 6∼12명 선발해 한 장소에 모여 조사목적과 관련된 토론을 함으로써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는 방식이다.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 방식에서는 얻기 힘든, 심층적인 내용을 파악하는 데 주로 활용된다. FGI는 사회자가 참가자의 답변에 맞춰 그때그때 질문내용을 바꿈으로써 참가자의 마음속 얘기까지 끌어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이번 FGI는 △20, 30대 남성 △20, 30대 여성 △40, 50대 남성 △40, 50대 여성 등 4개 그룹으로 나눠 이달 5∼7일 사흘간 진행됐다. 8명으로 이뤄진 각각의 그룹은 여야 지지자를 절반씩 섞었다. 참가자들은 사전에 서로의 성향을 모른 채 2시간 동안 50여 개 질문에 허심탄회하게 답변했다.
FGI를 통해 ‘솔로몬의 지혜’를 찾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2010년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목소리는 그 안에 생생히 녹아 있었다.
정리=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2030은 빈부격차, 4050은 이념갈등에 민감 ▼
시급히 해결할 문제는
집단심층면접조사(FGI) 결과를 들여다보면 젊은층이 다른 세대에 비해 계층갈등 문제에 민감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FGI에 참여한 20, 30대 16명이 모두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갈등으로 계층갈등을 꼽았다. 40, 50대 대부분이 같은 질문에 이념갈등이나 지역갈등을 꼽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실제로 젊은층은 자신의 경제적 위치를 대체로 낮게 평가하고 있었다. 조사대상 20, 30대 남녀 16명 중 11명은 자신이 서민층에 속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또 현재 젊은층이 겪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개인 문제보다는 사회구조 탓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회사원 신모 씨(34)는 “현재 젊은 세대가 처한 어려움의 원인을 살펴보면 결국 사회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사회 전체적으로 경쟁이 너무 치열해지면서 약자가 핍박받는 구조가 심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 박모 씨(20·여)는 “한 번 정해진 계층구조는 거의 바뀌지 않는 것 같다”며 “서민이 상류층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은 로또를 맞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신 씨는 “땀 흘려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지니 (부자가 되기를) 포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 ‘정치 9단’ 다 된 유권자▼
선거 결과가 나올 때면 매서운 민심 앞에 정치권은 어김없이 고개를 떨어뜨린다. 여야 간의 견제와 균형을 귀신같이 맞춰놓는 대한민국 유권자들이야말로 ‘정치 9단’이란 말까지 나온다. 동아일보의 집단심층면접조사(FGI)에 참여한 필부필부들의 정치적 판단도 여느 정치평론가 못지않았다.
FGI 참가자들에게 한나라당은 “부자들만 옹호하는”(오모 씨·21·대학생), “오합지졸”(이모 씨·47·주부)인 데다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구심점을 잃고 헤매는”(변모 씨·46·회사원) 정당이다. 민주당은 “돌아가신 대통령들의 이미지에 기대”(박모 씨·20·대학생)고 있으며 “국민들이 한나라당을 싫어하니까 자기들을 지지할 거란 막연한 기대감에 휩싸여 있다”(신모 씨·34·회사원)는 평가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도 매서웠다. “노무현 정부에 실망한 국민들이 현 정권에 기대를 많이 걸었는데 기대에 못 미치고”(김모 씨·55·주부) 있는 데다, “국민이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지 굳이 하겠다는 이유가 뭔지”(이모 씨·46·자영업) 알 수 없어, 결국 “지방선거를 통해 잘못을 지적해 줄 수밖에”(권모 씨·51·회사원) 없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허모 씨(31·주부)는 “선거 때마다 일부러 다른 당을 찍어 서로 견제시키고”, 한모 씨(33·회사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실망해 새로운 당을 지지하게 된다”고 했다.
박모 씨(54·회사원)의 말은 여운이 컸다. “아직도 국민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이 많은 것 같아요.” 우리 국민은 ‘현실정치를 냉정하게 판단하고 있다’는 자신감 또한 크다는 사실도 이번 FGI에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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