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118만 명. 이 중 결혼이민 등이 약 17만7000명이다. 대부분 여성이다. 이들이 결혼해 이룬 다문화가정의 38.4%는 월평균 가구소득이 100만∼200만 원에 불과하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비율은 4.9%로 일반 내국인의 1.6배 수준. 한국어를 제대로 익히지 못한 이들은 의사소통이 어려워 한국 사회 동화가 쉽지 않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정착한 경우도 상당수다. 취재팀은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고 다문화 이주민으로서 당당히 살아가는 여성들의 ‘한국 적응기’를 살펴봤다. 그리고 이들이 전하는 ‘성공적인 적응의 조건’을 6가지로 정리해봤다.》
■ 편견을 뚫고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6가지 조건
[1] 한국어는 익혀야 한다… 못 알아 들으면 “고집세다” 오해
4년 전 한국의 농촌으로 시집온 몽골인 A 씨(35)는 마을잔치에 좀처럼 초대받지 못한다.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 들은 말과 달리 행동하거나 어정쩡한 태도를 몇 번 보이자 마을 어른들이 “말을 안 듣고 고집 센 여자”라며 험담을 한다.
반면 베트남 북부 하노이 인근 출신의 오안희 씨(39)는 한국어 배우기에 성공한 경우다. 오 씨는 1995년 산업연수생 프로그램으로 충남 아산시 소재의 자동차부품 공장에서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기계를 주로 상대하는 공장의 일로는 한국말을 배우기가 쉽지 않아 틈날 때마다 한국인 아줌마들이 하는 말을 무조건 따라했다. 집에서는 베트남에서 가져온 한국어사전으로 뜻과 발음을 확인했다. 연애 시절 남편은 “이런 사전으로는 한국말 못 배운다”며 당장 버리라고 했다. 그때서야 북한에서 만든 사전인 것을 깨달았다. 한국어가 조금 능숙해지자 경찰이 통역을 도와달라고 했다. 통역을 하면서 한국어 실력은 더 빠르게 늘었다.
바흐리다노바 라노 씨(29)는 오뚝한 코의 우즈베키스탄 출신 신부다. 그의 남편은 “당신이 한국말을 배우기가 힘들면 내가 러시아어를 배우겠다”며 러시아어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아내가 힘들어하자 이를 안쓰럽게 여긴 것.
“우즈베크에서는 누구보다 자신감 넘치던 제가 이런 식으로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에게 내가 한국어를 배울 테니 그러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했죠.”
다문화가정이 많은 지방자치단체에는 대개 한국어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모든 외국어학습이 그렇듯이 효과적인 학습을 위해서는 본인과 주변의 지원이 절대적이다. 그렇지만 다문화가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촌의 경우 육아, 집안일 혹은 거리상의 문제 등으로 꾸준히 참석하는 게 쉽지 않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가정을 방문해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글도우미’를 운영하지만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지역별 여건에 맞는 ‘맞춤형 한국어 교육’이 절실하다.
[2] 남편이 최고의 멘터여야 “알 것 없어” 자르지 말고 배려를
한국노바티스에서 의료영업전문가로 일하는 싱가포르 출신의 데프니 우 씨(27)는 지난 주말 카레 소스에 면을 넣은 싱가포르 요리 ‘락사’를 만들었다. 직장 동료이자 남편인 김재중 씨가 “주말에는 당신 나라 음식을 먹자”고 먼저 제안했다. 김 씨는 “한국으로 시집을 왔다고 해서 한국 음식에 무조건 적응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나부터 아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결혼해 한국에 들어온 데프니 씨를 위해 김 씨는 ‘한국문화적응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사내 레포츠 클럽에 아내를 가입시켜 한국인과 사귈 기회를 주는가 하면 한국생활에 적응한 다른 다문화가정과 캠핑을 가기도 했다. 주말이면 한국 영화를 보면서 데프니 씨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영어로 설명해 준다.
‘식사는 하셨어요.’, ‘오늘은 몇 시에 퇴근하시나요?’ 우즈베크 신부 라노 씨의 남편은 요즘도 존댓말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한국인과 의사소통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 아내지만 존댓말을 익히게 하기 위해서다. 남편의 이런 작은 노력은 라노 씨가 현재 일하고 있는 중소기업중앙회에 취직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2007년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소개로 라노 씨를 포함해 2명이 면접을 봤다. 먼저 면접을 본 사람이 한국말을 유창한 반말로 구사해 면접관을 당황케 했다. 라노 씨의 존댓말에 면접관은 그녀를 선택했다.
그런데 모든 다문화가정에서 한국인 남편이 이런 훌륭한 멘터는 아니다. 가부장적 인습 때문에 아내가 질문을 하면 “많이 알 것 없다” “말이 많다”며 귀찮아하는 경우가 주변에 많다고 라노 씨는 전한다. 이 때문에 ‘좋은 아빠학교’처럼 다문화가정 남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좋은 남편학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3] 일자리를 얻으라… 통역같이 자신있는 것부터 도전
오안희 씨는 현재의 직장인 충남 아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일자리를 얻기까지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자동차부품 공장부터 시작한 그녀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수차례 직장을 옮겨야 했다. 생활은 불안정했다. 2000년경부터 인근에 베트남인이 늘어나면서 우연한 기회에 경찰서에서 운전면허 서류 및 책자를 베트남어로 번역해 줬다. 베트남인들이 일으킨 사건 사고의 통역도 맡았다. 2006년 다문화가족지원센터 팀장이 “다문화가정의 자녀양육을 도와주는 아동양육지도사로 활동해 보라”고 권유했다. 지난해부터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 통번역사로 정식 근무를 시작했다.
