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양배추를 소지하게 하든지,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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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0일 10시 27분


박명환이 공을 던지는 순간 모자 속에 넣어두었던 양배추가 떨어지고 있는 장면.
박명환이 공을 던지는 순간 모자 속에 넣어두었던 양배추가 떨어지고 있는 장면.
야구팬이라면 2005년 박명환(LG)의 '양배추 사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 두산 투수였던 박명환이 모자 속에 양배추 잎사귀를 넣고 경기에 출전했던 일이다.

박명환이 양배추를 모자 속에 넣은 이유는 더위를 식히기 위해서였다. 양배추 잎사귀는 열을 식혀주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국내 골프장에서도 캐디들이 양배추 잎을 가지고 다니며 골퍼들에게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슈퍼스타 베이브 루스도 더위에 약해 냉동실에서 얼린 양배추를 모자 속에 넣고 경기를 했다.

'양배추 사건'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양배추를 이물질로 판정해 이를 소지하고 경기에 나서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에 요즘 야구장에서는 볼 수가 없다.

유난히 더운 이번 여름철 내내 거의 매일 경기를 치르고 있는 프로야구 선수들은 무더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시설이 열악한 지방구장에서는 '전쟁 상황'이 더 심각하다. 모 구단이 제2의 홈구장으로 삼고 있는 한 야구장은 라커룸에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아 선수들이 냉방이 되는 구단 버스에서 경기 시작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일도 있었다.

이에 반해 미국 메이저리그의 선수들은 아무리 더워도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메이저리그 구장들은 실내 연습장 시설이 잘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경기 전까지 시원한 실내 연습장에서 충분히 몸을 푼 뒤 경기에 가뿐하게 나선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올 시즌은 기념비적인 해다. 5월30일 한국 프로야구가 개막 후 28년 2개월 만에 1억 관중을 돌파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LG 트윈스는 6월19일 한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로 홈경기 누적 관중 수 2000만 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이런 폭발적인 팬들의 호응에 비해 국내 프로야구의 인프라는 너무 초라하다. 구장만 보더라도 삼성의 홈인 대구 구장은 2006년 정밀 안전 진단 검사에서 '즉각 사용 금지하고 보강 개축을 해야 하는 상태'인 E등급 판정을 받기도 했다.

현재 3만 이상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구장은 잠실과 사직, 문학 구장 등 3개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중 1억 명 돌파는 기적 같은 일로 여겨진다.

까다로운 규정을 들어 양배추 잎사귀 하나 소지하는 것이나 금지시킬 게 아니라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프로야구의 기반을 튼튼하게 할 큰 구상을 야구인들이 해야 할 시점이다.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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