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All or Nothing’이 문제다
선거때 1%만 앞서도 전리품은 100% 차지
‘낙하산 기관장’ 넘치는데 ‘우수’ 평가 한명도 없어
《Winner takes all. 승자독식(勝者獨食)으로 번역되는 이 말은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권이 자신의 가치에 맞게 공적(公的) 자원을 배분 및 집행하고 다음 선거에서 결과를 평가받는 것은 민주주의의 대원칙이다.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바뀌면 수천 개의 자리바꿈이 일어난다. ‘대통령 친구’가 외국대사로 가는 일도 잦다. 그렇지만 한국식 승자독식은 유별나다. 정권이 바뀌면 민간 기업의 인사까지 흔들린다. 선거에 지면 감옥에 가는 수가 있다. 이러니 선거는 축제가 아닌 전쟁터다. 극한대립 극한투쟁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존이나 타협을 주장하면 ‘회색분자’로 찍히게 마련이다. 전부 얻거나 전부 잃는(All or Nothing) 구조에서 공존의 공간은 너무 좁다.》
#사례 1
요즘 서울 A구의 통·반장 사이에선 조만간 ‘인사태풍’이 불 거란 소문이 파다하다. 3선의 구청장이 물러가고 새 구청장이 취임한 뒤 구청장 동향 출신 사람들로 동장과 통·반장이 바뀔 것이란 얘기가 나돌고 있는 것이다. 지난번 구청장 때도 구청 내 요직은 물론이고 상당수 동장과 통·반장이 구청장과 같은 지역 출신이었다는 점은 이런 소문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이 지역의 한 통장은 “선거 때면 동장과 통·반장이 이런저런 동향 파악을 해주기 때문에 구청장들은 자기 사람을 앉히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사례 2
금융권의 고위 임원들은 100% 민간법인에 근무하지만 항상 대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대통령의 출신지역, 학교에 따라 인사 지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는 노 전 대통령이 졸업한 부산상고 인맥이 막강 파워를 자랑했고,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이 대통령이 졸업한 포항 동지상고 동문들이 잘나가고 있다. 법률적으로는 정부 지분이 전혀 없는 은행에서도 고위직 인사가 공공기관처럼 진행되는 것이다.
대통령이 바뀌면 이처럼 민간기업까지 권력과 연결고리가 있는 인사를 전면에 내세우기 바쁘다. 지방자치단체장이 바뀌면 통·반장까지 물갈이되는 게 ‘2010년 한국의 슬픈 현실’이다.
권력이 바뀌면 정부 부처나 공기업을 포함해 한국사회 각 분야에서는 메가톤급 권력교체가 이뤄진다. 권력과 정부를 상대해야 하는 민간기업도 권력과 끈이 있는 인사를 요직에 발탁한다. 국회의원들의 후원금 액수도 여야에 따라 달라지는 게 한국사회의 인심이다.
이처럼 승자독식 구조가 철두철미하게 관철되는 사회 구조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야당으로선 ‘정부 반대’, 나아가 ‘정부 발목잡기’에서 야당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러다 보니 여야 간에, 권력을 새로 잡은 진영과 권력을 내놓은 진영 사이에서는 처절한 전투만 벌어진다.
권력부서의 지역불균형은 지역갈등을 부추긴다. 최근 단행된 청와대 비서관급 인사를 보면 전체 비서관 44명 중 호남 출신은 모두 4명(9.1%)이었다. 반면 대구 경북(TK) 출신은 13명(29.5%)이었고, 부산 경남(PK)까지 포함하면 영남 출신은 모두 18명으로 호남의 4배가 넘었다.
○ 비효율 낳는 싹쓸이
특정 지역의 독주는 ‘배제된 자들의 소외감’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현재 정부의 투자나 출자 또는 재정지원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은 모두 286개. 정권이 기관장을 비롯해 상근·비상근임원, 감사 등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는 어림잡아 1000개가 넘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고위직이 달라지는 이들 공공기관의 경영성적은 어떨까.
특별취재팀이 올해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받은 94개 기관의 성적표와 기관장의 출신배경을 비교분석한 결과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는 기관의 경영성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캠프나 인수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정치인 출신이 기관장인 기관 24곳 가운데 10곳(42%)이 C등급 이하 평가를 받았다. 관료(26%)나 민간인(28%) 출신 기관의 경우 이렇게 낮은 등급을 받는 비율은 아주 낮았다.
기관장 개인평가에서는 이런 경향이 더 뚜렷했다. 경고 대상인 미흡(50∼60) 등급과 아주 미흡(50점 이하) 등급을 받은 기관장 20명 가운데 12명이 정치권 인사였다. 80점 이상인 ‘탁월’, ‘우수’ 평가를 받은 기관장 가운데는 정치인 출신이 한 명도 없었다. 인사 싹쓸이가 기관의 경영효율도 떨어뜨리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 민의와는 먼 승자독식
정치권에선 선거 결과가 곧 민심이다. 그렇다면 1석이라도 더 얻은 정당이 민심도 그만큼 더 얻은 것일까.
13일 출범한 서울시의회는 시의회 사상 첫 여소야대를 이뤘다. 정당 공천이 없는 교육의원 8명을 제외한 106명 가운데 민주당 의원은 79명(74.5%), 한나라당 의원은 27명(25.5%)이다.
민주당은 의석 비례에 따라 상임위 10곳 가운데 8곳의 위원장을 차지했다. 또 모든 상임위에 한나라당 의원을 2∼4명씩 분산 배정해 사실상 시의회 운영의 전권을 쥐었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의 핵심 이슈였던 무상급식의 실천 여부를 판가름 짓는 교육위원회에는 한나라당 의원이 단 1명 배정됐다.
하지만 선거 결과를 보면 민주당의 이런 ‘싹쓸이’가 정당한지 의문스럽다. 민주당은 비례대표를 포함해 388만여 표를 얻어 한나라당(369만여 표)보다 19만여 표 앞섰다. 민주당 51.3% 대 한나라당 48.7%다.
이정희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승자독식을 막기 위해 다양한 제도적 논의가 필요하지만 이에 앞서 포용의 리더십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문화가 뿌리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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