세종병원 국제의료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러시아 출신 ‘다문화 워킹맘’ 아리나 아키모바 씨(37)는 결혼이주여성들에게 “무조건 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나라”는 충고를 던진다.
아키모바 씨는 업무차 러시아에 주재한 한국인 남성과 만나 결혼한 뒤 2005년 4월 한국에 왔다. 한국말에 어느 정도 자신이 붙으면서 경기 부천시의 통역사로 자원봉사활동을 했다. 부천시와 세종병원은 러시아 하바롭스크 시와 자매결연하고 심장병 어린이를 데려와 무료수술을 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통역을 맡은 것. 아키모바 씨는 러시아에서 의대를 졸업했지만 근로여건이 좋지 않고 월급도 적어 러시아에서 의사 일을 안 했다.
다문화가정의 가장 큰 문제는 ‘개도국 출신 아내에 대한 존중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아내가 자기만의 일을 갖게 되면 ‘존중감 부족’ 문제는 대부분 해소된다. 다문화가정이 급증하면서 이 분야에서 일자리 수요도 커지고 있다. 정부의 정책적 관심이 필요한 대목이다. 이를 위해 교육시스템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4] 엄마의 나라를 가르치라… 아이와 소통, 뿌리 내리기 밑거름
데프니 씨는 현재 임신 26주째다. 벌써부터 어떻게 자녀교육을 해야 할지 걱정이다. 남편 김 씨는 “엄마의 모국어인 영어와 중국어, 아빠의 모국어인 한국어를 다 가르쳐서 다문화가정의 장점을 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 씨와 데프니 씨는 아이가 엄마의 나라인 싱가포르를 제대로 알면 좋겠다고 말한다. 엄마의 나라에 대해 아이가 모른다면 소통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안희 씨의 큰아들 김병일 군(9)도 한국외국어대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베트남어 교육을 꾸준히 받고 있다. 1년에 2번은 아산시에서 여는 베트남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처음에는 귀찮아하던 아이가 다행히 이제는 흥미를 느낀다.
미국에서는 이민자 자녀의 경우 영어와 함께 부모의 모국어를 배우는 게 언어교육의 일반적인 추세가 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영어 외에 다른 국가의 언어와 문화를 아는 것이 경쟁력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다문화가정 자녀가 한국어뿐만 아니라 중국어 베트남어 등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으면 한국 사회의 또 하나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5] 친정 같은 커뮤니티 만들기… 정보 공유를 넘어 정서적으로 의지
오안희 씨는 몇 년에 한 번씩 남편 및 자녀들과 고국 베트남을 방문한다. 오 씨는 “베트남에 가면 친정식구들이 남편과 아이들을 워낙 정성껏 대하기 때문에 남편이 감동받는 것 같다”며 “한국으로 돌아오면 남편과의 관계가 더 돈독해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고국으로의 친정 나들이가 쉽지 않은 이주민 여성들에게는 먼저 정착한 다문화가족들과의 연결고리가 필수적이다.
우즈베크 신부 라노 씨도 한국 생활 초기에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먼저 정착한 이주민 여성들에게서 실생활 정보를 얻었다. 한국어를 빨리 배우는 방법부터 본인들이 경험한 문화적 오해 공유, 물건값이 싼 마트 정보까지 생존을 위한 ‘서바이벌 정보’의 창구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것.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미 이주민 여성들의 친정식구와 같은 역할을 해줄 자원봉사자들을 선발해 ‘결혼이민자 친정가족 맺기’ 행사도 열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이주민 여성들과 모녀나 자매 관계를 맺고 행정기관이나 병원 동행, 일상생황 정보제공, 가족문제 상담까지 다양한 조언을 해준다.
고립된 여성일수록 남편이나 시댁식구에게서 존중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개도국 출신일 경우 더욱 그렇다. 그러나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관심의 눈길’이 있으면 무시, 박대는 쉽지 않다. 친정이나 동료 다문화여성들과의 관계 유지가 필요한 까닭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지역의 다문화센터가 한국어를 가르치고 실생활 정보를 제공하는 곳을 넘어 이주민 여성들이 정서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장소가 돼야 한다.
오 씨는 “이주민 여성들이 한국에 입국할 때부터 모국어로 상담할 수 있는 자원봉사자를 의무적으로 연결시켜 주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6] 꿈을 가져라… 성공스토리 남의 것 아닌 내것으로
라노 씨는 요즘 애국가를 4절까지 외우고서는 뿌듯해하고 있다. 우즈베크 국적을 유지하던 그녀가 귀화시험을 보려는 것은 새로운 꿈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그녀의 꿈은 통역직 경찰공무원. 현재도 번듯한 직장을 다니지만 공무원이란 안정적 신분으로 자신의 특기인 통번역 일을 하고 싶다.
오안희 씨 역시 사회복지사의 꿈을 키우면서 2008년부터 순천향대 부설 평생교육원에서 사회복지사 교육을 받고 있다.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서 이주민 신부들을 체계적으로 돕는 게 오 씨의 장래 희망이다.
문제는 이주여성들이 꿈을 갖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계기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성공스토리’가 좀 더 알려져야 이들이 꿈을 꿀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꿈이 꼭 전문직일 필요는 없다. 데프니 씨는 “농촌에 살고 있다면 부농을 꿈꿀 수 있고, 다문화가정 자녀라면 미래의 외교관 혹은 상사원을 꿈꿀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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